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가 세운 ‘산골도서관’에 도움의 손길 답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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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 전의면 ‘전의마을도서관’
“돕고 싶다” 재정-재능기부 이어져
대덕 과학자들은 과학강연 약속
주말엔 음악회 등 문화행사 계획

“놀랍고, 고맙습니다. 우리 국민 참으로 자랑스럽습니다.”

어린이날인 지난달 5일 세종시 전의면에 어린이 위주의 ‘전의마을도서관’을 개관한 장인순 전 한국원자력연구원장의 말이다. 주민들의 호응이 높은 데다 재정 및 재능 도움의 손길도 답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관을 며칠 앞두고 도서관을 찾아갔을 때 기자는 과연 아이들이 찾아올까 걱정이 됐다. 소개 기사에 ‘절이나 들어설 법하다’고 썼을 만큼 도서관은 동네와 떨어진 산기슭의 공장 건물 내에 있었다. 장 전 원장은 “단 한 명의 아이라도 찾아와 변화가 생긴다면 그걸로 만족”이라는 각오였다.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세종시 전의면 아이들이 전의마을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따뜻한과학마을벽돌한장 제공
부모의 손을 잡고 온 세종시 전의면 아이들이 전의마을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있다. 따뜻한과학마을벽돌한장 제공
개관한 지 50여 일. 주말이면 10명 안팎의 아이들이 찾는다. 가장 많은 날은 하루에 40명이 찾아오기도 했다. 아이들은 책을 읽다가 과학에 궁금증이 생기면 장 전 원장에게 찾아가 묻곤 한다. 도서관 입구에 전시된 전통 도검을 신기한 듯 만져보기도 한다. 도서관은 장 전 원장의 수양딸 라연희 씨가 운영하는 고려전통기술㈜ 고려도검 공장 건물 2층에 있다. 주민 배경서 씨는 방명록에 “조용하고 여유 있게 책을 볼 수 있어 좋다. 아이들에게 새로운 추억의 장소가 생긴 것 같다”고 적었다.

부모님이 태워다 주기 어려워 택시를 불러 타고 오면 대신 요금을 내주겠다는 약속도 벌써 서너 번 이행했다. 장 전 원장은 이를 위해 택시회사와 사후 비용 정산 계약을 맺었다.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는 주중에는 어른들이 찾아온다. 도서관은 초중고교생용 3000권을 비롯해 성인용까지 모두 9000권가량의 장서를 갖췄다. 원자력 대부가 산골에 도서관을 열었다는 얘기를 듣고 전국 각지에서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장 전 원장은 지난해 12월 ‘여든의 서재’를 출간하면서 책 판매 수익금 전액을 전의마을도서관을 건립하는 데에 쓰겠다고 약속한 뒤 이를 이행했다.

시골 아이들의 가능성을 일깨워보겠다는 뜻에 공감한 도움의 손길이 속속 이어지고 있다. 이달 중순 동아일보 독자인 강민정 씨가 “도서관 개관 기사 ‘시골도서관 여는 원자력 대부…아이들에게 ‘왜?’를 선물할 것’을 보고 감동받았다. 매달 5만 원씩 도서관에 보내고 싶다”고 기자에게 연락을 해왔다. 강 씨는 이달부터 그 약속을 실천하고 있다.

1960년대 간호사로 미국으로 건너가 현재 필라델피아에 사는 교포 정정숙 씨는 “힘을 보태고 싶다”며 3000달러를 내놨다. 장 전 원장 지인인 대구의 원자력국민연대 회원 등 6명이 100만 원씩을 보내왔다.

법제처 공무원 부부가 자녀들과 같이 찾아와 아동용 도서 1000여 권을 전달했다. 전의면 주민 강신훈 씨도 새 책 200여 권을 기증했다. 대전민인협회는 이번 주 2000권의 도서를 전달할 계획이다.

전의마을도서관을 방문한 따뜻한과학마을벽돌한장 일행이 과학강연 기부를 약속했다. 왼쪽에서 첫번째가 정용환 벽돌한장 회장, 두번째가 도서관을 세운 장인순 전한국 원자력연구원장. 따뜻한과학마을벽돌한장 제공
전의마을도서관을 방문한 따뜻한과학마을벽돌한장 일행이 과학강연 기부를 약속했다. 왼쪽에서 첫번째가 정용환 벽돌한장 회장, 두번째가 도서관을 세운 장인순 전한국 원자력연구원장. 따뜻한과학마을벽돌한장 제공
대전 대덕연구개발특구의 정용환 따듯한과학마을벽돌한장 회장 일행이 찾아와 도서관과 주변 학교에서 과학 강연을 해주기로 약속했다. 벽돌한장은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우수한 과학자들을 중심으로 대규모 강사 풀을 갖춘 과학 대중화 단체다.

장 전 원장은 “꽤 많은 분이 10만 원, 20만 원씩 보내주시고 어떤 분들은 도서관을 응원하기 위해 나의 저작인 ‘여든의 서재’를 구입해 주기도 한다”며 “방학이 돼 아이들이 더 많이 오면 주말에 재능기부를 약속한 분들의 도움을 받아 음악회 등 문화행사도 열어볼 계획”이라고 말했다.

#세종시#전의마을도서관#산골도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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