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은 전쟁이다. 맞벌이든 아니든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2년째 아이들과 집에서 씨름하느라 지친 부모들은 방학이 두렵고, 일하는 부모들은 아이들이 집에서 방치될까 봐 걱정이다. 아이들의 ‘학원 뺑뺑이’마저 여의치 않은 시기, 가정 방문 돌봄, 돌봄 결합형 학원, 농촌 유학 등 새로운 돌봄 문화가 주목받고 있다.》
“친정어머니께 부탁드리기엔 연세가 너무 많으시고, 집에서 보자니 일을 해야 하고….”
무역회사에 다니는 ‘워킹맘’ 이혜정 씨(40)는 7세 딸이 다니는 유치원의 여름방학이 시작되면서 고민이 깊어졌다. 하루 종일 아이를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이 씨만의 걱정이 아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1년 6개월을 넘어서면서 많은 엄마들이 돌봄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특히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않는 방학이 가장 큰 고비다. 학교에 ‘방학 중 돌봄’ 프로그램이 있지만 대부분 선착순 신청이라 기회를 잡기가 쉽지 않다. 이렇게 애태우는 엄마들을 위해 조금씩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있다. ‘가정 방문 돌봄’과 ‘종일 돌봄 학원’ ‘농촌 유학’ 등 다양한 민간 서비스와 프로그램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 가정 방문에서 돌봄 카페까지…돌봄의 진화
“얘들아, 우리 여기에 적은 속상한 마음, 슬픈 마음은 세탁기에 넣고 빨자∼.”
27일 오전 11시 경기 고양시의 한 돌봄 전문 키즈카페. 4, 5세 아동 4명은 ‘악어 선생님’이라 불리는 돌봄 교사의 지도에 따라 흰색 특수 천에 물감으로 자신의 속상한 마음을 그렸다. 교사는 그림이 그려진 천을 ‘마음 세탁기’라 불리는 작은 세탁기에 넣었다. 세탁기가 속상한 마음을 깨끗하게 빨아주는 동안 아이들은 상주 돌봄 교사와 함께 비눗방울 놀이를 했다.
이곳에는 4개의 특화 수업 교실과 놀이터가 마련돼 있다. 특화 수업은 채소와 곤충에 대해 배울 수 있는 ‘도시농부’, 스펀지로 꾸며진 바닷속 공간인 ‘오감’, 과학교육 등으로 구성된다. 놀이터에는 종이 터널, 각종 인형과 종이 만들기 키트가 있다.
기존 키즈카페는 장소만 제공할 뿐 부모가 아이와 직접 놀아줘야 했다. 그러나 돌봄 전문 키즈카페는 놀이교사가 상주하며 아이들을 돌본다. 이 ‘돌봄 카페’에는 학부모들이 쉴 수 있는 휴게공간도 20석 정도 마련돼 있다. 이날 오전에도 카페처럼 생긴 휴게공간에 학부모 6명이 앉아 아이들을 지켜봤다. 이웃 엄마의 소개로 이곳을 찾은 이 씨도 노트북을 챙겨와서 회사 업무를 처리했다.
해외 거래처와 일하는 이 씨의 업무 특성상 새벽에도 자주 회의가 열린다. 재택근무를 할 경우 이 씨는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고, 아이는 집에만 있어야 해 지루했다. 하지만 돌봄 카페를 찾으며 달라졌다. 이 씨는 “아이가 이곳에 있는 시간 동안 잠시 쉴 수 있어 큰 도움이 된다”며 “아이에게 많은 것을 해주지 못하는 엄마라는 죄책감을 덜었다”고 말했다.
27일 오후 4시 서울 양천구에 사는 이채원 양(9) 집에는 돌봄 교사가 수학 교재를 들고 방문했다. 채원 양은 돌봄 교사를 보자마자 자연스럽게 껴안으며 무릎에 앉았다. 오빠 이주원 군(10)도 교사 오른쪽에 딱 붙어 앉았다. 주원·채원 남매는 매주 화, 목요일 오후 2시간씩 방문하는 돌봄 교사와 함께 국영수를 공부한다. 만화, 동화 등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형식으로 제작된 교재는 2주에 1권씩 제공돼 따로 문제집을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
지병을 치료 중인 어머니 노시윤 씨(40)는 돌봄 교사가 집으로 찾아온 이후로 마음 편히 병원을 다닐 수 있게 됐다. 그는 “방학 때는 하루 종일 아이들과 놀아주고 공부를 봐 줘야 하는데 몸이 안 좋은 날에는 그러지 못해서 너무 미안했다”며 “돌봄 교사가 오는 날은 피로감이 크게 줄어든다”고 말했다.
