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판부를 잘 설득하기 위해 판례를 분석하는 것과 작사 작업이 본질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본인 감정에만 취하기보다 잘 쓴 가사들을 꼼꼼히 분석해 가사를 지어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죠.”
‘본캐(본캐릭터)’만큼이나 ‘부캐(부캐릭터·또 다른 자아)’를 중시하는 MZ세대 바람이 법조계에도 불고 있다. 법무법인 대진 김민성 대표변호사(39·변호사시험 1회)는 16일 동아일보와 만나 “음악 활동과 변호사 활동이 서로 시너지를 낼 때가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변호사는 약 3년 전부터 휴일이면 서울 서초동의 법무법인 사무실이 아닌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로 향한다.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인 동시에 신인 싱어송라이터 ‘민성’이면서 아티스트 3명이 소속된 한 엔터테인먼트 업체 대표다.
그가 올해 3월과 5월 각각 발표한 ‘오늘이 지나면 우리 어떻게 해야 돼’, ‘작은 목소리로 말해주고 싶어’ 등의 노래는 지니뮤직 등 음원 유통 사이트에서 매일 꾸준히 2000~3000건의 재생 횟수를 기록한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가수’인 것을 감안하면 무시 못 할 수준. 유튜브 등에 게시된 뮤직비디오 영상에는 특히 ‘음색이 너무 좋다’, ‘가사가 꼭 내 이야기 같아 위로를 받는다’는 등의 호평이 꾸준히 나온다.
● 전업 가수 꿈꾸다 로스쿨 진학
“중·고등학생 때 노래를 부르면 온갖 걱정과 감정들이 다 해소되고 배출되는 듯한 기분이 좋았어요. 철없던 때라 당장 음악을 배우고 가수를 하겠다는 제게 부모님이 ‘대학에 가고 나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죠. 대학에 가자마자 가요제에 도전했습니다.”
2002년 고려대 일어일문학과에 진학한 김 변호사는 같은 해 KBS 2FM ‘인터넷 가요제’에 지원해 본선(8개 팀)에 진출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훈련한 이들이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성취였다. 그는 “노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부족했다. 그래도 당시엔 내가 재능은 있구나 싶어 뿌듯했다”고 했다.
이후 약 5년 간 보컬과 작사를 전문적으로 배우며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을 준비했다. 꾸준히 레슨을 받으며 JK김동욱의 곡 ‘너를 비운다’ 작사에 참여했고,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갔던 때는 3인조 댄수 가수 오디션에 붙기도 했다. 중국에서 활동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고민 끝에 다시 학업으로 돌아왔다.
“저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나고, 저보다 더 음악을 즐기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경쟁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정 형편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로스쿨 제도가 생겼습니다. 막연히 남들이 시키는 일 말고 주체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해 로스쿨에 진학했어요.”
한동안 책을 놓았던 탓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본인의 특기인 “끈기와 인내”로 버텼다. 그는 “처음엔 1, 2시간 앉아 있기도 힘들더라. 학부 때 법학을 공부한 적 없다 보니 법이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며 “시간이 지나니 점차 익숙해졌다. 공부를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한 친구들과 노래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뒤에도 “남들 사건 40~50개 할 때 80개 씩 맡고, 자정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치열함으로 승부를 봤다. 2년만인 2014년 법무법인 대진을 설립해 이제는 서초동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 변호사는 이혼과 교통사고나 산재에 따른 손해배상, 형사 등 사건을 주로 수임해왔다. 법무법인 대진은 현재 소속 변호사가 총 12명으로 이혼, 손해배상, 형사 등 사건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자 10여 년 간 가슴 한 구석에 밀어뒀던 오랜 꿈이 다시 그의 가슴을 간질였다.
● 2019년부터 다시 노래 시작…11월에 새 앨범
김 변호사는 2019년 친구인 싱어송라이터 ‘멕켈리’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업체 ‘부티크 케이엠’을 설립하고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첫 앨범인 ‘관계’를 냈고, 올해 노래 2곡을 발표했다. 11월에도 앨범을 낼 예정이다. 감미로운 음색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사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신인이다 보니 처음에는 음반을 유통시키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곡을 내면 신곡 차트에서도 꽤 오래 머무르고, 재생 횟수도 꾸준히 나온다”며 “이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했다.
음원 사이트 신곡 차트 등을 통해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그가 변호사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처음에는 변호사 겸 가수로 홍보를 했는데 그리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아서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며 “믿을 수 있는 변호사로 저를 아는 분들만큼이나 신인 가수로만 저를 아는 분들도 많다. 사실 음악은 음악 자체로만 평가해주는 것이 저도 좋다”고 했다.
● “가수는 ‘부캐’일 뿐… 변호사 본업 충실
김 변호사의 노래는 특히 듣는 사람들에게 ‘가사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SNS에서도 ‘가사가 좋으니 꼭 들어보라’며 지인들에게 김 씨의 노래를 추천하는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는 ”예를 들어 ‘비’를 주제로 가사를 쓴다고 하면 같은 주제로 성공한 노래들을 먼저 쫙 뽑아 꼼꼼히 뜯어본 뒤 작업을 한다. 의뢰인에게 맞는 판례를 분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김 변호사가 꼼꼼한 분석을 바탕으로 가사를 전체적으로 구성하는 데 강점이 있다면, 함께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멕켈리는 노래를 들으면 머릿속에 남는 ‘포인트’ 있는 표현을 더하는 데 강점이 있다. 그는 ”꾸준히 음악을 해온 멕켈리와 함께 곡 작업을 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되고 배우는 점도 많다“며 ”멕켈리의 노래도 점점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서 함께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좀 더 성장시켜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고 했다.
다만 그는 대표변호사로서의 업무와 음악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는 다소 진지하게 답했다. ”언제까지나 가수 활동은 ‘부캐’일 뿐 변호사로서의 생활에 쏟는 에너지와 시간이 훨씬 많아요. 최우선은 본업에 충실 하는 것이고,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변호사로서의 일이에요. 물론 ‘가수’라는 호칭과 ‘변호사’라는 호칭 둘 다 마음에 듭니다.(웃음)“
본업인 변호사로서의 목표에 대해선 ”제가 주로 맡아온 이혼, 손해배상, 형사 등 분야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또 ”가수와 변호사는 전혀 다른 분야“라며 ”엔터테인먼트 관련 사건들에 대해 변호사들이 사실관계 파악은 물론 관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이 분야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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