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지 태양광 장마철 안전 비상]작년 역대 최장 장마에 27곳 피해
무너진 ‘태양광 산’ 방치… 장마가 무섭다
비탈 깎이고 옹벽 붕괴됐는데도 복구 제대로 시작 않고 ‘늑장 공사’
정부 “사유지 개입 어렵다” 방관, “올여름 어쩌나” 주민들 불안 호소
“(장마 피해) 복구 작업이 제대로 시작조차 안 돼 있어 솔직히 놀랐습니다. 올해도 비가 오면 비슷한 피해가 반복될 위험이 높아요.”
14일 오전 전북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에 있는 산지(山地) 태양광 발전 시설. 야산 중턱에 있는 이곳은 멀리서도 푸른 나무들 사이로 엄청난 비탈면 붕괴 흔적이 한눈에 들어왔다. 마치 산사태라도 일어나 황토색 흉터가 남은 듯했다. 시설 부지와 맞닿은 비탈면 위쪽엔 배수용 콘크리트 구조물이 무너진 쪽으로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위험해 보였다.
현장을 둘러본 한국산지보전협회의 산지안전점검단 관계자는 “비가 내리면 비탈면에 있는 토사가 추가로 쓸려갈 가능성이 높다”며 “올해 둘러본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 가운데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일부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이 비가 내려 비탈면이 무너지는 등 큰 피해가 발생했지만 1, 2년이 지나도록 복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여름철 장마도 다가오는데 자금 부족 등을 이유로 방치된 상태다. 태양광 발전 시설 설치를 독려했던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등도 “사유지라 적극적 개입이 어렵다”며 제대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산림청이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인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실에 제출한 ‘산지 태양광 발전 피해 시설 정밀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장마 기간 비 피해가 발생한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은 모두 27곳이다. 지난해 장마가 역대 최장 기간인 54일 동안 이어지며 2018년 6곳, 2019년 2곳에서 급증했다.
1년 가까이 지나도록 복구나 개선이 미흡한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은 장수군뿐만이 아니다. 경남 산청군 신안면과 생비량면 시설 2곳은 올 초에야 복구공사를 시작했거나 아직 개선작업이 이뤄지지 않은 상태였다. 현장을 점검한 산지보전협회는 주무 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 등에 문제점을 보고하기도 했다. 산업부 등은 지난해 10월경 ‘산지 태양광 발전 설비 안전관리 강화 방안’을 발표했으나 일부 시설은 복구나 개선 공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2년 가까이 방치된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도 있다. 경북 청도군 풍각면에 있는 시설은 2019년 7월 비가 내려 콘크리트 옹벽이 무너졌지만 최근까지 나무판 등으로 막아놓은 채 별다른 추가 조치가 없었다.
작년 폭우에 농지 덮친 ‘태양광 산’, 복구는커녕 배수 정비도 안돼
장수-산청 등 피해 현장 가보니
지난해 8월 8일 전북 장수군에는 하루 동안 237mm의 폭우가 쏟아졌다. 기록적인 강수량 탓에 장수군 천천면 장판리 태양광 발전 시설의 비탈면이 무너지며 흘러내린 토사는 아래에 있던 농지를 덮쳤다.
사고가 발생한 지 10개월이 넘은 14일. 장판리 현장은 피해 복구는커녕 무너진 그대로 방치돼 있었다. 농지로 흘러내린 토사만 치웠을 뿐, 주변 토지도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 걸을 때 발이 푹푹 빠질 정도였다.
○ “올여름 장마에도 불안하긴 마찬가지”
한국산지보전협회가 지난해 산림청의 용역을 받아 진행한 정밀조사에서 이곳은 수해를 입어 정밀조사가 이뤄진 전국 15곳의 시설 가운데 가장 나쁜 평가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비탈면 관리와 배수 처리 등 부지 관리의 모든 측면에서 낙제점을 받았다.
올해 역시 산지보전협회는 현장 점검을 통해 비슷한 평가를 내놓았다. 협회 관계자는 “붕괴된 곳 외에도 세굴(땅 파임) 현상이 나타나는 등 관리가 미흡해 전면적인 개선 조치가 시급하다”고 설명했다.
장수군에 뒤이어 평가 결과가 나빴던 경남 산청군의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도 상황은 심각했다. 조만간 여름철 장마가 다가오지만 복구도, 개선 작업도 마무리되지 않았다.
신안면 외고리에 있는 시설은 장수군과 마찬가지로 지난해 8월 8일 폭우로 토사가 흘러내려 주변 농지와 비닐하우스 등을 덮쳤다. 피해 면적만 1만338m²에 이른다. 올 2월부터 복구공사에 착수했지만 여전히 진행이 더딘 상황이다.
주변에서 양봉장을 운영하는 박동성 씨(42)는 “경사가 급해 작업을 제대로 해도 큰비가 내리면 토사가 흘러내리는 곳인데 아직 복구조차 되질 않았으니 올여름을 무사히 넘길지 불안하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비슷한 피해가 발생한 생비량면 도전리 시설은 기초적인 복구는 이뤄진 상태였다. 하지만 여전히 배수 시설이 제대로 정비되지 않아 땅 파임 현상이 심각했다. 협회 관계자는 “흙을 고정해줄 잔디와 나무도 없어 집중호우가 내리면 유실 가능성이 적지 않다”고 우려했다.