놀이 방식에 대한 엄마의 고민도 줄었다. 몸으로 하는 활동을 좋아하는 주원 군은 체육 전문 돌봄 교사와 함께 집 밖에서 체육이나 농구를 함께 하기도 하고 실내에서 할 수 있는 간단한 운동을 배웠다. 방문 돌봄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이 업체는 코로나19로 신체활동이 적어진 아이들을 위해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 등 체육 활동을 여름방학 프로그램으로 제공하고 있다.
○식사까지 제공하는 ‘돌봄 학원’까지
27일 오전 9시경 초등학교 1학년 지훈이(가명)는 벨을 누르고 서울 송파구의 한 학원에 들어섰다. 지훈이는 학원에 들어서자마자 익숙한 듯 책 한 권을 뽑아 들었다. 이어 1학년 유민(가명), 3학년 석민(가명), 2학년 미진·가은·서윤(가명)이가 차례로 도착했다. 아이들은 금세 우당탕탕 소리를 내며 뛰어놀고 이야기를 나눴다. 이 학원의 아이들 23명은 부모님이 데리러 오는 오후 7시 반까지 종일 함께 시간을 보낸다.
지난해 생긴 이 학원은 교육과 돌봄을 동시에 제공한다. 인근의 3개 초등학교 1∼3학년 학생들을 모아 오전 8시 40분부터 오후 7시 반까지 돌본다. 학원에서 아이들은 국어 영어 수학 미술 수업을 듣는다. 방학에는 과학실험, 독서 같은 특강이 추가된다. 맞벌이 부모의 큰 과제는 방학 중 아이들의 학원 일정을 매일 완벽하게 짜는 것이다. 한 학원 끝나는 시간에 맞춰 또 다른 학원을 바로 연결하고, 셔틀이 없으면 등·하원 도우미까지 챙겨야 한다. 또 다른 걱정은 아이들의 끼니다. 하지만 돌봄 학원에서는 점심 식사와 간식까지 챙겨준다.
서울 강서구의 한 피아노 학원도 전담 교사를 채용해 학원과 학원 사이 빈 시간 동안 돌봄을 제공한다. 피아노 학원이 낮 12시에 마치는데 태권도 학원이 오후 3시에 시작한다면 중간에 비는 3시간 동안 아이들은 피아노 학원에 머물며 간식을 먹고, 돌봄 전담 교사의 지도하에 학습지를 풀기도 한다. 이 학원 한아름 원장은 “학원 중간중간 아이들을 데리러 올 보호자가 없는 아이들이 주로 이용한다”고 전했다.
○“복잡한 서울 떠나 시골로 가요”
“방학 중 프로그램이 서울보다 잘돼 있어요.”
이서율 군(10)은 동생 도하 군(8), 어머니 서지연 씨와 함께 여름방학 기간 동안 전남 곡성군에서 머무르기로 했다. 이 군 가족은 1학기 때 서울시교육청에서 진행하는 농촌 유학 프로그램을 통해 곡성으로 내려왔다. 이 가족은 한 학기를 보내고 기간을 연장해 방학 때도 곡성에 머무르기로 결정했다. 농촌유학 프로그램은 서울 학생들이 농촌 학교에 다니면서 자연을 체험하고 생태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 올해 1학기부터 시행됐다.
서율 군은 방학 중 학교에서 오전에 코딩 수업을 듣고 오후에 친구들과 밴드 연습을 한다. 약 10일간 진행되는 코딩 수업이 끝나면 역시 학교에서 진행하는 기초 영어 수업과 영어 캠프에 참여할 예정이다. 도하 군도 형과 같은 주제로 저학년 대상으로 재구성된 수업을 듣는다. 이렇게 학교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이 끝나면 오후 3시 반이다.
