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오전 제주시 절물자연휴양림. 하늘을 찌를 듯 솟아오른 삼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휴양객들이 여유롭게 발걸음을 옮기면서 산림욕을 즐겼다. 나무 평상에 앉아 이야기꽃을 피우기도 했다.
이 휴양림은 삼나무숲과 함께 절물오름(해발 697m)을 중심으로 조성됐다. 절물오름 옆 사면에는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너나들이길’(3km)이 만들어졌다. 지면에서 정상까지 높이(비고)가 120m, 거리는 1.6km가량으로 완만한 오르막인 초입을 지나자마자 지그재그 급경사길이 이어진다.
관광객 김경식 씨(64)는 “숲에서 휴식하다 오름을 올라 보니 시원하게 트인 전경이 펼쳐졌고, 분화구 능선 한 바퀴를 돌고 나자 몸과 마음이 한결 상쾌했다”며 “제주에는 한라산과 바다만 있다고 생각했는데 오름이라는 경관이 특별했다”고 말했다.
숲으로 이뤄진 오름을 걸으며 심신의 건강을 챙기는 오름 탐방은 ‘웰니스’의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웰니스는 육체·정신적 건강의 조화로 즐거운 삶을 찾는 웰빙(Well-being·참살이)에 건강(Fitness), 행복(Happiness)을 더한 의미다.
○ 오름에서 찾는 건강과 행복
홍성화 제주대 교수는 2018년 세계자연유산지구인 거문오름의 국제 트레킹 축제 참가자를 대상으로 웰니스와 행복감을 주제로 조사했다. 조사 결과 자연·숲 치유를 콘셉트로 한 오름 탐방이 개인의 행복감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홍 교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라 갑갑증을 해소하는 오름 탐방이 더욱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웰니스의 바탕인 오름은 자연휴양림·숲, 건강·운동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 자연휴양림·숲 유형의 오름은 서귀포휴양림 법정악, 붉은오름자연휴양림 붉은오름과 말찻오름, 교래자연휴양림 큰지그리오름, 치유 숲 시오름, 한라수목원 광이오름, 한라생태숲 샛개오리오름 등을 들 수 있다. 대부분 울창한 숲으로 이뤄졌다는 공통점이 있고 일부 오름에는 전망대가 들어서기도 했다.
숲이 있는 오름은 무엇보다 산림욕 효과가 크다. 숲에 있으면 스트레스 호르몬이나 맥박과 혈압이 감소할 뿐 아니라 식물에서 나오는 방향성 물질인 피톤치드를 흡입하면 면역력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된다는 연구 결과를 국내외에서 확인할 수 있다. 바람에 피톤치드가 날아가는 정상보다 산 중턱이 더 효과적이고, 활엽수보다 소나무 등 침엽수에서 피톤치드가 더 많이 나오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오름에 심어진 삼나무가 봄철 알레르기를 유발하지만 피톤치드를 대량으로 발산한다는 장점도 있다.
○ 심폐 기능 높여주는 오름 걷기
관광객과 휴양객이 많은 절물오름과 달리 제주시 사라봉은 주민의 산책 장소로 유명하다. 탐방로를 속보로 걷거나 운동기구를 이용하는 주민이 많다. 사라봉처럼 건강·운동 유형의 오름은 제주에서 별도봉, 원당봉, 민오름, 도두봉 등이 대표적이다. 서귀포시에는 고근산, 미악산, 삼매봉, 영천악, 제지기오름 등이 있다. 이들 오름은 시내 주택가와 가까워 주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건강·운동 유형의 오름은 시내에서 읍면으로 퍼지고 있다. 고내봉, 수산봉, 지미봉(이상 제주시), 단산, 모슬봉, 대수산봉, 월라봉, 송악산, 자배봉(이상 서귀포시) 등을 주민이 자주 이용하고 있다. 상당한 장비나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오름을 오르내리며 건강을 증진할 수 있다는 것이 상당한 매력이다. 368개 오름 가운데 비고 50m 미만이 115개, 50∼100m 136개로 전체의 68.2%인 251개 오름이 100m 미만이다. 초보자도 큰 부담 없이 걷기운동을 할 수 있다.
