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영업자들 “생명보험 깨, 밀린 대출이자-임차료 돌려막아요”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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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희망회복자금 풀리지만, 코로나 확산세 좀처럼 잡히지 않고
작년 받은 긴급대출 원금상환 겹쳐… 한계상황 자영업자 구제엔 역부족
퇴직금 등 노후안전망 부재상태서… 보험해지후 사고땐 극빈곤층 전락
결국 사회가 ‘안전망 비용’ 부담… 4대 보험료 일부 대납 등 지원필요

“저는 이제 아프면 아파서 죽는 게 아니라 굶어 죽어요. 보험을 전부 깼는데도 남은 건 빚뿐입니다. 소상공인 희망회복자금이 900만 원가량 나온다는데… 밀린 임차료도 다 못 갚아요.”

서울 서대문구에서 노래방을 운영하는 박모 씨(48·여)는 7년 동안 부어온 생명보험 2개를 6월 말 해지했다. 그렇게 받은 2000만 원으로 하루하루 버티고 있다. 요즘 한 달 매출은 월 가게 임차료인 300만 원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렇게 5개월 동안 밀린 임차료가 1500만 원. 올해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나아질 거란 희망으로 지난해 받아뒀던 소상공인 대출 1억 원과 카드론 3000여만 원도 박 씨의 생계를 옥죄고 있다. 매달 빠져나가는 이자 비용 80여만 원을 빼면 남는 게 없다고 한다.

“하루하루 사는 게 먼저잖아요. 지금 건강하다는 거 하나 믿고 보험을 해지했는데 지난달 병원에서 갑상샘에 5cm의 혹이 있다고 하대요. 다행히 암은 아니라는데 겁부터 납니다. 나는 이제 아프면 안 되는데….”

코로나19 확산세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데다 지난해 받은 소상공인 긴급대출 원금 납부 기한이 다가오며 한계 상황에 몰린 자영업자들은 생명보험 등 각종 보험까지 해지하고 있다. 퇴직금 등을 기대할 수 없는 자영업자들은 사적 보험으로 스스로 긴급 사태에 대비해 왔지만 매달 빠져나가는 대출 이자와 임차료를 감당하기 위해 미래의 ‘안전장치’를 끌어다 쓰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17일부터 자영업자들을 대상으로 희망회복자금(5차 재난지원금)을 지급하기로 했다. 또 다음 달 말까지인 소상공인 대출 원금 상환 만기를 연장하고 이자 상환을 유예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재난지원금 규모가 제한적이고 사금융을 통한 채무가 많아 이미 무너진 자영업자를 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인천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이명희 씨(50·여)는 지난달 11일 생명보험과 연금보험을 해지해 급하게 3000만 원을 마련했다. 10개월간 밀린 임차료만 2600만 원. “우리도 빚내서 산다. 더는 못 봐준다”는 건물주의 경고에 부랴부랴 목돈을 만들었다.

이 씨는 “식당 장사만 25년 넘게 해서 안 아픈 데가 없는데 먹고사는 문제가 더 시급해서 어쩔 수 없이 보험부터 깼다”며 “정부에선 소상공인 재난지원금을 준다는데 우리 매장 매출 기준으로는 많이 받아 봐야 300만 원이다. 이걸로는 한 달 임차료도 못 낸다”고 했다.

이 씨는 보험금으로 밀린 임차료를 처리하긴 했지만 더 큰 빚이 남았다. 이 씨가 지난해 네 차례에 걸쳐 받은 신용대출과 소상공인 긴급 대출은 합해서 1억 원에 달한다. 이 씨는 “2년 거치가 끝나는 내년부터 차례로 원금 납부가 시작되면 매달 300만 원 폭탄을 맞는다”며 “내년이 된다고 상황이 나아질 것 같지도 않고 이젠 더 깰 보험도 적금도 없는데 무슨 수로 버티느냐”고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가 자영업자에게 영업 손실을 줄 뿐 아니라 생애 전반에 걸친 미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한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퇴직금 등 노후 안전망이 부재해 사적 안전망으로 노후와 위기상황을 대비해오던 자영업자들이 이마저도 해지할 경우 질병이나 사고 한 번에 극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정재훈 서울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한국은 자영업 비중이 전체 고용 구조에서 4분의 1가량 차지해 자영업 안전망이 무너지면 그 비용을 사회가 짊어지게 된다”며 “재난지원금은 한계 상황에 놓인 자영업자 등에 보다 집중하고, 건강보험 등 4대 보험료도 정부가 일부 분담하는 지원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자영업자#돌려막아요#안전망 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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