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 소송이 진행되던 중 부인과 함께 프랑스에서 살던 딸을 국내로 데려와 돌려보내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남편에게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2부(주심 민유숙 대법관)는 9일 미성년자약취 혐의로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징역 1년의 선고를 유예한 원심을 확정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이혼 소송을 진행하던 중 딸을 부인에게서 데려와 돌려보내지 않은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07년 프랑스인 B씨와 결혼한 A씨는 2012년부터 이혼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 이혼조정이 성립되지 않아 법원은 딸에 관한 친권은 부부 양측이 모두 행사하되, 딸은 부인인 B씨와 함께 살도록 했다. A씨가 딸을 만날 수 있는 면접교섭 기간은 특정 날짜로 제한됐다.
그런데 A씨는 2014년 프랑스에서 딸을 데리고 함께 국내 입국한 뒤, 돌려보내기로 약속한 날짜를 넘겨 계속해서 함께 산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부인 B씨는 프랑스 법원으로부터 자신이 딸의 친권자라는 점을 인정받았고, 우리 법원은 딸을 돌려보내라고 판결했지만 A씨는 이를 수용하지 않아 미성년자약취 혐의로 기소됐다. 미성년자약취는 폭행과 협박 등으로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자유로운 생활을 하지 못하게 하는 범죄를 뜻한다.
재판 과정에서 A씨는 딸이 프랑스에서 학대를 받아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심은 “A씨는 장기간 부인 B씨와 딸의 연락을 방해하고 서로 만나지 못하게 했다”라며 “딸에게서 학대가 의심됐다고 주장하나 B씨와 프랑스 경찰, 자신의 변호사에게 이를 알렸다고 볼만한 사정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학대 증거라고 제시한 영상을 봐도 다른 아이들과 장난을 치는 과정에서의 행동이 녹화돼 있을 뿐”이라며 “A씨 주장은 딸의 인도를 거부하고 자신의 책임을 모면하기 위해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며 A씨에게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다만 2심은 “A씨가 항소심에서 딸을 인도해 B씨가 선처를 탄원하고 있다”면서 “벌금형을 2회 선고받은 것 말고는 범죄 전력이 없다”며 징역 1년의 선고를 유예했다.
대법원은 A씨의 사례처럼 적극적인 폭행·협박이 없더라도, 아동의 의사에 반해 돌려보내지 않은 것 역시 미성년자약취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부모가 따로 사는 상황에서 한쪽의 배우자가 면접교섭이 끝났는데도 자녀를 돌려보내지 않는다고 해서 반드시 미성년자약취는 아닌 것으로 봤다.
그런데 A씨 사례와 같이 어머니와 함께 살면서 보호받고 있던 딸을 데려온 것은 사실상 힘으로 자신의 지배 하에 놓은 경우이므로 미성년자약취죄로 처벌해야 한다고 했다.
특히 적극적인 불법행위가 아닌, 아이를 돌려보내야 하는 의무를 이행하지 않아 미성년자약취죄가 인정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부모의 분쟁 상황에서 면접교섭권 행사를 빌미로 미성년 자녀를 데려간 것”이라며 “법원의 결정을 따르지 않고 양육권을 가진 상대방이 자녀를 인도받게 어렵게 만드는 방법으로 자녀의 복리를 침해하는 경우 범죄가 성립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고 판결의 의의를 전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