오르막 운동은 평지를 걷는 것보다 심폐 기능을 2배 이상 높여주는 것으로 알려졌다. 오름에서의 걷기운동 역시 신체에 미치는 영향이 상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주대 체육학과 연구팀은 2015년 20대 남녀 19명을 대상으로 한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에 따르면 6일 동안 하루에 평균 시속 4km의 속도로 4시간 동안 오름 걷기를 한 결과 체지방량, 내장지방량이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오름은 경사도, 계단 그리고 불규칙한 지면 조건의 영향으로 인해 유산소운동과 더불어 하체에 더 많은 힘이 필요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 웰니스 공간으로 각광
농사나 목축 등 노동 공간이 아닌 운동이나 산책 장소로서 오름에 대한 관심은 소득과도 관계가 깊다.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2010년 2036만6000원, 2015년 2828만 원에서 2019년 3072만 원으로 높아지면서 건강과 힐링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런 추세는 등산, 산책, 산림욕 등 효과가 있는 오름으로 눈길을 돌리는 계기가 됐다.
오름에 대한 대중적인 관심은 김종철(1927∼1995)이 1995년 출간한 ‘오름나그네 1·2·3권’이 견인차 역할을 했다. 오름 각각의 특징, 탐방 방법, 명칭 유래는 물론이고 미학적인 시선까지 담으면서 ‘오름의 바이블’이라 불릴 정도로 귀한 대접을 받고 있다. 이 책이 나온 해에 오름 탐방 관련 동호회가 처음으로 만들어졌다. 현재 동호회는 500여 개로 추정될 정도로 직장, 단체, 지역에서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국내 대표적인 ‘치유, 사유의 길’로 불리는 제주올레 코스도 오름과 불가분의 관계다. 1코스 시작점이 말미오름이고, 전체 26개 코스에 25개 오름이 있다. 밋밋할 수도 있는 올레 코스가 저지오름, 당산봉, 서우봉, 녹남봉, 수월봉 등 다양한 형태와 높낮이의 오름 덕분에 다채로움을 선사하고 있다. 2007년부터 조성된 올레 코스는 도보 여행객, 관광객 등 외지인에게 단순한 화산체가 아닌 힐링 자원으로서 오름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김태윤 제주연구원 석좌연구위원은 “오름 탐방 목적을 조사해 보니 제주도민은 건강과 경관 감상을, 관광객은 독특한 자연경관 감상을 꼽아 다소 차이를 보였다”며 “오름 탐방 환경을 제대로 조성하려면 오름을 체계적으로 보전하면서 건강 관련 정보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관광객 늘어나 탐방로 훼손… 오름 관리 비상
물찻오름 등 자연휴식년제 시행
오름이 자연경관을 감상하면서 건강을 증진하는 최고의 웰니스 장소로 주목받으면서 탐방객이 증가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정확한 통계는 집계되지 않았다. 다만 제주연구원은 2017년 ‘오름 자율탐방 관리시스템 개발 및 운영방안 연구’에서 설문조사 등을 근거로 연간 오름 탐방객은 도민 349만9000여 명, 관광객 1900만2000명 등 모두 2250만1000여 명으로 추정했다.
이처럼 상당한 인원이 오름을 오가면서 훼손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제주에서 ‘송이’로 불리는 화산쇄설물이 쌓인 오름은 답압(踏壓)으로 인해 쉽게 무너져 내리는 특성이 있다. 야자 매트 등을 탐방로에 깔고 있지만 탐방객 증가로 훼손 면적이 넓어지고 있다. 이 때문에 물찻오름, 도너리오름, 송악산 정상부, 문석이오름, 백약이오름 정상 일부, 용눈이오름 등에서는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하며 탐방객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제주도는 무분별한 훼손을 막기 위해 2011년부터 ‘1단체 1오름 가꾸기’ 사업을 벌이고 있다. 환경단체, 직능단체, 기업, 등산 동호회 등이 특정 오름을 선정해서 훼손을 최소화하는 활동을 벌이고 있다. 현재 이 사업에 160개 단체가 참여하고 있다. 제주도는 오름 보전 및 관리를 위해 2007년 처음 관련 예산 2억7500만 원을 집행했고 올해는 22억 원을 책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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