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송상품 등 1620만개 빼곡… 가연성 물질이 ‘불쏘시개’ 역할
1km 떨어진곳까지 매캐한 탄내… 중앙 철제구조물 휘어져 붕괴 우려
소방당국, 19일 안전진단 예정… 합동정밀감식은 이르면 21일부터
쿠팡 “심려끼쳐 몹시 송구” 사과문
경기 이천시 마장면 쿠팡 덕평물류센터 지하 2층에서 시작된 불은 건물 전체로 퍼져 나갔다. 만 하루를 넘긴 18일 오후에서야 큰 불길을 잡았지만 여전히 잔불은 남아 있는 상태다.
물류센터 안에 있던 1620만 개의 배송 상품, 포장재 등 가연성 물질이 불씨를 키웠다. 열기와 미로 같은 내부 구조 때문에 소방대원들은 물류센터 안으로 진입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 소방당국은 작은 불길까지 잡히면 안전진단을 거쳐 추가 대책을 내놓을 예정이다.
○ “가연성 물질 많아 내부 불씨 안 잡혀”
불이 난 물류센터에서는 하루 종일 시꺼먼 연기가 뿜어져 나왔다. 살수차 20여 대가 쉴 새 없이 물을 뿌려도 불길은 쉽사리 잡히지 않았다. 건물에서 1km 이상 떨어진 곳까지 매캐한 탄내가 진동했다. 전날 오전 5시 반경 시작된 불은 18일 오후 4시가 돼서야 큰 불길이 잡혔다.
물류센터 안에는 5만3600m³ 부피의 배송 상품, 종이 상자, 비닐, 스티커 같은 불에 타기 쉬운 물건들이 쌓여 있었다. 선반에 쌓인 물건 등이 무너져 내렸고, 여기에 불이 옮겨붙으면서 순식간에 물류센터를 집어삼켰다.
소방대원들이 건물 안쪽의 불을 끄기 위해 쉽게 들어가지 못한 것은 내부 열기가 250도를 넘어선 데다 내부 구조가 복잡했기 때문이다. 바닥 곳곳에는 물건을 옮기고 쌓아두는 컨베이어벨트와 선반이 놓여 있었다. 검은 연기로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물류창고 내부는 소방대원들에게는 미로나 다름없었다. 화재 당시 물류센터에서 있었던 쿠팡 직원은 “선반과 물건으로 가득한 건물 내부는 일주일 이상 다녀야 어떤 구조인지 알 수 있을 정도”라고 말했다.
소방청 국가화재정보시스템에 따르면 물류센터 같은 창고시설에서 발생하는 화재는 해마다 1400건가량이다. 올해도 17일 현재 715건이 발생해 23명의 인명 피해가 났다. 지난해 수도권 물류센터에서만 두 차례 대형 화재가 발생했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악순환만 되풀이되고 있다.
○ 건물 붕괴 우려… 19일 안전진단 예정
소방당국이 우려하는 것은 물류센터의 붕괴다. 이틀간 불이 난 탓에 건물을 지탱하고 있는 중앙 철제 구조물이 휘어진 것을 발견했다. 18일 오후 안전진단 전문가 3명이 붕괴 위험을 확인하기 위해 현장에 왔지만 불길이 거세 접근조차 못했다. 소방당국은 19일 오전 물류센터 안으로 진입해 잔불을 끈 뒤 붕괴 가능성을 판단하기로 했다.
소방당국은 쿠팡 측이 평소 화재 대비에 미흡했다는 정황을 발견했다. 올 2월 덕평물류센터 측이 자체 소방 점검을 했는데 ‘소화전 사용표지 미부착’ 등 100여 건의 지적사항이 나온 것이다. 쿠팡 측은 “지금은 시정조치를 한 상태”라고 해명했다.
공공운수노조 쿠팡물류센터지회는 “작업장에 먼지가 심하게 쌓여 전기장치에서 누전, 합선 같은 화재 위험이 높아 근로자들이 계속 지적했지만 개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은 25명으로 구성된 수사 전담팀을 꾸려 화재경보기 울림, 스프링클러 작동, 방화문 설치 여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스프링클러 작동 여부 등은 진술을 한 직원들의 이야기가 엇갈려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합동 정밀 감식은 이르면 21일부터 이뤄질 것으로 전해졌다.
쿠팡은 18일 강한승 대표이사 명의로 낸 사과문에서 “심려를 끼쳐 몹시 송구하다. 화재 원인 조사와 사고를 수습하는 데 적극적으로 협조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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