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서구에 거주하는 중학생 김 모 양(14)은 7일 한 장의 서약서를 만들었다. 엄마와 딸의 말을 잘 듣지 않는 아빠 때문이다. 회사 업무를 핑계로 밤 11시가 넘어 귀가한 아빠에게 딸은 서약서를 건넸다.
서약서에는 Δ나는 밤 11시가 되기 전에 집에 돌아올 것을 맹세합니다 Δ나는 마스크를 지금보다 잘 쓸 것을 맹세합니다 Δ나의 부주의한 행동이 가족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게 할 것을 맹세합니다 Δ나는 가족들이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을 맹세합니다 Δ나는 안전하게 방역수칙을 잘 지키며 사회생활 할 것을 맹세합니다 등의 내용이 담겼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 우려가 좀처럼 가시지 않는 가운데, 김 양이 40대 중반의 직장인인 아빠에게 마치 축구 경기장에서 심판이 반칙을 저지른 선수에게 꺼내드는 ‘옐로카드’와 같은 서약서를 내민 것은 최근 대전에서 하루 20명 내외의 신규 확진자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전시민들의 코로나19 감염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내는 장면이다.
김 양은 “아무리 얘기를 해도 아빠가 마스크조차 제대로 쓰지 않는다. 집에 오면 손도 몇 초 동안 대충 닦는다. 무엇보다 밤 늦게까지 사람들과 어울려 식사를 하고 술을 마셔서 속상하다. 코로나는 혼자만 걸리는 게 아니고 엄마와 나, 동생에까지 번지는 전염병인데 아빠의 행동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화난 표정으로 아빠에게 눈을 흘겼다.
아빠 김 씨는 “서약서를 보니 가족들이 나 때문에 얼마나 불안해 하는지를 새삼 느끼게 됐다. 딸에게 하나하나 잘 지키겠다고 굳게 약속을 했다”라며 머쓱한 미소를 지었다.
7월 들어 정부 차원의 사회적 거리두기 개편에 따라 강화된 1단계를 시행한 대전시는 최근 일주일간 하루 평균 25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발생함에 따라 8일부터 사회적 거리두기를 2단계로 격상했다.
이에 따라 앞으로 2주간 8인 이하 사적 모임 허용은 기존대로 유지하되 식당과 카페, 유흥시설, 노래연습장 등은 밤 11시부터 다음날 오전 5시까지 영업을 금지(식당·카페의 경우 해당 시간 포장·배달판매는 가능)시켰다.
이 같은 조치는 영국발 알파 및 인도발 델타 변이 바이러스 유입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다중이용시설, 학교, 사업체, 종교시설 등 일상의 모든 생활영역에서 산발적으로 감염이 발생하는 것을 차단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일부 시민들은 정부와 지자체의 성급한 판단이 화를 키운 것 아니냐는 불만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장기화로 소상공인들의 피해가 심각하고, 국민들의 방역 피로감을 감안한 조치이긴 하지만 7월 거리두기 완화가 예고되면서 6월 말부터 해이해진 방역 긴장도가 또다시 4차 대유행의 단초가 됐다는 지적이 비등하다.
50대 직장인 박 모 씨는 “정부에서 ‘백신 접종자는 마스크를 벗어도 된다’라고 발표했는데,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려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하고 “7일 하루 전국에서 1200명이 넘는 신규 확진자가 나왔다니 정말 불안하다. ‘7월 대란’은 정부가 자초한 측면이 있다”라며 불만을 토로했다.
30대 주부 강 모 씨는 “지난 토요일 유성구의 한 결혼식장에 갔다가 지금이 코로나 시대가 맞나 싶을 정도로 하객이 꽉 들어차 깜짝 놀랐다”라며 “7월이면 코로나가 잠잠해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4차 대유행이 시작됐다고 하니 가슴이 답답해진다”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