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유행에 월세 내기도 버겁지만
선별진료소에 시원한 음료 보내고 생활비 쪼개 냉방기기 기부 나서
“땀젖은 방호복 입고 감사 인사… 오히려 저희가 큰힘 얻어요”
적금 깬 시민, 냉각조끼 전달도
“드릴 게 이것밖에 없네요. 직접 만든 시원한 음료입니다. 놓고 가겠습니다.”
23일 오전 부산 사상구보건소 선별진료소 접수처. 근처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김양수 씨(35)는 이날 아침 일찍 의료진에게 건넬 음료 50잔을 만들어 진료소 직원에게 건넸다. 누가 시킨 적도 없는 주문이지만 뜨거운 볕 아래에서 일하는 의료진이 잠시나마 목을 축이길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생애 첫 기부가 멋쩍어 준비한 음료를 접수처 앞에 놓고 나가려는 찰나 방호복을 입은 의료진이 김 씨에게 다가왔다.
“사장님, 시원하게 잘 마실게요. 정말 큰 힘이 됩니다.”
김 씨는 그 인사에 힘을 얻어 26, 27일에도 각각 50잔씩 3일 동안 모두 150잔을 기부했다. 김 씨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저 역시 생계가 막막하지만 땀에 젖은 방호복을 입고 ‘감사하다’고 말해주는 의료진을 보니 오히려 제가 힘이 났다”고 했다.
코로나19 4차 대유행과 사회적 거리 두기 단계 격상으로 벼랑 끝에 선 자영업자와 시민들이 선별진료소 의료진에 상생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전국카페사장연합회는 21일부터 ‘선별진료소 음료 기부 릴레이’를 시작했다. 이 릴레이를 통해 현재까지 전국 선별진료소 52곳에 약 600잔의 음료가 배달됐다.
자영업자들은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무더위 속 고생하는 의료진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릴레이 기부’ 아이디어를 낸 이혜진 씨(42)는 코로나19로 카페 운영에 어려움을 겪었다. 한창 자리를 잡아가던 개업 1년 차에 코로나19 사태가 터져 매출이 10분의 1로 줄었다. 직원도 3명에서 1명으로 줄였다. 이 씨는 “받을 수 있는 대출을 전부 끌어 받아 간신히 생계를 이어 나가는 형편이지만 탈진 직전의 의료진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자영업자 커뮤니티에 릴레이 기부를 제안하는 글을 올리고, 25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경남 김해시보건소 선별진료소에 음료 수십 잔을 전했다. 이 씨는 “진료소에 배달을 마치고 온 배달기사님이 눈물을 글썽이며 ‘의료진이 고맙다는 말을 한다’고 했을 때 뿌듯한 마음이 들었다”며 웃었다.
서울 서대문구에서 코인노래방을 운영하는 박모 씨(45)는 운영하던 업장 2곳 중 1곳이 폐업 수순을 밟으며 6개월간 월세를 내지 못하는 형편이지만 생활비를 쪼개 15만 원을 기부했다. 박 씨가 속한 한국코인노래연습장협회는 의료진이 사용할 냉방기기를 구매하기 위해 모금에 나섰다. 박 씨는 “아무리 어려워도 저는 시원한 실내에서 일하는데 의료진은 야외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지 않느냐”며 “의료진이 힘을 내서 하루라도 빨리 코로나19가 종식되길 바라는 마음에 기부를 결심했다”고 했다.
전국호프연합회도 다음 달 2일부터 선별진료소에 과일 등 간식을 기부하는 릴레이를 진행하기로 했다. 공간대여협회는 다음 달 4일부터 의료진이 시원하고 분리된 장소에서 식사할 수 있도록 점심시간 무료 공간 대여를 시작한다.
시민들의 기부 행렬도 이어졌다. 22일 경기 안산시 상록수보건소에는 이도형 씨(49)가 보낸 냉각조끼와 아이스박스 각 100개가 도착했다. 방역업체에서 일하는 이 씨는 최근 집단감염이 발생한 백화점 현장을 소독하다가 무더위 땡볕에서 일하는 의료진을 직접 마주하고 기부를 결심했다. 이 씨는 “냉각조끼를 사느라 적금을 깨는 바람에 부인에게 야단을 맞긴 했지만 의료진으로부터 ‘고맙다’는 감사 전화를 받으니 힘이 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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