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 프린팅 의술’ 활용해 거동 불편한 64세 환자에 새 삶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2일 03시 00분


[인하대병원 '메디 스토리']발목 기능에 중요한 역할하는 거골
손상돼 붕괴되면 걸음걷기 힘들어… 티타늄 소재 활용해 맞춤형 제작
성공적인 수술로 재활치료 들어가

수술을 마친 다음 날 노점례 씨(왼쪽)와 김범수 교수가 발목뼈의 3차원(3D) 프린팅 제작 동영상을 함께 보며 6개월간의 수술준비 과정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인하대병원 제공
수술을 마친 다음 날 노점례 씨(왼쪽)와 김범수 교수가 발목뼈의 3차원(3D) 프린팅 제작 동영상을 함께 보며 6개월간의 수술준비 과정에 대해 대화하고 있다. 인하대병원 제공
주부 노점례 씨(64)는 지난해 가을부터 극심한 발목 통증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웠다.

제대로 걷지 못해 집 주변 재래시장에 가는 것도 겁이 날 정도였다. 지인의 부축을 받아야 겨우 외출할 정도로 힘든 삶은 계속됐다. 여러 병원에서 진찰을 받았지만 심하게 삔 것 같으니 휴식을 취하라는 대답만 돌아왔다.

고통은 이어졌고 노 씨는 결국 인하대병원을 찾았다. 주치의 김범수 인하대병원 정형외과 교수는 여러 검사를 거쳐 ‘거골(발목을 이루고 있는 뼈 중 가장 중심이 되는 뼈) 무혈성 괴사’ 진단을 내렸다. 발목뼈에 혈액이 공급되지 않으면서 뼈가 썩어 점점 무너지고 있었다.

김 교수와 노 씨는 숙의 끝에 국내 최초의 ‘3D 프린팅 거골 전치 환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기존에는 붕괴된 거골을 제거하고 뼈를 이식한 뒤 발목 관절을 고정하는 유합술이 널리 시행됐다. 그러나 유합술 시행 후에는 관절이 움직이지 않아 예전처럼 자연스러운 걸음을 할 수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였다.

의료 선진국 등에서는 거골을 제거하고 그 자리에 원래 모양과 똑같이 만든 복제품을 넣어주는 방법이 널리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복제품 수입 자체가 불가능한 데다 매우 고가여서 국내 사례가 없었다.

김 교수는 식품의약품안전처의 승인을 받기 위해 6개월 이상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의료기기 전문기업 큐브랩스㈜와 노 씨의 사례를 공유하는 등 연구에 몰두했다. 또 노 씨를 위해 가볍고 인체에 무해한 티타늄 소재와 금속 3D 프린팅 기술을 활용해 고강도 인공 거골을 맞춤형으로 특별 제작했다. 안전성과 유효성을 검증하기 위해 50여 차례의 제작 테스트를 거쳐 식약처의 긴급 승인 허가를 받았다.

노 씨는 5월 중순 성공적으로 수술을 받았다. 3일 만에 부기와 수술 부위의 통증이 사라져 퇴원했다. 이후 외래진료를 통해 수술 실밥을 제거했고, 현재는 보호 차원에서 보조기를 착용하고 생활하고 있다. 조만간 인하대병원에서 재활 치료에 들어갈 정도로 좋아졌다.

노 씨는 “보통 사람들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라며 “나처럼 발목뼈가 망가져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희망을 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수술하는 날까지 통증을 버텼다”고 말했다.

거골은 발목 기능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발목 관절과 거골하관절, 거주상관절이라고 하는 발목 주위 3개 관절의 중심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거골을 통해 발목을 구부리고 펴고, 돌리는 운동을 할 수 있다. 거골이 손상되거나 붕괴되면 걸음을 내딛기 어렵다. 2차적으로는 관절염도 나타나 극심한 통증이 수반된다. 산업재해 근로자와 교통사고를 당한 사람들에게서 거골에 자주 문제가 발생한다.

정부는 올해 초 3D 프린팅 산업 진흥 시행 계획을 수립하는 등 의료 분야의 적용을 검토하고 있다. 환자 맞춤형 의료 혁신 기술과 난치성 질병의 치료 보조기 개발에 예산을 지원할 예정이다. 성공 사례가 지속적으로 누적돼 그 실효성이 대중적으로 인정받기 시작하면 수혜 환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김 교수는 “국내에서 처음 시행된 이번 수술은 거골이 붕괴돼 걸음을 잘 걷지 못하면서 삶의 질이 떨어진 환자들에게 전환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며 “환자의 재활까지 적극적으로 치료 활동을 한다면 노 씨처럼 성공 사례를 만들어 거골 환자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차준호 기자 run-juno@donga.com
#3d 프린팅 의술#발목#거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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