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니아들이 찾는 ‘빵지 순례’ 명소… ‘대빵’ 만나러 갑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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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부터 ‘빵은 대구’ 명성
지역 명소 이야기까지 깃든 빵

‘빵지 순례(빵+성지 순례)’가 취미라면 대구는 꼭 들러볼 만한 도시다. 대구에서 시작해 전국구로 명성을 떨치는 빵집뿐 아니라 대구 사람만 안다는 숨은 빵집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빵은 대구’라는 명성이 자자하던 1970, 80년대의 영광은 최근 다양한 토종 베이커리 브랜드가 재현하고 있다. 대구시는 ‘대구 빵이 최고’라는 의미의 ‘대빵’ 상표권을 등록하고 대구 명품 빵 알리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제2대 ‘대빵’ 후보는?


수형당 단팥빵, 고려당 앙금쿠키, 뉴욕제과 사라다(샐러드)빵, 뉴델제과 롤케이크, 풍차베이커리 모닝빵….

모두 한 시대를 풍미한 대구의 대표 빵이다. 대형 브랜드 제과점과 패스트푸드 공세에 밀려 대부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전통과 추억은 여전하다. 부침을 겪던 대구 제빵산업은 개성 있는 동네 빵집과 창고형 베이커리 등이 인기를 끌면서 부활하고 있다.

애플모카빵.
애플모카빵.
2019년 대구에서 제1회 대구 명품 빵 경연 대회가 열렸다. 33개 출품작 중 전문가와 시민 평가단이 뽑은 최고의 빵은 ‘애플모카빵’이었다. 겉은 은은한 모카향이 배어나고 속에는 달콤한 사과쨈이 듬뿍 담겼다. 대구 특산물인 사과를 활용해 더욱 눈길을 끌었다. 레시피를 전수받은 동네 빵집 22곳에서도 애플모카빵을 맛볼 수 있다.

10월에는 제2회 대구 명품빵 경연대회가 열린다. 애플모카빵의 뒤를 이을 대빵 후보에는 어떤 빵이 있을까.

삼송빵집의 빵인 ‘마약빵’.
삼송빵집의 빵인 ‘마약빵’.
‘안 먹어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다’는 ‘마약빵’도 대구에서 꼭 먹어야 할 빵이다. 소보로(곰보빵) 안에 통옥수수와 특제 소스를 첨가해 달콤하면서도 고소한 맛을 냈다. 대구 토박이인 64년 전통 ‘삼송빵집’의 대표 빵이다. 2008년 출시 때는 ‘통옥수수빵’으로 불렸지만 먹어 본 사람들이 중독성 있는 빵이라는 의미로 마약빵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경찰이 실제 빵 속에 마약 성분이 들었는지 현장 조사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군산 이성당 야채빵, 대전 성심당 부추빵처럼 ‘로컬 빵’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높은 인기에 힘입어 서울 대형 백화점에도 입점했다.

삼송빵집의 빵인 일본까지 입소문 났다는 ‘반월당고로케’.
삼송빵집의 빵인 일본까지 입소문 났다는 ‘반월당고로케’.
뻔한 고로케처럼 보이지만 ‘반월당고로케’는 다르다. 눅눅해지지 않고 바게트처럼 바삭한 식감을 유지한다. 밀가루 반죽부터 발효, 빵가루를 입히는 과정까지 연구를 거듭한 끝에 현재의 레시피를 찾았다. 부드러운 맛을 위해 3단계로 나눠 발효하는 것도 반월당고로케의 비법. 2010년 5가지로 시작한 메뉴는 카레, 김치, 땡초 등 20여 개로 늘었다. 한국보다 먼저 고로케가 인기를 끌었던 일본에서도 관심을 끌만큼 입소문이 났다.

골목상권을 살린 빵의 힘


삼송빵집의 빵인 팩토리09의 ‘공구빵’.
삼송빵집의 빵인 팩토리09의 ‘공구빵’.
모든 음식이 마찬가지이지만 빵 역시 맛뿐만 아니라 눈으로 즐기는 음식이다. ‘팩토리 09’의 ‘공구빵’도 그렇다. 도면만 있으면 탱크도 만들어낸다는 북성로 공구골목의 주물기술이 사장되는 것을 안타까워한 공예 디자이너가 아이디어를 냈다. 50년 경력의 장인이 빵틀을 만들었다. 쇠 냄새만 나던 북성로에 2017년부터 달콤한 빵 냄새가 풍기기 시작했다. 볼트, 너트, 멍키스패너 모양을 한 마들렌은 지역 명물이 됐다. 일본 관광객들은 ‘도쿄 바나나빵’을 떠올리며 반긴다.

