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할 때쯤 구토 흔한 일’…건설·택배노동자 “폭염대책 안 지켜져”

  • 뉴스1
  • 입력 2021년 8월 21일 07시 38분


찜통 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28일 서울의 한 건설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가 작업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1.7.28/뉴스1 © News1
찜통 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28일 서울의 한 건설 현장에서 건설 노동자가 작업 중 휴식을 취하고 있다. 2021.7.28/뉴스1 © News1
“나이 드신 형님들은 퇴근할 때쯤 되면 막 토하고 어지러워하세요”

형틀목수 김상현씨(가명·34)에게 여름은 힘겨운 계절이다. 햇볕 아래에서 일하는 김씨는 건설 현장 여건상 한여름에도 긴 팔·바지를 입고 일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마스크까지 끼는 요즘은 숨쉬기도 답답하다.

정부는 폭염경보 발생시 작업중지 명령을 내릴 수 있는 법률 해석까지 내렸지만 현장에서는 “지켜질리 만무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김씨는 20일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쉬는 시간에도 쉴 만한 그늘이 없다”라며 “벽체 세워 놓은 쪽이 그나마 그늘이니 그쪽에서 쉬려고 하지만 바람이 하나도 불지 않아 사우나에 들어가 있는 느낌”이라고 했다.

폭염 속, 그늘 하나 없는 곳에서의 휴식이지만 그마저도 챙기기는 쉽지 않다. 김씨는 “휴식 시간 되면 호각이 울리긴 하지만 타워크레인 작업 등을 할 때는 일을 멈추기 어려워 쉬는 시간을 건너 뛰고 계속 일을 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폭염대책에도 불구하고 건설·택배·배송 노동현장에서는 노동자들은 폭염에 고스란히 노출돼 있었다. 노동자들은 현장에서는 폭염대책이 지켜지지 않아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입을 모았다.

정부는 지난 5월 열사병 예방수칙을 만들어 운영 중이다. Δ시원한 물 제공 Δ작업현장 가까운 곳에 그늘 마련 Δ폭염주의보 발령시 시간당 10분씩, 폭염경보 발령시 시간당 15분씩 휴식 Δ무더위 시간대(오후 2~5시) 야외 작업을 피할 수 있도록 근무시간을 조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은 “폭염경보 발생 시 작업을 중지하는 조치가 내려질 수 있는지 법률 해석을 적극적으로 해보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이에 정부는 이달 20일까지를 ‘폭염대응 특별주간’으로 정하고 사업주가 열사병 예방수칙을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작업중지 명령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김씨는 폭염대응 특별주간에 대해 “시행하는 줄도 몰랐다”고 말하며 “여전히 햇빛에서 쉬는 사람들도 있고, 딱히 달라졌다고 느낀 건 없었다”고 답했다.

마트 배송 노동자도 폭염대책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느끼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그늘 없는 야외에서 생수와 음료수 등 무거운 중량물을 상·하차하고 배송한다.

울산의 한 대형마트에서 상하차 작업을 하는 김진훈씨(가명·57)는 어지러움, 탈수 등 폭염으로 인한 건강 이상 증상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얼마 전 동료 배송기사 한 명이 어지러움과 설사 등 열사병과 비슷한 증세를 보여 며칠 간 출근을 못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짐을 싣는 곳에 그늘막이라도 설치해달라고 원청에 요구했지만 ‘그늘막을 치면 불법 구조물이 되어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이야기만 나온다”고 털어놨다. 해당 마트 측은 “점포마다 크기와 환경은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휴게 공간은 제공하고 있다. 7월 말부터는 생수도 매일 2병씩 지급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택배기사들도 폭염 속 온열질환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강민욱 택배노조 교육선전국장은 “택배 노동자들이 일하는 서브터미널은 폭염대책이 전무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터미널 내 기온이 38~40도까지 올라가기도 하는데 선풍기를 틀어놓는 것이 대책의 전부인 곳이 있는가 하며, 선풍기도 없거나 물도 제공하지 않는 곳도 많다”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정부의 폭염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이유로 강제성이 없고 관계당국의 감독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으로 보고 있다.

전재희 민주노총 건설노조 교육선전실장은 “실제 현장에서 (폭염 대책이) 지켜질리는 만무하다”며 “폭염 대책이 권고사항이 아니라 법으로 제도화되어 폭염 상황이 재난이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강 국장은 택배기사 등을 폭염으로부터 보호할 규정이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그는 “지난 달부터 시행된 생활물류서비스법에 날씨에 대한 안전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부분이 있지만 강제조항도 아니고, 터미널이 어느 정도 온도를 유지해야 하는지 등 구체적인 기준도 없다”고 지적했다.

한인임 일과건강 사무처장은 “옥외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 대한 폭염 노동부 지침 정도가 나와 있는 수준이다”며 “노동부의 규제와 감독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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