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군 떠난 아프간 “은행·병원·학교 문 닫아…여성들 숨어 있어”

  • 뉴스1
  • 입력 2021년 9월 2일 06시 2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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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과 학교, 공항이 대부분 문을 닫았습니다. 수도 카불 뿐 아니라 아프가니스탄 모든 지역의 상황이 매우 나쁩니다. 많은 사람들이 탈레반에 대해 걱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에 7년째 장기 체류 중인 아프간인 A씨(35)는 2일(이하 한국시각) 서툰 영어에 한국말을 섞어가며 이렇게 말했다.

미군이 떠나고 탈레반이 완전한 장악한 아프가니스탄은 공공기관이 마비되고 시위가 벌어지는 등 국가 전체가 극도의 혼란으로 빠져들고 있다. A씨는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한 이후 모든 이들이 불행해졌다(all people unhappy)고 했다.

한국에서 4년째 공부 중인 아프간 국적의 유학생 B씨(27)도 “지금 아프간에서는 사회적으로 수많은 문제가 있다”며 “은행은 영업하지 않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수개월 동안 급여를 받지 못했다. 사람들은 돈이 없어 아무 것도 살 수 없다(people don‘t have money, people can’t buy anything)”고 말했다.

B씨는 “아프간 사람들은 매우 가난하다. 제때 월급을 받지 못하면 음식을 사먹을 수 없다. 게다가 지금은 식품 가격이 매우 올랐다”고 했다. 독일 매체 도이체벨레에 따르면 탈레반 장악 이후 밀가루와 석유, 쌀 등 생필품 가격은 10~20% 급등한 것으로 나타났다.

탈레반은 지난달 29일부터 아프간 내 은행의 영업을 재개하라고 지시했으나, 현금을 인출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상황이다. 탈레반이 일주일에 200달러로 출금액을 제한한 데다, 공포심 때문에 은행 직원들이 정상적으로 업무를 보지 못하고 있어서다.

B씨는 “탈레반 장악 이후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 한국 등의 지원금이 모두 끊기면서 경제가 완전히 붕괴됐다. 외국에 있는 아프간의 모든 자금도 동결됐다”면서 “우리는 돈과 일자리를 원하지만 탈레반은 아무 것도 모른다. 이에 반발해 최근 카불에서는 대규모 시위가 열렸다”라고 현지 상황을 전했다.

그러나 탈레반 치하에 놓인 대다수 아프간 시민들은 불안해하며 몸을 숨기고 일단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2010~2011년 아프간 파라완주의 바그람한국병원장을 지낸 손문준 일산백병원 신경외과 교수는 “아프간에 있을 때 같이 일하던 직원들 중 (조력자에 포함됐으나) 탈레반에 잡혀서 한국에 들어오지 못한 친구도 있고, 연락이 닿지 않거나 숨어서 지내는 것으로 보이는 친구도 있었다”고 했다.

손 교수는 “조력자 추천서를 이메일로 보낼 때도 혹여나 탈레반이 급습해 PC를 압수할까 걱정되기도 했다. 연락이 끊긴 친구들은 신변이 우려돼 그 이유에 대해 물어보지도 못했다”고 전했다.

의료 인력이 아프간을 빠져나가 의료 시스템도 붕괴인 것으로 알려졌다. 손 교수는 “아프간에 있을 때 뇌수두증을 앓던 꼬마를 치료한 적 있다. 최근 환자 보호자로부터 카불의 유명한 의사가 다 떠나서 (치료받을 방법이 없는데)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SNS로 연락이 왔다”며 안타까워했다.

손 교수는 “아프간에서 인정받던 의료진들이 우리나라에 조력자로 포함돼 들어왔다. 카불 최고 수준의 병원으로 꼽히는 프랑스 어린이 병원(FMIC)의 의사들도 프랑스로 대피해 사실상 셧다운 상태이지 않을까”라고 추측했다.

그러면서 “남은 인프라는 굉장히 열악할 것이고, 지식인들이 다 떠난고 나면 탈레반과 일반 시민들만 남을 것이다. 내전도 벌어질 수 있을텐데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지 걱정된다”고 했다.

아프간 내에서는 탈레반이 곧 인터넷을 끊을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 다만 진위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9월 중 항공기 운항이 재개될 것이란 관측도 나오지만, 낙관론일 뿐 언제쯤 공항 운영이 가능할지는 불투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간의 정통한 소식통은 “지금 아프간은 굉장히 조용한 상황이다. 전쟁같은 느낌이라기보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탈레반이 어떤 자세를 취할지 몰라서 다들 공포에 떨며 집에서 숨죽이고 있는 상태”라고 전했다.

그는 “지난달 29~30일 1차 탈출 때 많이 빠져나갔지만, 대다수는 빠져나가지 못했을 것”이라며 “약 4000만명 중 수백만명이 빠져나갔다고 하지만 아프간 인구수를 한번도 집계된 적이 없어 실제 남아있는 사람들은 훨씬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탈레반은 1990년대 아프간에 집권했을 당시와는 다르게 여성의 사회진출을 허용하겠다고 밝혔지만 많은 여성들은 탈레반이 국가를 장악한 후 직장을 잃었다.

B씨는 “탈레반은 현재 간호사를 제외한 직업을 가진 여성이 일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고 있다”며 “그마저도 폭탄 테러와 공항 혼란으로 인해 부상자가 많아서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여교수도 미래에는 허용될 수도 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다”라고 했다.

그는 “특히 군·경찰·정보기관에서 일했던 여성들은 완전히 몸을 숨겼다. 최근 한 지역에서는 경찰서장이 탈레반에게 무기를 모두 내줬는데도 부하 12명과 함께 몰살당하는 일이 벌어져 경찰과 군인들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탈레반이 통치 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는 가운데 Δ여성도 내각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개방 세력 Δ90년대 정통 보수 세력 Δ중도파 등 탈레반 내 세 개 집단 중 누가 헤게모니를 쥐느냐에 따라 향후 아프간 사회 분위기도 크게 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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