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오전 8시경 서울송파경찰서에 은색 SM5 승용차가 들어섰다. 운전자는 특수강제추행 등 혐의로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올 5월 출소한 강모 씨(56)였다.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차고 생활하던 강 씨는 노래방에서 알게 된 40대 여성을 자신의 집에서 살해한 뒤 27일 오후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했다.
강 씨는 29일 새벽 평소 알고 지내던 50대 여성에게 연락을 했다. “돈을 갚겠다”며 자신의 차량으로 유인한 뒤 그마저 살해했다. 불과 며칠 새 여성 2명을 살해한 것이다. 강 씨는 첫 번째 피해자의 시신은 집에 유기했다. 두 번째 살인을 저지르고 몇 시간 뒤에는 피해자를 차량에 실은 채 경찰서로 찾아왔다. 그는 경찰에 “범행 사실이 곧 발각돼 잡힐 거라는 생각에 자수하러 왔다”고 말했다.
강 씨는 강도 강간, 강도 상해 등으로 수감됐던 전력이 있는 전과 14범이다. 이 중 성범죄 전과가 2개다. 1996년에 길을 가던 여성을 폭행한 뒤 강간했다. 2005년에는 출소 5개월 만에 다른 공범들과 여성을 승합차로 납치해 흉기로 위협하며 강간했다. 그해 징역 15년형을 선고받고 복역하다가 석 달 전 출소하며 5년간 전자발찌 부착 명령을 받았다.
하지만 강 씨가 27일 오후 5시 31분경 서울 송파구 신천동의 한 길거리에서 공업용 절단기를 이용해 전자발찌를 끊고 도주한 뒤 38시간이 넘게 지나도록 법무부와 경찰은 그를 잡지 못했다. 법무부는 강 씨가 전자발찌를 훼손했던 27일 새벽 법원의 야간 외출 금지 명령을 어기고 외출한 사실을 파악하고도 현장 확인을 하지 않았다. 경찰은 강 씨가 도주한 뒤 집에 찾아갔지만 시신이 유기돼 있던 내부를 살펴보지 않아 사안의 심각성을 제때 파악하지 못했다.
범인 집에 시신 있었는데… 경찰, 3차례 찾아가고도 못 들어가
27일 전자발찌(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하기 전후 여성 2명을 살해한 강모 씨(56)는 2005년 11월 서울서부지법에서 특수강제추행 등 혐의로 징역 15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강 씨는 공범 3명과 함께 승합차를 이용해 여성을 납치하고 신용카드, 현금 등을 갈취한 뒤 저항하는 피해자를 강간하는 등 범행을 주도한 혐의가 유죄로 인정됐다. 재판부는 강 씨에게 중형을 선고하며 “국민의 생명과 재산 보호를 위해 피고인을 장기간 이 사회로부터 격리시키는 처벌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 범행 직전 무단 외출… 법무부 확인 안 해
올 5월 천안교도소에서 출소해 3개월 만에 여성 2명을 살해한 강 씨는 경찰에서 “성관계를 거부해 살해했다”는 취지로 말했다가 “금전 문제 때문에 살해했다”며 진술을 번복했다고 한다. 경찰은 정확한 범행 동기 등을 파악 중이다.
강 씨가 40대 여성을 살해한 첫 번째 범행은 자택에서 전자발찌를 착용한 상태에서 이뤄졌다. 하지만 강 씨를 감독하는 보호관찰소는 범행 사실을 전혀 파악하지 못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전자발찌는 위치 정보만을 전달하기 때문에 전자발찌를 찬 채로 무슨 행동을 하는지는 알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강 씨는 전자발찌 훼손 당일인 27일 새벽 법원의 야간 외출 금지 명령을 어기고 20분간 외출하기도 했다. 강 씨는 법원 명령에 따라 오후 11시부터 오전 4시까지 거주지 밖으로 외출이 허용되지 않았지만 27일 0시부터 집을 나서 이를 어긴 것이다. 당시 서울동부보호관찰소에서 야간 근무 중이던 직원은 강 씨가 거주지를 이탈했다는 경보를 받고 출동했으나 이후 강 씨와의 통화에서 “복통 때문에 편의점에 다녀왔다”는 그의 말을 믿고 현장 확인 없이 돌아갔다.
경찰이 인근 폐쇄회로(CC)TV를 확인한 결과 강 씨는 이로부터 6시간 뒤인 27일 오전 6시경 집을 떠났다. 강 씨가 야간 외출 금지 명령을 어겼던 이날 0시경에는 피해자와 집에 함께 있었을 가능성이 있다. 보호관찰소 직원이 강 씨의 집을 둘러봤다면 수상한 상황을 확인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법무부와 경찰은 강 씨가 전자발찌를 훼손한 직후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강 씨를 추적했다. 하지만 참혹한 추가 살해 범행을 막지 못했다. 강 씨는 도주 과정에서 법무부와 경찰의 추적을 치밀하게 따돌렸다. 이틀 동안 송파구 신천동, 서울역, 영등포 등으로 여러 차례 위치를 옮겨 다녔다. 강 씨는 27일 훼손한 전자발찌를 지하철 8호선 몽촌토성역 인근에 버린 뒤 렌터카를 이용해 서울역 인근으로 도주했다. 경찰이 28일 오전 서울역 인근에서 해당 렌터카를 발견했을 때 강 씨는 이미 다른 장소로 이동한 뒤였다. 경찰은 강 씨의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시도했지만, 그는 자신이 탄 시내버스에 휴대전화를 버리고 내리는 수법으로 수사를 피했다.
○ 경찰, 강 씨 집 3차례 찾았지만 수색 못 해
경찰은 강 씨의 도주 사실을 알게 된 27일 오후 5시 31분부터는 최대한 신속히 강 씨를 검거해 추가 범행을 막았어야 했다. 경찰은 보호관찰소 직원과 함께 27일 오후 6시부터 2시간 간격으로 강 씨의 집을 3차례 방문했지만 집 내부를 수색하지는 않았다. 당시 강 씨의 집에는 피해자의 시신이 유기돼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주변 CCTV 영상 등으로 미뤄 볼 때 강 씨가 집 안에 있다는 정황이 없어 집 내부를 수색하지 않았다. 수색영장이 없어 강제로 문을 열고 들어갈 법적 근거도 없었다. 살인 범행 사실을 알았다면 긴급히 영장을 받았겠지만 몰랐기 때문에 그런 판단을 하지 못했다”고 말했다.
전자발찌 착용 대상자에 대한 감독 업무는 법무부 산하 보호관찰소가 맡는다. 전자발찌를 훼손한 후 도주한 범죄자 등에 대해선 경찰이 공조해 수사한다. 과거엔 전자발찌 훼손 시 법무부에서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방식이었지만 올해 6월 9일부터 시행된 사법경찰법 개정안에 따라 보호관찰소 소속 공무원이 사법경찰관 직무를 수행해 직접 수사에 나설 수 있다.
보호관찰소에 수사 권한을 줘 돌발 상황에 신속히 대응하자는 취지로 도입된 제도지만 현장에선 인력 부족 등으로 경찰에 수사를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보호관찰소 소속 사법경찰관은 체포하는 데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것이 아니고 검찰 송치 전 범죄 구성 요건을 수사하는 역할을 한다”고 했다.
강 씨는 성범죄 2건 등 끔찍한 범죄를 반복해 저지르고 15년형의 중형을 살았지만 신상공개 대상자는 아니었다. ‘성범죄자 알림e’ 웹사이트를 통한 신상공개 제도가 시행된 2008년 이전에 범행을 저질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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