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 “피해자 처참, 우리는 참담”…치매 주장 오거돈에 일침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9일 21시 5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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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심정은 처참하고, 저를 포함한 우리 사회가 느낀 감정은 참담했다. 피고인은 우리나라를 앞서 이끄는 사람으로, 피해자는 물론 사회 구성원의 마음을 먼저 헤아려야 한다.”

부산지법 형사6부(부장판사 류승우)는 29일 직원 2명을 강제 추행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오거돈 전 부산시장(73)에게 징역 3년형을 선고하며 이 같이 밝혔다. 오 전 시장이 재판 과정에서 일부 혐의를 계속 부인하고 치매 증상을 언급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등 책임을 회피하는 태도를 보인 것에 재판부가 일침을 가한 것이다.

● 재판부, 오 전 시장 주장 조목조목 비판


재판부는 오 전 시장에게 적용된 강제추행, 강제추행미수, 강제추행치상, 무고 등 4개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면서 주요 쟁점이었던 강제추행치상 혐의를 유죄로 판단한 이유를 상세히 설명했다. 검찰은 피해자 A 씨가 지난해 4월 집무실에서 오 전 시장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한 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진단을 받는 등 상해를 입었다며 이 혐의를 적용했다. 오 전 시장 측은 재판에서 “피고인이 아닌 다른 사람들에 의한 ‘2차 가해’나 수사의 장기화 등이 피해자의 정신적 고통에 영향을 줬다”며 혐의를 인정할 수 없다고 맞섰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피해자는 조직의 장(長)인 피고인의 업무수행 중 무방비 상태에서 갑자기 범행을 당해 매우 치욕적이고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을 것”이라며 오 전 시장 측 주장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었다.

재판부는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나 수사가 장기화된 것은 피고인의 지위와 (피고인과 관련된) 다른 범죄 수사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어 피고인이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며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역시 피고인이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오 전 시장 측의 “우발적 범행”이란 주장에 대해 “피고인의 범행들은 계획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지만 단순히 우발적이라거나 일회적이라고도 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경도 치매를 앓고 있다”는 오 전 시장의 주장에 대해서도 “범행에 영향을 줄 인지능력 장애가 있다고 볼 수 없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오 전 시장 사건을 수사한 경찰은 당초 A 씨에 대한 강제추행 혐의에 대해서만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후 검찰 수사에서 오 전 시장이 2018년 11월 또 다른 피해자인 B 씨를 관용차에서 성추행했고, 한 달 뒤 회의실에서 또 다시 추행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가 드러났다. 당시 검찰은 B 씨를 어렵게 설득해 진술을 받았다. B 씨의 피해 진술이 확보되면서 오 전 시장이 B 씨 성추행 의혹을 폭로한 유튜브 방송 진행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입막음하려 한 혐의(무고)도 확인됐다. 다만 수사 과정에서 오 전 시장에 대해 2차례 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번번이 법원에서 기각되는 등 우여곡절이 많았다.

● 오 전 시장, 선고 직후 눈물 보이며 몸 휘청


이날 재판부는 선고 직후 “실형에 따른 도주 우려가 있다”며 오 전 시장에 대해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재판 내내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던 오 전 시장은 선고 내용에 충격을 받은 듯 눈물을 보이며 잠시 몸을 휘청거리기도 했다.

오 전 시장은 부산시장 출신 중 처음으로 실형선고를 받는 불명예를 안게 됐다. 구치소에 수감되는 것은 2004년 검찰 조사를 받던 중 구치소에서 극단적 선택을 했던 고 안상영 전 시장에 이어 두 번째다.

오 전 시장은 2005년 1월~2006년 3월 해양수산부 장관을 지낸 뒤 국립 한국해양대와 부산의 사립대인 동명대 총장을 역임했다. 4번의 정치 도전 끝에 더불어민주당 소속으로 2018년 6월 지방선거에 나와 당시 현직이던 서병수 자유한국당 후보를 누르고 부산시장에 당선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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