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관 통한 檢 수사누설 의혹이 발단
경찰의 별도 압수수색 영장 신청에 검사가 보완수사 요구없이 불청구
경찰, 심의위 신청… 지난달말 열려
심의위 “위법수집… 영장청구 부적정”
警 “심의위원명단 비공개로 불공정, 심의위 진행절차도 불리… 바꿔야”
전관(前官) 변호사를 통한 검찰의 제약회사 수사 누설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 영장을 검사가 법원에 청구하지 않아 경찰이 반발하고 있는 것으로 24일 확인됐다. 경찰은 검사가 정당한 이유 없이 영장을 기각했다며 영장심의위원회 소집을 요청했지만 영장심의위는 “검찰의 영장 불청구가 적정하다”고 판단했다. 경찰은 “영장심의위가 사실상 검찰 위주로 운영돼 경찰은 대처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며 제도 개선을 요구할 계획이다. 검경 수사권 조정에 따른 개정 형사소송법이 올 1월 시행된 이후 전국 각 고검에 영장심의위가 설치됐으며, 경찰의 요청으로 영장심의위가 열린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 “전관 통한 검찰 수사 누설 의심”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지난해부터 A제약회사의 임직원에 대한 수사를 해온 경찰청 중대범죄수사과는 압수수색으로 확보한 휴대전화를 디지털 포렌식하는 과정에서 녹취 파일을 발견했다. 검사 출신 전관 변호사가 누군가와 대화하는 목소리가 그대로 녹음됐으며, 대화 중에는 A사에 대한 현직 검사 등의 공무상비밀누설 혐의를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검사의 이름이나 직책 등이 명시되지 않았지만 해당 사건을 수사한 이들이 아니고서는 알 수 없는 구체적인 정보가 전관 변호사를 통해 전달됐을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녹취 파일을 파악한 경찰은 누가 수사 내용을 누설했는지 등을 특정하기 위해 지난달 초 검찰에 해당 녹취 파일에 대한 압수수색 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이 별도 영장을 신청한 것은 파일이 발견된 휴대전화가 A사를 수사하기 위한 목적에 한정돼 압수된 것이기 때문이다. 해당 녹취 파일을 기반으로 또 다른 수사를 벌이려면 법원으로부터 별도의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는 절차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해당 녹취는 ‘위법 수집 증거’가 돼 향후 재판에서 활용될 수 없다.
그러나 경찰이 신청한 영장을 별도의 보완수사 요구 없이 검사는 법원에 청구하지 않았다. 검찰의 영장 불청구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경찰은 약 일주일 뒤 서울고검 영장심의위 심의를 공식 신청했다. 올 1월 시행된 영장심의위는 검사가 보완수사 요구 없이 영장을 청구하지 않았거나, 영장 신청 5일 뒤에도 청구 여부를 결정하지 않았을 때 경찰 등의 신청으로 열리게 된다. 당시 경찰에서는 “검찰의 판단과는 별개로 법원의 최종 판단을 얻기 위해서는 영장 청구가 필요하기 때문에 영장심의위 심의를 받아야 한다”는 취지의 내부 의견이 나왔다고 한다.
○ 수사권 조정 이후 검경 첫 충돌
지난달 말 서울고검의 첫 영장심의위는 경찰과 검찰의 의견 등을 들은 뒤 심의위원들이 투표로 영장 청구가 부적정하다는 결과를 내놨다. 경찰은 “전관예우를 통한 검찰 수사 기밀 누설 의혹에 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입장이었지만 영장심의위는 “녹취가 이미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에 해당한다”는 검찰의 의견을 그대로 수용한 것이다.
경찰은 사건 관련자 등이 있을 수 있는데, 심의위원 명단이 비공개인 점 등은 공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영장심의위는 법조계와 학계 등의 추천을 받아 20명 이상 50명 이하의 후보단을 구성하고, 심의위 요청이 있으면 안건별로 10명의 심의위원을 무작위로 추출해 심의를 한다. 영장심의위 진행 절차도 바뀔 필요가 있다는 것이 경찰의 시각이다. 심의위 규칙은 원칙적으로 경찰, 검사 순서로 의견을 듣고, 상대방이 무슨 의견을 개진하는지 알 수 없는 구조다. 경찰 관계자는 “심의 결과 통보 서류 양식에 영장 청구가 적정한지 부적정한지만 적도록 되어 있어 경찰 입장에서는 위원들의 정확한 판단 이유를 알 방법이 없다”고 말했다.
일단 경찰은 영장심의위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검찰 측과 협조해 개선 방안을 강구할 방침인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고검 관계자는 “영장심의위와 관련한 내용은 일절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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