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섬진강댐 수해 보고서, 조사대상 기관에 검토 받았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4일 03시 00분


조사 용역맡은 수자원학회 보고서
조사 대상기관인 수자원공사에 중간 검토 받고 일부 사실도 틀려
‘복합적 원인’ ‘책임주체 모호’ 등… 배상책임 따질수 없게 두루뭉술
사전방류 등 관리부실 설명도 미흡… “정부압력에 과실비율 반영 못한듯”

지난해 8월 섬진강댐 하류에서 발생한 대규모 수해에 대한 정부의 사고 원인 조사 과정에 절차적 하자가 있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 용역을 맡은 한국수자원학회 등이 조사 대상 기관인 수자원공사 등에 보고서 내용에 대한 중간 검토를 받았고, 보고서에 적시된 일부 사실 관계도 실제와 달랐다. 당시 수해로 섬진강 하류의 전북 남원, 전남 구례 등 7개 지역에서는 약 3800명의 이재민이 발생했고 주택 약 2400채가 물에 잠겼다.

○ 주민들 “수해 원인 제공했다” 지목한 기관에 검토 맡겨

환경부는 지난해 10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피해지역 주민, 전문가들이 참여한 ‘댐 하류 수해원인 조사협의회’를 꾸렸다. 댐 부실 운영 여부에 초점을 맞춘 조사위원회가 9월부터 운영되고 있었지만, 환경부는 “원인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며 조사협의회를 새로 꾸렸다.

새 조사협의회는 지난해 12월 한국수자원학회 등에 조사 용역을 맡겼다.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수자원학회 등은 중간 조사 결과 관련 자료 등을 협의회에 제출하기 전 수자원공사, 홍수통제소 등에 제공해 먼저 검토를 받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 두 기관은 수해 당시 피해 주민들이 “댐 관리 부실로 수해 원인을 제공했다”고 지목한 곳들이다.

협의회 소속 A 교수는 “조사를 받아야 하는 기관에 조사 결과를 검토받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검토가 필요했다면 협의회의 동의하에 공개적으로 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협의회 소속 전문가들 사이에선 수자원학회가 조사 용역을 맡게 된 경위도 석연치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B 교수는 “수자원학회 구성원 대다수는 환경부와 수자원공사로부터 연구 용역 사업을 받아서 진행 중이거나 진행했던 사람들로 객관성을 확보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수자원학회 등 3개 단체가 연합해 조사용역에 단독 응찰했고, 추가로 응찰하는 곳이 없어 최종 결정됐다”고 설명했다.

또 동아일보가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입수해 확인한 결과 “복합적인 원인이 작용했다”며 여러 요인을 단순 나열할 뿐 핵심 원인을 밝히지는 않았다. 또 책임 주체에 대해선 모호하게 표현하면서 “관련 기관들이 홍수 피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쳤다”고 결론 내렸다. 협의회 전문가들 사이에선 “7개월간 조사를 진행해놓고 배상 책임을 따질 수 없도록 두루뭉술한 결과를 내놨다”는 비판이 나온다.

조사 용역에 참여했다가 중간에 사퇴한 C 교수는 “수해 원인 조사는 기관별로 어떤 잘못을 했고, ‘과실 비율’이 각각 얼마인지를 정확히 따져야 추후 배상 문제를 논할 수 있다”며 “연구자들은 이미 기관별 과실 비율에 대해 어느 정도 판단을 내렸지만 환경부의 압력 때문에 보고서에 못 넣고 있는 것 같다”고 전했다.

○ ‘관리 부실’ 관련 일부 조사 결과는 사실과 달라

댐 관리 부실 정황에 대한 설명도 미흡하다. 지역 주민들은 “수자원공사가 대규모 방류를 하기에 앞서 방류 사실을 제때 알리지 않았다”고 주장해왔다. 수자원공사는 지난해 8월 8일 오전 8시 방류량을 최대 수준(초당 1868t)으로 올리며 8분 전인 7시 52분에야 해당 사실을 통보했다. 같은 날 오전 6시 24분엔 “6분 뒤 초당 1000t을 늘리겠다”고 통보하기도 했다. 하지만 보고서는 “댐 방류 통보 기준을 준수(방류 3시간 전)했다”고 썼다.

사실과 다른 내용도 있다. 기록을 보면 지난해 8월 8일 한때 섬진강댐의 방류량은 초당 1876.52t으로 최대 허용치인 계획방류량(초당 1868t)을 넘겼지만, 보고서 결론에는 “계획방류량 규모로 방류했다”고 적혔을 뿐 기준치를 넘겼다는 내용은 없다.

#섬진강댐#수해 보고서#책임주체 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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