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우 나뉘어 서로 할퀸 상처는 국가가 저지른 죄… 사과받고 싶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5일 03시 00분


“전쟁 상처엔 좌우 없어”… ‘원수’를 품은 6·25 희생자 유족들
난리중 이웃에게 가족 잃은 이들… 말 못했던 아픔 털어내도록 설득
16년간 민간인 희생자 639명 찾아… 진실화해위 피해자 등록 도와

24일 충남 홍성군 용봉산 인근에 위치한 6·25전쟁 홍성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장광훈 씨(왼쪽)와 이종민 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2005년부터 군내 곳곳을 다니며 639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찾아냈다. 홍성=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24일 충남 홍성군 용봉산 인근에 위치한 6·25전쟁 홍성 민간인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장광훈 씨(왼쪽)와 이종민 씨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이들은 2005년부터 군내 곳곳을 다니며 639명의 민간인 희생자를 찾아냈다. 홍성=원대연 기자 yeon72@donga.com
“어렸을 땐 아버지를 좌익으로 몰고 가 죽인 놈들에게 복수하는 꿈만 꿨어요. 이제는 그런 마음이 없어요. 좌든 우든 전쟁으로 부모 잃고 고아로 지내온 세월은 다 똑같더라고요.”

6·25전쟁 당시 충남 홍성에서 좌익으로 몰려 군경의 총에 아버지를 잃은 이종민 씨(73)에게 전쟁은 깊은 상처로 남아 있다. 아버지에게 누명을 씌운 동네 사람들에 대한 분노를 주체하기 어려웠던 때도 있었다. 이제 노인이 된 이 씨는 “동네가 좌우로 쪼개져 화해할 겨를도 없이 세월이 흘러버렸다”며 “집집마다 아픈 사연을 끌어안고 살면서도 말 한마디 못 하고 산 세월이 70년”이라고 했다.

2005년 진실화해위원회 1기가 출범했을 때 이 씨는 먼저 침묵을 깨고 피해 신고를 했다. “아버지 3형제가 한날한시에 죽임을 당했어요. 빨갱이 자식이란 멍에에 어디 가서 목소리 한번 못 내고 살던 세월을 이루 말할 수 없었죠. 피해를 인정받고 떳떳하게 살고 싶었습니다.”

이 씨는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 명단에 아버지 이름을 올린 뒤에도 진실 규명을 멈추지 않았다. 같은 아픔을 가진 죽마고우 장광훈 씨(74)와 ‘민간인 희생자 홍성유족회’를 꾸렸다. 두 사람은 홍성군 곳곳을 누비며 유족들이 진실화해위 피해자 등록 등 국가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난 16년간 찾아낸 희생자가 639명에 이른다.

“좌우 나뉘어 서로 할퀸 상처는 국가가 저지른 죄… 사과받고 싶어”
“유족들 먼저 용기를 내주시면 전국 어디든 찾아갈 준비 돼 있어”

2016년 발굴된 홍성군 광천읍 폐금광의 민간인 학살 유해매장지 현장. 이곳에서 희생자 유해 21구와 M1소총 탄두 등이 발견됐다.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2016년 발굴된 홍성군 광천읍 폐금광의 민간인 학살 유해매장지 현장. 이곳에서 희생자 유해 21구와 M1소총 탄두 등이 발견됐다. 한국전쟁기민간인학살유해발굴공동조사단 제공
“6·25전쟁 때 이웃의 가족이 내 가족을 죽음으로 몰았을 수도 있는데 어느 누가 가족이 당했던 비극을 쉽게 입 밖에 꺼낼 수 있겠어요.”

16년째 충남 홍성에서 ‘한국전쟁 민간인 희생자 홍성유족회’ 활동을 해온 장광훈 씨(74)는 희생자 유족들을 찾아가 “가슴 깊이 눌러온 아픔을 꺼내놓자고 설득하지만 쉽지 않다”며 이렇게 말했다. 장 씨는 그런 유족들에게 꼭 전하는 말이 있다고 한다.

“좌우로 나뉘어 서로를 할퀸 상처 모두 국가가 국민에게 저지른 죄입니다. 국가로부터 사과를 받아내야 고인의 명예가 회복될 수 있어요.”

홍성에 살았던 지인섭 씨(73)는 올 1월 난생처음으로 6·25전쟁 당시 가족이 겪었던 참극을 입 밖으로 꺼냈다. 지 씨가 두 살이었던 그해 할아버지가 인민군의 손에 목숨을 잃었다. “평생 가슴에 묻으려 했어요. 괜히 말 꺼냈다가 온 가족이 다 아플 것 같아서요. 하지만 유족회에 찾아가 지난 일을 털어놓고 나니 가슴속 응어리가 풀어졌습니다.”

지 씨가 이런 결심을 하기까지 장 씨의 설득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장 씨는 지 씨에게 “저도 희생자의 아들입니다. 우리가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 고인이 당했던 피해를 입증해 국가로부터 사죄를 받아내야 돌아가신 가족들에게 떳떳하지 않겠어요”라고 했다.

지 씨는 결국 유족회를 찾아와 피해 사실을 털어놨고 지난해 12월 진실화해위원회 2기가 출범하자 위원회에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했다. 장 씨와 함께 유족회를 이끌어온 이종민 씨(73)는 이런 사례를 자주 접했다고 한다. 첫 만남 땐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그로부터 몇 달 뒤 또는 몇 년 뒤에야 마음을 여는 경우가 많다.

유족회가 2005년 진실화해위 1기 출범 이후 16년간 찾아낸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가 639명. 올해에만 21명을 추가로 찾아냈다. 이렇게 찾아낸 희생자의 유족 가운데 지 씨처럼 직접 진실규명 신청서를 제출한 사례가 많지는 않다. 이 씨는 “이젠 희생자의 자녀들 나이도 70, 80대다. 노구를 이끌고 직접 서류를 제출하고 피해를 진술하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했다.

장 씨와 이 씨는 “유족회가 직접 유족들을 찾아다니면서 진술도 받고 서류 접수도 돕고 있다. 유족들이 먼저 용기를 내주기만 하면 전국 어디든 찾아갈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진실화해위에 따르면 충남 홍성군에서 6·25전쟁 민간인 희생자로 현재까지 207명(13건)이 피해를 인정받았다. 출범 후 6개월이 된 진실화해위 2기에 접수된 진실규명 신청 건수는 현재 530건이다.

#6·25 희생자 유족들#국가가 저지른 죄#사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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