학교 프로그램이 끝나면 서율 군은 곡성 미래교육재단에서 진행하는 연극 수업에 참여한다. 30일에는 아이들이 쓴 대본으로 무대에 연극을 올리고 부모님들을 초대하는 시간을 가졌다. 어머니 서 씨는 “서울에서는 돌봄 신청 자체가 너무 힘든데 곡성에서는 모두가 방학 중 돌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미래교육재단에서 진행하는 방학 중 프로그램이 곡성에 남게 된 큰 이유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서울에서 잠시 머물다가 다시 지방으로 내려가는 아이들도 있다. 전남 해남군에서 1학기를 보낸 초등학교 5학년 박수빈 양은 14일부터 다시 해남으로 내려간다. 박 양은 ‘홈스테이 이모’와 함께 바나나 농장과 해수욕장에 가고 텃밭에 심어놓은 옥수수를 딸 계획이다. 홈스테이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도 산책시키려면 하루가 짧다.
학교 프로그램을 이용하지 않아도 지방 친척 집으로 아이를 보내기도 한다. 경기 용인에 사는 이모 씨(45)는 초등 5학년 아들을 제주에 있는 시댁에 맡겼다. 이 씨의 아들은 방학 동안 풀 문제집과 읽을 책들을 가져갔다. 이 씨는 “서울에 있으면 코로나19 때문에 밖에서 뛰어 놀기도 어렵다”며 “제주에 가면 할머니 할아버지 따라 밭에 가기도 한다. 코로나 시대 방학 때는 시골에서 할 수 있는 게 더 많다”고 전했다.
2030 시터 “대학전공 살려 학습 지도”… 50대 이상은 “자녀 키운 경험이 경쟁력”
돌봄 수요 늘자 지원자 몰려… 중개업체 “회원 절반이 젊은층” 수도권 시급 1만∼1만1000원… 일부는 월 400만원 이상 수입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상황이 장기화하면서 아이들의 학습과 등·하원, 생활 등을 관리해 주는 시터(도우미) 수요가 늘고 있다. 자연스럽게 인력도 몰리고 있다. 기존에 시터로 활동해 온 4050세대뿐 아니라 취업 한파를 겪는 2030세대도 돌봄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12일부터 수도권에 사회적 거리 두기 4단계가 시행된 이후 시터 소개 애플리케이션(앱) 가입자 수는 눈에 띄게 증가했다. 돌봄 교사 중개업체 ‘자란다’에 따르면 거리 두기 첫날이었던 12일 부모의 신규 가입이 전주 대비 90% 상승했다고 밝혔다. 교사 가입은 거리 두기 시행 후 9일 동안 시행 전 대비 25% 증가했다.
55만 명의 가입자를 둔 시터 중개업체 ‘맘시터’에 따르면 시터 회원 중 30%가 대학생, 20%가 취업준비생 등이다. 경기 지역 한 대학의 유아교육과에 재학 중인 민모 씨(21)는 “먼저 시터 일을 시작한 학교 동기가 추천했다”며 “전공 관련 경력도 쌓을 수 있고 시급도 높은 편”이라고 말했다.
청년들은 자신의 대학 전공을 적극적으로 활용한다. 피아노 전공이라면 음악 교육을, 수학과 학생이라면 기초 수학 지도를 내세운다. 코로나19 유행으로 일시 귀국한 중국, 미국, 뉴질랜드 등 해외 유학파 대학생은 ‘원어민급’ 외국어 실력을 강조한다. 제대 이후 유아 대상 수영 강사로 활동했던 경험을 살려 체육 전문 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김모 씨(24)는 “사회체육학과 전공을 살릴 수 있어서 서빙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보다 보람이 있었다”고 말했다.
시터의 시급은 업체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보통 최저시급 이상으로 책정된다. 맘시터의 전국 평균 시터 시급은 9500원, 2021년 최저임금인 시간당 8720원보다 800원가량 높다. 수도권은 1만∼1만1000원인데, 서울 강남·서초·송파구에서는 대부분 1만1000원 이상이다. 풀타임으로 일하는 일부 시터 중에선 월 400만 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사람도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젊은 시터들이 시장에 대거 유입되자 기존 50대 이상의 시터들은 장성한 자녀를 길러낸 경력을 경쟁력으로 내세운다. 가족 관계 소개란에 “두 자녀를 모두 ‘SKY대’에 입학시키고 봉사하고 있는 엄마”라고 적거나 면접 과정에서 “딸들을 모두 명문대 졸업시키고 대기업에 무사히 취직시켰다”고 말하는 식이다. 정지예 맘시터 대표는 “고등학생, 대학생 이상 자녀를 둔 시터는 육아 경력이 입증됐고, 여유 시간이 많아 인기가 높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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