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1심에서 또 다시 패소했다. 2018년 대법원이 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확정 판결을 내린 뒤 다른 피해자들이 제기한 소송 중 세 번째 패소 판결이다.
8일 서울중앙지법 민사25단독 박성인 부장판사는 징용 피해자 고 정모 씨의 유족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총 1억 원을 배상하라”고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 씨는 1940년 12월부터 1942년 4월까지 일본 이와테현 가마이시시에 있는 제철소에서 강제 노동을 했다. 2018년 대법원이 징용 피해자 이춘식 씨 등의 승소 판결을 확정한 이후 2019년 추가 피해자들이 다수의 소송을 제기한 가운데 피해자들이 패소한 판결은 이번이 세 번째다.
재판부는 “1965년 한일협정에도 불구하고 일본제철의 불법행위에 대한 피해자들의 손해배상(위자료) 청구권은 살아 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피해자들이 이 청구권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이를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이 지나버렸다고 설명했다.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기간은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가 발생했다는 것을 알게 된 때로부터 3년이다.
피해자들은 2018년 대법원 재상고심이 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을 때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 발생을 알게 됐기 때문에 그로부터 3년 안에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고 보고 2019년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2018년 재상고심 이전에 2012년 대법원 상고심이 처음 일본제철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을 때부터 3년 안에 소송을 제기했어야 한다고 봤다.
이번 판결과는 반대로 2018년 12월 광주고법은 다른 징용 피해자들에게 승소 판결을 내리며 “2018년 대법원 재상고심으로 판결이 확정됐을 때부터 3년 안에 소송을 제기하면 된다”고 했다.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기간에 대한 쟁점은 대법원에서 최종 판단을 내리게 된다.
유족 측은 항소하겠다고 밝혔다. 선고 직후 정 씨 측 법률 대리인은 “유사한 사건에 대한 광주고법 판례는 2018년을 기산점으로 삼고 있다”며 “항소 등을 통해 더 다퉈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관방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부로서는 (한국에서) 아직 다양한 재판이 제기되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그런 동향을 확실히 주시하겠다”고 말했다. NHK에 따르면 피고 기업인 일본제철은 이번 판결에 대해 “국가 간 정식 합의인 일한(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징용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며 “타당한 사법 판단”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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