"한솔-백솔 재하청, 불법 맞다" 결론…건설산업기본법 위반
'원청사' 현대산업개발 본사 압수수색, 계약·감독 자료 확보
다단계 하청 실체 드러내나…'과다 살수 지시' 의혹도 수사
사상자 17명을 낸 광주 학동 재개발 4구역 건물 붕괴 참사를 수사 중인 경찰이 불법 다단계 하도급에 의한 철거 공정이 이뤄졌다고 잠정 결론 내렸다.
경찰은 원청업체 HDC현대산업개발 본사를 압수수색하는 등 작업 절차를 어긴 부실 철거 공정 등을 구체적으로 지시한 책임 주체를 규명하는 데 수사력을 집중하고 있다.
광주경찰청 수사본부는 동구 학동 재개발 4구역 내 붕괴 참사와 관련, 현대산업개발과 공식 철거 용역 계약을 맺은 한솔이 지역 신생 영세업체 백솔에게 재하청을 준 것이 불법이라고 잠정 결론내렸다고 16일 밝혔다.
백솔 대표인 A(47)씨는 개인사업자였던 굴삭기 기사였으나 지난 2017년께 비계구조물해체공사 면허를 땄고 지난해에서야 업체를 설립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솔의 직접 고용 인원은 3명에 불과하다. 철거 직종 내 이른바 ‘초짜’에 해당한다.
경찰도 A씨가 개인사업자로서 한솔과 함께 일하다, 해체 관련 면허 취득 이후엔 업체를 설립해 한솔과 도급 계약을 맺고 인천·전북 익산 현장에서도 일했다고 밝혔다.
A씨는 경찰 조사에서 “(허가를 받은) 철거계획서는 본 적 없고 주로 한솔 측 지휘를 받아 철거 공정을 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불법 하도급을 거치면서 철거 공사 예산 규모가 줄었다고 설명했다.
재개발조합과 계약을 맺고 철거를 비롯한 공정 전반을 맡은 현대산업개발은 일반건축물 철거 공정 도급사로 한솔을 선정, 공정비로 54억 원을 지급했다.
한솔은 비계 공사(6억 원)·내부 철거(4억 원)·경호업체 용역비(3억 원) 등 14억여 원을 제외하고 40억 원으로 철거 공정을 또다시 백솔을 비롯한 복수 업체에게 구역·공정 별로 재하청을 준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붕괴 건물 등의 철거를 도맡은 백솔은 공사비로 12억 원을 받았다.
지정건축물(석면)·지장물 제거 등 다른 철거 공정도 이른바 ‘철거왕’ 소유의 다원그룹 자회사 다원이앤씨 등 다른 불법 하도급 업체가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석면 철거 공사는 다원이앤씨가 수주, 백솔에 재하청을 맡겼고, 백솔은 석면 해체 면허를 다른 업체에서 빌려 무자격 철거를 한 것으로 전해졌다.
철거 공정 별로 확인된 계약 관계는 ▲일반건축물(조합→현대산업개발→한솔) ▲석면(조합→다원이앤씨) ▲지장물(조합→한솔) 등이다.
경찰은 철거 공정 하도급 계약 관련 위법 사항이 확인된 5명을 무더기 입건했다.
굴삭기 기사 A씨와 한솔 현장사무소 소장 B(28)씨는 기존 업무상과실치사상과 함께 건설산업기본법 위반 혐의를 받는다.
다원이앤씨를 비롯한 유관 업체 2곳의 관계자 3명도 건설산업기본법 등 혐의로 입건돼 조사 중이다.
건설산업기본법 29조는 건설 현장 내 공정 재하도급 계약을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있다. 다만 전문건설업자에게 재하도급할 경우엔 예외지만, 발주자(현대산업개발)의 서면 승낙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때문에 경찰은 현대산업개발도 불법 하도급 계약 구조를 인지 또는 개입 여부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특히 참사 당일 현대산업개발 관계자도 현장에 있었던 만큼,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와 부실 철거 공정을 알고도 묵인했는지 들여다본다.
앞서 현대산업개발은 “한솔 외에는 하청을 준 적이 없다. 법에 위배가 되기도 하고 재하도급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이면 계약·추가 연루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업체간 관계·지시 체계 등을 파악하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현대산업개발 측이 철거 중 먼지 관련 민원을 줄이고자 참사 당일 ‘살수를 많이 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도 파악 중이다.
이날 HDC현대산업개발 서울 본사 전산실과 건축·안전 관리 분야 사무실 등 3곳에서 압수수색을 벌여, 철거 용역 계약·안전 감독 관련 자료 일체도 확보했다.
이를 토대로 철거 용역 계약을 둘러싼 위법 여부, 정확한 철거공정 지휘 체계, 업무상 과실, 관리·감독 부실 여부 등을 규명할 방침이다.
박정보 수사본부장(광주경찰청 수사부장)은 “원청사 현대산업개발, 하청사 한솔, 불법 재하청사 백솔 등 공사 관계 업체 3곳과 감리사 등 총 4개 업체가 붕괴 원인 관련 직접 수사 대상이다”라면서 “정확한 공법 지시·계약 관계는 수사를 통해 실체를 확인하는 대로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지난 9일 오후 학동 4구역 재개발사업 철거 현장에서 무너진 5층 건물이 승강장에 정차 중인 시내버스를 덮치면서 9명이 숨지고, 8명이 크게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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