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위동, 서울 택지개발 60년史 전시장”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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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사박물관 ‘도시주거 변천’ 발간

1964년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조성된 국민주택 관련 소식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모여 있다. 국민주택은 서울 사대문 안에 살던
 중산층의 이주 목적으로 조성됐다(위쪽 사진). 지금의 북서울꿈의숲 자리에 1985년 11월 서울드림랜드 착공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드림랜드는 강북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으로 1987년 4월 개장했으나 2008년 문을 닫았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1964년 서울 성북구 장위동에 조성된 국민주택 관련 소식을 취재하기 위해 기자들이 모여 있다. 국민주택은 서울 사대문 안에 살던 중산층의 이주 목적으로 조성됐다(위쪽 사진). 지금의 북서울꿈의숲 자리에 1985년 11월 서울드림랜드 착공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드림랜드는 강북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으로 1987년 4월 개장했으나 2008년 문을 닫았다. 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서울 성북구 장위동과 강북구 번동에 사는 사람들은 인근에 있는 ‘북서울꿈의숲’을 ‘공주릉’이라고 부른다. 조선시대 공주의 묘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1960, 70년대 장위동에는 지금의 용산구 한남동처럼 유명인들이 모여 사는 부촌이 조성되기도 했다.

장위동은 서울에서 다양한 역사의 흔적과 도시화에 따른 개발의 자취를 살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최근 이러한 변천사를 담은 보고서 ‘장위동, 도시 주거 변천의 파노라마’를 발간했다고 28일 밝혔다. 보고서는 서울역사박물관 홈페이지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박물관 관계자는 “서울에서 지난 60여 년간 시행된 다양한 택지개발사업의 전개 양상을 장위동에서 확인할 수 있다”며 “서울 택지개발 60년사를 관통하는 야외 전시장인 셈”이라고 말했다.

장위동은 조선 말기까지 서울의 옛 이름인 한성의 끝자락 농촌마을에 불과했다. 이곳 주민들이 북서울꿈의숲을 공주릉으로 부르는 것은 조선 제23대 순조의 딸인 복온공주(1818∼1832)와 관련이 있다. 복온공주는 부마 김병주와 혼인했다가 15세에 생을 마감해 이곳에 묻혔다. 이후 남편과 합장됐다가 다른 곳으로 이장됐다.

본격적인 주택지 개발은 6·25전쟁 이후 시작됐다. 옛 대한주택공사의 전신인 대한주택영단은 1958년 경춘철도주식회사 소유였던 장위동 68번지 일대에 ‘부흥주택’과 ‘재건주택’을 지었다. 각각 171가구와 200가구를 수용할 수 있는 규모로, 가구당 25∼30m² 수준의 작은 공간이었다.

4년 뒤에는 가구당 50m² 안팎인 국민주택도 대규모로 지어졌다. 박물관 관계자는 “연립 형태인 부흥주택, 재건주택과 달리 국민주택은 모두 단독주택으로 사대문 안 중산층이 입주 대상”이라고 설명했다.

1960년대 장위동에는 민간 자본이 투입된 대규모 주택단지도 들어서기 시작했다. 동방고개에 조성된 동방주택단지다. 동방생명(현 삼성생명)은 당시 장위1동의 경사지에 택지를 조성해 일반에 분양했다. 개별 필지가 330m²(약 100평)를 웃돌았고 땅을 사들인 사람들은 이곳에 잔디가 깔린 마당이나 수영장이 딸린 호화 주택을 지었다. 주민 우모 씨(69)는 “영화배우 문희, 허장강 씨가 동방주택단지에 살았다”며 “태릉 육군사관학교와 가깝다 보니 1970년대 말까지만 해도 이곳에 사는 장성들의 별을 합치면 57개나 된다는 얘기도 돌았다”고 했다.

장위동의 도시 발전은 1980년대 후반부터 정체되다 2005년 뉴타운 개발사업 대상지로 지정되면서 변신을 준비 중이다. 한때 강북 최대 규모의 놀이공원이었던 드림랜드는 1987년 4월 개장했다가 2008년 문을 닫은 뒤 북서울꿈의숲으로 바뀌었다.
#장위동#서울 택지개발#60년史 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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