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 6시 이후 3인 이상 사적 모임을 금지하는 ‘거리두기 4단계’ 조치가 수도권에 시행된 첫날인 12일 서울 강남·여의도 등 번화가는 오후 6시가 되자 풍경이 완전히 달라졌다.
서울 지하철 강남역은 퇴근하는 직장인들로 붐볐지만 불과 100여 미터 떨어진 식당가 골목은 번화가라고 믿기 어려울 정도로 한산했다. 강남역 일대 길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중 3명이 이상 모여서 걷는 경우도 드물었다. 인근 주차장 관리인 김모 씨(64)는 “평소 이 시간이면 3, 4명씩 몰려다니는 사람들도 가득 찬다. 서로 어깨를 부딪치며 걸어야 할 정도로 붐비는 곳인데 사람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 “2명만 받으면 손해…차라리 휴업”
이날 오후 6시 1분 여의도한강공원에서는 “사회적 거리두기 2m 및 3인 이상 집합금지를 지켜주시기 바란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고등학교 동창 2명과 함께 돗자리를 펴고 앉아 있던 황모 씨(19)도 짐을 싸기 시작했다. 황 씨는 “2주를 기다렸는데 모임이 한 시간 반만에 끝났다. 1명만 집에 보내기도 뭐해 어쩔 수 없이 다들 귀가할 것”이라고 했다.
강화된 새 방역지침을 두고 혼선이 빚어지기도 했다. 오후 6시 50분경 서울 지하철 신용산역 앞 택시 정류장에선 어린이 둘을 포함한 4인 가족이 택시 운전자와 실랑이를 벌였다. 운전자가 “오후 6시 이후라 2명만 탈 수 있다”고 하자 이들은 “함께 사는 가족이다. 동거가족은 괜찮다”고 한참동안 설득해 택시를 탔다. 방역지침에 따르면 동거가족은 오후 6시 이후 3명 이상이어도 식당에서 식사를 하는 등 모임이 가능하다.
상인들은 거리두기 4단계 도입으로 손님들 발길이 뚝 끊겼다고 입을 모았다. 거리두기가 풀릴 때까지 가게 문을 닫는 걸 고려하고 있다는 이들도 많았다. 서울 서초구에서 해산물 식당을 운영하는 유모 씨(39)는 “2명씩 오는 손님은 전체의 10%도 안 된다”며 “인건비, 재료비 등을 고려하면 휴업을 하는 편이 낫다. 일주일 정도만 장사를 해보고 매출이 안 나오면 한동안 문을 닫으려고 한다”고 말했다.
노량진수산시장 내 상차림 식당들은 이날부터 무기한 집단 휴점에 돌입했다. 식당 23곳 중 19곳이 휴점했다. 4곳은 시장 상인들의 식사를 위해 운영된다. 한 점주는 “노량진은 직장 회식이나 가족 단위 손님이 대부분”이라며 “손님이 시장에서 산 생선회를 가져와 먹는 상차림 식당들은 1인당 발생하는 상차림 비용과 술, 추가 메뉴 등으로 매출을 내기 때문에 2명 이하 손님만 받게 되면 영업을 하는 게 오히려 손해”라고 했다.
서울 여의도 직장가 인근 지하 식당가는 입점한 음식점 4곳이 오후 7시부터 하나둘씩 문을 닫다가 8시경 3곳이 영업을 끝냈다. 문을 연 1곳도 손님은 2명 뿐이었다. 분식집을 운영하는 한모 씨는 “장사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 구경 자체가 어렵다”며 “지난주 금요일부터 손님이 없어 아르바이트생을 한 명 줄였는데 저녁 장사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일찌감치 문을 닫으려 한다”고 했다.
● “2인끼리 모임 늘면 별 의미 없어”
수도권 거리 두기가 4단계로 격상된 이날 정부는 다시 한번 방역수칙 준수를 당부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이날 브리핑에서 “4단계의 핵심은 야간에만 나가지 말라는 게 아니라 불필요한 모임과 외출을 줄여달라는 것”이라며 “출퇴근 외엔 가급적 나가지 말고 안전한 집에 머물러 달라”고 말했다. 손 반장은 또 “방역수칙은 최소한의 강제조치로 2인끼리의 모임이 증가하면 별 의미가 없다”고 강조했다.
이번 4차 유행은 가족과 지인 직장 등에서 소규모 감염이 특징이다. 최근 1주(4~10일)간 새로 발생한 집단감염 23건을 보면 △다중이용시설(주점, 실내체육시설, 백화점 등) 9건 △사업장(직장 등) 6건 △교육시설(초등학교, 학원, 어린이집) 5건 △가족 및 지인 2건 △군 훈련소 1건이다. 방역당국은 “접촉자 조사 및 격리가 지연되면서 미처 관리되지 못한 감염자로 인한 ‘N차 전파’의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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