○ “피해 보상 못 해서 복구도 못 해”
비 피해 발생 뒤 1년이 다 되도록 민간 사업자들은 자금 부족과 법적 분쟁 등을 이유로 적극적인 조치를 하지 않고 있다. 관리 감독의 책임이 있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사유지라 복구공사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며 소극적인 태도만 보였다.
장수군은 태양광 발전 시설 사업자인 A 씨에게 지금까지 6차례 ‘원상 복구’ 명령을 내렸다. 별다른 진전이 없자 장수군 특별사법경찰은 이달 A 씨를 산지관리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 A 씨 측은 “주변 농민들과 피해 보상 절차 등이 마무리되지 않아 작업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군 관계자는 “행정대집행을 통해 우선 지자체 차원에서 복구 작업을 진행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산청군 태양광 발전 시설도 복구·개선 작업이 지연되자 군이 공사 예산 편성을 검토하기도 했다. 군 관계자는 “사유시설이라 지자체 예산으로 복구하는 건 맞지 않다고 판단해 예산 항목에서 제외했다”고 말했다. 시설 측은 “복구공사에 착수하는 과정에서 행정절차를 어겨 법적 문제가 빚어지며 작업이 지연됐다”고 말했다.
산림청은 올해도 산지보전협회와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 312곳을 이달 말까지 1차 점검할 예정이다. 전국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은 1만2527곳(지난해 말 기준)으로 우선 비 피해 위험이 높은 시설로 파악한 곳을 먼저 둘러볼 방침이다.
태양광 설비 안전관리에 대한 총괄책임을 맡은 산업통상자원부에도 최근 장수군 등의 태양광 시설 관리 부실 현황이 전해졌다. 산업부 관계자는 “산지보전협회 등을 통해 조치가 미흡한 시설이 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며 “한국전기안전공사와 특별 점검을 진행해 추가적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답했다.
국민의힘 정운천 의원은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의 비 피해 가능성이 큰 만큼 정부와 지자체가 복구, 개선 공사를 신속하게 진행하도록 법령을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2년전 비에 무너진 태양광 시설 옹벽 방치, 청도 주민 “장마에 또 토사 쏟아질까 겁나”
철제 구조물-나무판으로 비탈 지탱… 민원 이어지자 뒤늦게 복구 시작 “장마전에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
“멀리서 봐도 넘 불안하지 않습니꺼. 2년 가까이 내버려두고, 주민들은 우째 살라는 건지 모르겠습니더.”
17일 오후 경북 청도군 풍각면 월봉리.
주민 황승식 씨(63)는 자택에서 직선으로 겨우 90m 정도 떨어진 산지 태양광 발전 시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답답해했다. 면적이 2만7200m²나 되는 시설을 둘러싼 콘크리트 옹벽은 와르르 무너진 채 흉물스러웠다. 철제 구조물과 나무판이 비탈면을 겨우 지탱하고 있는 상태였다. 익명을 요구한 산지 전문가도 “아직 남아 있는 콘크리트 옹벽 구조물조차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고 진단했다.
게다가 주민들에 따르면 막아놓은 나무판도 점점 썩고 있는 상황. 황 씨는 “올해 장마나 태풍이 오면 버텨내기 힘들 것”이라며 “또다시 토사가 무너져 내리면 주민들은 어떻게 하란 말이냐”고 하소연했다.
청도군의 태양광 발전 시설 옹벽이 무너진 것은 2년 전쯤인 2019년 7월 21일이었다. 남부지방에 큰비가 내렸던 날이다. 한 주민은 “갑자기 우르르 쾅쾅 소리가 나더니 무너졌다. 토사가 마을 도로까지 쓸려 내려왔다”고 기억했다.
사고가 난 지 며칠 뒤. 청도군과 시설 관계자들이 토사를 치운 뒤 비탈면에 철제 구조물과 나무판을 설치했다. 주민들은 임시방편으로 본격적인 복구 및 개선 작업이 시작될 것으로 알았다. 하지만 현장은 바뀌지 않았다. 콘크리트 잔해와 철제 폐기물 등이 비탈면 주위로 방치된 채로 태양광 발전 시설은 다시 가동을 시작했다. 비가 내리면 물이 빠져나갈 배수 시설도 제대로 복구되지 않은 상태였다.
청도군 관계자는 “지난해 12월까지 10여 차례 복구를 촉구하는 공문을 발송해도 해당 사업자가 ‘자금이 부족하다’며 공사를 하지 않았다”며 “사유지인지라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는 작업을 할 수도 없다”고 해명했다.
정부는 뒤늦게 올 4월에야 감찰에 착수했다. 마을 주민들이 끊임없이 민원을 제기한 뒤였다. 행정안전부 안전감찰담당관실은 현장을 찾아 총길이 130m의 콘크리트 옹벽 시설이 무너진 채 방치된 것을 확인한 뒤 “지자체가 사업 중단 등 행정 조치 없이 허가 기간만 연장하는 등 부실하게 관리했다”고 청도군을 지적했다. 군은 이달 16일 별다른 징계 없이 시설 관련 담당 공무원 3명에게 경고 조치만 내렸다.
복구공사는 이달 14일부터 일부 콘크리트 옹벽 시설만 시작됐다. 주민 이모 씨는 “공사 장비가 며칠에 한 번씩만 투입되더라.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마무리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청도군 관계자는 “공사를 하도록 강제할 수단이 마땅치 않아 복구가 미뤄졌다”며 “8월까지는 마무리하도록 사업자를 독촉하고 점검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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