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예고 없는 ‘선착순 마감’으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을 하지 못했던 55~59세(1962~66년 생)의 예약이 14일 오후 8시 재개됐다. 12일 조기 마감 후 이틀 만이다. 하지만 또 다시 많은 사람이 몰리며 추가 예약도 시작부터 ‘먹통’이 됐다. 50~54세(1967~71년 생)의 접종 날짜도 예정보다 한 주 뒤로 미뤄지는 등 거듭되는 계획 변경에 “정부의 접종 계획을 믿을 수 없다”는 비판이 커지고 있다.
● 예약 재개했지만…이번에도 ‘무한 대기’
50대 접종은 고령층, 사회필수요원, 환자 등을 제외한 3분기(7~9월) 일반 국민 대규모 접종의 ‘신호탄’이었다. 접종 인원만 743만 명에 달한다. 하지만 백신 접종도 아니라 예약에서부터 완전히 꼬여버렸다.
정부는 이날 오후 8시부터 12일 백신 예약을 하지 못한 55~59세 168만 명의 백신 접종 예약을 재개했다. 하지만 시작부터 막혔다. 이날 오후 8시에 예약 사이트(ncvr.kdca.go.kr)에 접속하자 대부분 “네트워크 연결 상태가 좋지 않습니다. 잠시 후 다시 시도해주세요”라는 화면이 나오며 접속이 불가능했다. 일부 접속된 경우도 대기 인원이 8만 명, 대기 시간 168분이 나오지도 했다. 이날 오전 10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이 ‘재발 방지’를 밝힌 지 10시간에 같은 상황이 재현된 것이다.
12일 예약에 실패했던 한모 씨(58)는 “빨리 백신을 맞고 싶을 뿐인데 정부가 왜 이렇게 일을 처리하는지 모르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한 씨는 이날 딸과 함께 집에서 백신 접종 예약 ‘재수’에 나섰지만 이날도 성공하지 못했다. 느닷없이 접종이 연기된 50대도 있다. 정부는 이날 “50~54세 접종을 1주일 미룬다”고 밝혔다. 당초 다음 달 9~21일인 이 연령대 접종은 다음달 16~25일이 됐다. 서울 강남구에 사는 장모 씨(54‧여)는 “이렇게 자꾸 미뤄질 줄 알았다면 (수험생에게 백신 접종을 해 주는) 9월 모의고사라도 볼 걸 그랬다”고 한탄했다. 일부 50대는 “내 팔에 주사기를 놓을 때까지 정부 약속을 믿을 수 없다”는 격앙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50대 접종이 끝나면 20~40대가 구분 없이 백신 예약에 나선다. 이번 혼란이 더 심화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홍정익 코로나19 예방접종대응추진단 접종기획팀장은 “18~49세 중 일부는 8월에 접종하고, 상당수가 9월에 접종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40대 이하 국민들은 화이자 백신을 주로 접종하되 일부 모더나 백신 접종이 이뤄질 계획이다.
● “백신 수급 해결 안되면 같은 혼란 반복”
5월 화이자 백신 1차 접종 중단과 6월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부족에 이어 이번 ‘모더나 예약 중단’ 사태까지. 연이어 반복되는 혼란의 배경에는 백신 공급의 불확실성이 있다.
당초 방역당국은 이번에 55~59세 약 352만 명분의 백신을 다 공급받을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접종계획을 세웠지만, 7월 마지막 주 모더나 공급분에 문제가 생겼다. 예약을 다 받은 뒤 백신 부족으로 접종을 못하는 사태를 막기 위해 당국은 접종을 일시 중단했다. 결국 비판이 거세지자 예약을 다시 받는 대신 접종 일정을 뒤로 미루는 방안을 선택한 것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결국 문제는 백신 수급”이라며 “모더나 물량이 처음 계약한 만큼 충분히 들어왔다면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날도 향후 도입되는 백신 물량을 자세히 공개하지 않았다. 정 청장이 “3분기 중 도입되는 모더나 백신의 물량은 50대 연령층이 1, 2차 접종을 모두 받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규모”이라고만 밝혔다. 다만 동아일보 취재에 따르면 9월이 되어야 이들의 1, 2차 접종을 모두 할 수 있는 분량이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만약 주별 백신 도입 일정에 변동이 생기면 혼란이 반복될 가능성이 있다.
14일 0시 기준 국내 백신 접종률은 30.6%에 그친다. 6일 30%와 비교할 때 단 0.6%포인트 올랐다. 7월 중순까지 일반인 대상 대규모 접종이 진행되지 않아 확진자 수가 늘어나는 데 반해 접종 속도가 느린 것이다.
● 요일별 ‘5부제’까지 검토
정부는 이날 예약이 몰려 벌어지는 혼선을 막을 방안을 내놨다. 50대 초반은 예약 시간을 연령별로 세분화한다. 53∼54세는 19일 오후 8시~20일 오후 6시, 21일 오후 8시~24일 오후 6시까지 예약이 가능하다. 50∼52세는 20일 오후 8시~24일 오후 6시 예약할 수 있다. 12일 벌어진 백신 예약 장시간 대기를 막기 위한 조치지만 지나치게 복잡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앞으로 ‘마스크 5부제’처럼 예약 인원을 요일별로 분산시키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퇴근이 늦은 직장인들을 위해 오후 6시 이후에도 백신 접종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은 의료계와 협의 중이다.
한편 14일 0시부터 시작된 초등학교 3~6학년과 중학교 교직원 등에 대한 화이자 백신 사전예약도 원활하지 않았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학교 교사 A 씨(29·여)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30분 동안 시도하다가 안 돼서 포기하고 잤다”며 “자정이 되자마자 사람이 몰릴 거라는 게 예상됐는데 왜 조치를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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