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의 역설… 알바도 구하기 힘든 청년들
저임금 일자리부터 사라져… 20대 근로자 가장 큰 타격
최저임금미만 급여도 감수
부산에 사는 이모 씨(26·여)는 5월부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 평일에는 취업을 위해 공부하고 주말 이틀간 일한다. 오후 10시부터 다음 날 오전 8시까지다. 그렇게 토, 일요일 이틀을 밤새워 손에 쥐는 돈이 월 60만 원. 시간당 7500원이다. 올해 최저임금(시간당 8720원)보다 정확히 1220원 적다.
2년 전에도 이 씨는 편의점에서 일한 적이 있다. 당시엔 최저임금(시간당 8350원)에 맞춰 급여를 받았다. 하지만 올해는 최저임금 주는 ‘알바 자리’ 찾기가 너무 힘들어졌다. 지금 받는 것보다 적은 ‘시급 7000원’짜리 아르바이트도 경쟁이 치열해 여러 차례 면접에서 탈락했다. 이 씨는 “그나마 경력이 있어 딴 알바생보다 500원을 더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을 늘려주는 게 목적이다. 현 정부가 추진하는 ‘소득주도성장’의 핵심 정책이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오히려 저임금 일자리를 줄어들게 했다. 그로 인한 타격은 고용시장에서 가장 취약한 20대 근로자를 향했다.
15일 국민의힘 김웅 의원실이 최저임금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20대 근로자 5명 중 1명가량(18.4%)은 이 씨처럼 최저임금을 받지 못한 채 일했다. 역대 가장 높은 비율이다. 30대 근로자의 6.8%도 최저임금보다 낮은 임금을 받았다. 20대 청년 근로자 중에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비율은 현 정부 들어 계속 상승하고 있다. 2018년에 15.9%, 2019년에 18.3%였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면 영세 사업주는 저임금 근로자 수를 줄일 수밖에 없다. 대부분 아르바이트 등 이른바 ‘취약 일자리’다. 반면 정규직 취업이 어려운 20대 청년들은 갈수록 취약 일자리에 몰리고 있다. 결국 줄어든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최저임금보다 낮은 급여도 감수하고 일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정규직 취업만큼 어렵다는 것이다. 1년째 취업을 준비 중인 박모 씨(23)는 “3개월 동안 아르바이트를 구하려고 이력서를 돌렸지만 연락 오는 곳이 한 곳도 없다”며 “가게마다 키오스크만 늘어나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청년들, 최저임금 인상에 되레 일자리 걱정… “알바 잘리면 어쩌나”
대전에서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는 김모 씨(21)는 2022년 시간당 최저임금이 9160원으로 결정됐다는 소식을 듣고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처음엔 월급이 늘어날 것이란 기대감이 컸다. 하지만 곧 근무시간이 줄어들거나 일이 없어질 수 있다는 걱정이 들었다. 김 씨는 “사장님이 나오지 말라고 할까 봐 걱정”이라며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많이 해본 친구들 중엔 ‘최저임금 안 오르는 게 낫다’고 말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그만큼 ‘알바 구하기’가 어려워진 걸 알기 때문이다.
○ 최저임금 못 받는 청년들
현 정부는 2017년 대선 때부터 ‘최저임금 1만 원’ 공약을 내세웠다. 실제 최저임금을 2018년 16.4%, 2019년엔 10.9% 올렸다. 이후 일자리 감소 등 부작용이 커지자 속도 조절에 나섰다. 하지만 이미 최저임금 급상승이 ‘실핏줄 경제’에 미친 영향은 작지 않았다.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 공익위원으로 참여한 권순원 숙명여대 교수가 “예전에 ‘야구공’만 했던 최저임금이 이제 ‘농구공’만큼 커졌다”고 언급했듯이 현재 최저임금의 절대 액수가 커져 작은 상승 폭에도 시장 충격이 크다. 내년엔 올해 대비 5.1% 오른다.
최저임금 미만의 급여를 받은 20대 청년 근로자는 지난해 사상 최고치(18.4%, 62만7000명)를 기록했다.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 중 하나다. 일자리가 줄면서 청년들이 최저임금을 못 받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일하는 것이다. 사업주와 사전에 합의했거나, 일자리를 잃을 우려 때문에 신고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근로자 합의와 무관하게 최저임금에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지급하면 사업주는 3년 이하의 징역,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지난해 최저임금 미지급 관련 분쟁 건수는 2859건이었다.
일자리가 사라지는 피해가 나타나자 청년층 사이에서도 최저임금 대폭 인상에 대한 거부감이 적지 않다. 부산에서 시간당 7500원을 받는 이모 씨(26)는 “자영업자들이 최저임금 인상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계속 올리는 건 모순”이라며 “이대로라면 최저임금을 받지 못해도 그냥 일하는 사람이 점점 늘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 인건비라도 줄이려는 자영업자
자영업자들은 최근 몇 년간 이어진 최저임금 상승에 직원 해고 등으로 버티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서 3년째 메이크업 숍을 운영하는 최희선 씨(50)는 지난해 아르바이트생 3명을 모두 해고했다. 최저임금 부담이 큰 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손님이 줄어든 탓이다.
20대 청년이었던 3명의 아르바이트생은 최 씨가 가게를 열기 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다. 최 씨는 “나오지 말라고 입을 떼는 게 정말 힘들었다”며 한숨을 쉬었다. 최 씨는 이제 아르바이트생 없이 혼자 일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직원이나 아르바이트를 사용하는 자영업자는 128만 명이었다. 이는 6월 기준으로 1990년(118만6000명) 이후 31년 만에 가장 적다. 그만큼 혼자 일하는 ‘나 홀로 사장’이 늘었다는 뜻이다.
주휴수당이라도 아끼기 위해 ‘초(超)단시간 근로자’를 고용하는 경우도 많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달에 주 15시간 미만으로 일한 근로자는 130만5000명으로, 전체 근로자의 6.2%였다. 6월 기준 역대 최대다. 근로자가 주 15시간 이상 일하면 사업주는 1주일마다 하루치 임금(주휴수당)을 더 줘야 한다. 이를 아끼려는 것이다. 추 의원은 “초단시간 일자리 증가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상승이 저임금 근로자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 경제 여건으로 최저임금 결정해야
전문가들은 최저임금 결정이 ‘1만 원 달성’ 등 정치논리 대신 노동 공급과 경제 상황에 맞춰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3년 동안 최저임금위원회를 이끈 박준식 위원장은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 뒤 “앞으로는 경제와 노동시장 여건에 맞게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경영계에선 정부가 매년 최저임금 적정 인상 폭을 결정하거나, 지역별 업종별로 최저임금을 다르게 결정하는 방안 등을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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