‘대구근대골목단팥빵’은 온 가족이 머리를 맞대 탄생했다. 창업자 부부가 2년여에 걸쳐 크림 단팥앙금을 개발했다. 납작한 기존 단팥빵이 아닌 봉긋하게 부푼 모양으로 눈길을 끌었다. 미국 유학 중이던 딸은 젊은 층 입맛을 겨냥한 녹차와 생크림 같은 신 메뉴를 제안했다. 옛 풍취가 고스란히 남은 근대 골목에 중국 상하이 임시정부청사를 연상시키는 고풍스러운 매장을 열었다. 하루 15∼20번씩 갓 구운 빵이 나올 때마다 종이 울리는데, 손님들이 가장 북적이는 시간이다.

대구 달성군 가창면사무소를 중심으로 약 100m 거리엔 찐빵가게 10여 곳이 밀집해 있다. 양손으로 가르면 넉넉하게 가득 찬 팥소, 입안 가득 퍼지는 소박한 단맛과 폭신한 식감. 찐빵 마니아가 생기는 이유다. 찐빵거리에 가장 먼저 문을 연 ‘가창옛날찐빵손만두’는 팥소 단맛을 낮춘 대신 양은 50%가량 늘려 손님들 입맛을 사로잡았다. 같은 거리에 2호점까지 문을 연 ‘호찐빵만두나라’도 유명하다.

빵집에서 ‘겉바속촉(겉은 바삭하고 속은 촉촉하게)’의 대명사는 크루아상이다. ‘레이지 모닝’은 대구 크루아상 바람의 발원지다. 크림을 넣은 크루아상, 아몬드 크루아상, 크루아상 샌드위치 등이 인기다. 손님에게 가장 신선한 빵을 제공하기 위해 당일 판매 원칙을 지킨다. 남은 빵은 푸드뱅크에 기부한다.

한약재 넣고, 방부제 빼고… 빵도 건강하게

‘몸에 좋은 건강한 빵은 어떻게 만들까.’

‘행복빵’은 한방종합병원과 한의과대학을 설립한 변정환 대구한의대 명예총장의 고민에서 탄생했다. 밀가루, 우유, 흰 설탕, 방부제를 쓰지 않는다. 대신 쌀가루와 율무, 현미, 두유를 사용하고 감초나 계피 같은 한약재를 첨가한다. 그야말로 제빵의 기본 원칙을 무시한 빵이다. 부드러운 식감을 내는 것도, 빵 모양을 잡는 것도 쉽지 않았다. 창업자는 “건강해야 행복하다”는 신념으로 개발비용 수억 원을 아끼지 않았다. 기존 빵보다 밀가루 반죽 숙성온도를 낮추고 굽는 온도를 높였다. 그렇게 쫄깃하고 담백한 한방 자연 발효빵이 탄생했다.

빵을 좋아해도 속이 불편해 마음껏 즐기지 못하는 이도 많다. 밀탑 베이커리, 신라호텔 출신의 제빵사가 차린 ‘오월의 아침’은 방부제 대신 천연발효종을 넣은 빵을 선보인다. 소화력이 떨어지는 고령자를 비롯해 건강에 관심이 높은 고객에게 인기다. 은행잎 모양 황금은행빵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달성군 도동서원 은행나무를 모티브로 했다. 한방 먹거리 경연에서 입상한 십전대보빵도 유명하다. 9년 전 1500원이던 단팥빵 가격도 그대로다.

창고형 베이커리로 진화


빵의 단짝은 커피다. 최근 대구는 빵의 도시이자 ‘카페 도시’로 주목받고 있다. 골목길을 따라 다양한 커피와 베이커리를 즐기는 카페 투어가 한창이다. 수년 전부터 자리 잡기 시작한 창고형 베이커리 카페들도 대구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프랑스어로 ‘깊은 숲속’이라는 뜻의 ‘오 퐁드 부아’는 넓은 통유리창과 높은 천장(8m) 덕에 식물원에 온 듯한 느낌을 준다. 슈바게트, 감자 크림 치아바타 등이 유명하다. 팔공산 가는 길이라면 조경이 아름다운 ‘헤이마’도 빼놓을 수 없다. 항상 손님으로 북적인다. 500년 된 향나무와 느티나무가 이색적인 건축물과 조화를 이룬다.

‘남산제빵소’는 대구를 대표하는 베이커리 북카페다. 한쪽 벽을 가득 채운 책장이 인상적이다. 테이블 간격이 넓어 옆 테이블 소리가 넘어오지 않는다. ‘마들렌 베이커리’는 대구 생크림 케이크 시대의 개척자다. 모둠 조각 케이크와 무스 케이크를 앞세워 버터 케이크에 길들어진 손님의 입맛을 바꿨다. 현재 15개의 직영점을 운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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