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캐는 싱어송라이터…MZ세대 법조인의 ‘슬기로운 변호사생활’[법조 Zoom In]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9월 19일 1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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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법무법인 대진 김민성 대표변호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인터뷰에 응한 법무법인 대진 김민성 대표변호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재판부를 잘 설득하기 위해 판례를 분석하는 것과 작사 작업이 본질은 다르지 않은 것 같아요. 본인 감정에만 취하기보다 잘 쓴 가사들을 꼼꼼히 분석해 가사를 지어야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죠.”

‘본캐(본캐릭터)’만큼이나 ‘부캐(부캐릭터·또 다른 자아)’를 중시하는 MZ세대 바람이 법조계에도 불고 있다. 법무법인 대진 김민성 대표변호사(39·변호사시험 1회)는 16일 동아일보와 만나 “음악 활동과 변호사 활동이 서로 시너지를 낼 때가 많다”며 이렇게 말했다. 김 변호사는 약 3년 전부터 휴일이면 서울 서초동의 법무법인 사무실이 아닌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로 향한다. 단순한 취미 수준이 아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인 동시에 신인 싱어송라이터 ‘민성’이면서 아티스트 3명이 소속된 한 엔터테인먼트 업체 대표다.

그가 올해 3월과 5월 각각 발표한 ‘오늘이 지나면 우리 어떻게 해야 돼’, ‘작은 목소리로 말해주고 싶어’ 등의 노래는 지니뮤직 등 음원 유통 사이트에서 매일 꾸준히 2000~3000건의 재생 횟수를 기록한다. 얼굴이 알려지지 않은 ‘신인 가수’인 것을 감안하면 무시 못 할 수준. 유튜브 등에 게시된 뮤직비디오 영상에는 특히 ‘음색이 너무 좋다’, ‘가사가 꼭 내 이야기 같아 위로를 받는다’는 등의 호평이 꾸준히 나온다.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녹음을 준비하는 김민성 변호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녹음을 준비하는 김민성 변호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 전업 가수 꿈꾸다 로스쿨 진학


“중·고등학생 때 노래를 부르면 온갖 걱정과 감정들이 다 해소되고 배출되는 듯한 기분이 좋았어요. 철없던 때라 당장 음악을 배우고 가수를 하겠다는 제게 부모님이 ‘대학에 가고 나서 마음대로 하라’고 하셨죠. 대학에 가자마자 가요제에 도전했습니다.”

2002년 고려대 일어일문학과에 진학한 김 변호사는 같은 해 KBS 2FM ‘인터넷 가요제’에 지원해 본선(8개 팀)에 진출했다. 다른 지원자들은 어릴 때부터 음악을 전문적으로 배우고 훈련한 이들이었다는 점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성취였다. 그는 “노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때라 지금 돌이켜보면 정말 부족했다. 그래도 당시엔 내가 재능은 있구나 싶어 뿌듯했다”고 했다.

이후 약 5년 간 보컬과 작사를 전문적으로 배우며 본격적으로 음악의 길을 준비했다. 꾸준히 레슨을 받으며 JK김동욱의 곡 ‘너를 비운다’ 작사에 참여했고, 교환학생으로 일본에 갔던 때는 3인조 댄수 가수 오디션에 붙기도 했다. 중국에서 활동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고민 끝에 다시 학업으로 돌아왔다.

“저보다 훨씬 재능이 뛰어나고, 저보다 더 음악을 즐기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경쟁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가정 형편상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고요. ‘다시 공부를 해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로스쿨 제도가 생겼습니다. 막연히 남들이 시키는 일 말고 주체적인 일을 할 수 있는 변호사가 돼야겠다고 생각해 로스쿨에 진학했어요.”

한동안 책을 놓았던 탓에 어려움이 없지 않았지만 본인의 특기인 “끈기와 인내”로 버텼다. 그는 “처음엔 1, 2시간 앉아 있기도 힘들더라. 학부 때 법학을 공부한 적 없다 보니 법이 마치 외국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며 “시간이 지나니 점차 익숙해졌다. 공부를 안 해본 것도 아니고, 어릴 때부터 음악을 한 친구들과 노래로 경쟁하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다”고 했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시험에 합격해 변호사가 된 뒤에도 “남들 사건 40~50개 할 때 80개 씩 맡고, 자정이 되어서야 퇴근하는” 치열함으로 승부를 봤다. 2년만인 2014년 법무법인 대진을 설립해 이제는 서초동에서 비교적 안정적으로 자리를 잡았다. 김 변호사는 이혼과 교통사고나 산재에 따른 손해배상, 형사 등 사건을 주로 수임해왔다. 법무법인 대진은 현재 소속 변호사가 총 12명으로 이혼, 손해배상, 형사 등 사건에 강점을 보이고 있다.

그러자 10여 년 간 가슴 한 구석에 밀어뒀던 오랜 꿈이 다시 그의 가슴을 간질였다.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민성 변호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민성 변호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 2019년부터 다시 노래 시작…11월에 새 앨범

김 변호사는 2019년 친구인 싱어송라이터 ‘멕켈리’와 함께 엔터테인먼트 업체 ‘부티크 케이엠’을 설립하고 다시 노래를 시작했다. 지난해 7월 첫 앨범인 ‘관계’를 냈고, 올해 노래 2곡을 발표했다. 11월에도 앨범을 낼 예정이다. 감미로운 음색과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가사가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는 “신인이다 보니 처음에는 음반을 유통시키는 데서부터 어려움을 겪었다. 지금은 곡을 내면 신곡 차트에서도 꽤 오래 머무르고, 재생 횟수도 꾸준히 나온다”며 “이제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성공적으로 키워보고 싶은 욕심도 있다”고 했다.

음원 사이트 신곡 차트 등을 통해 그의 음악을 처음 접하는 이들은 그가 변호사라는 사실을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는 “처음에는 변호사 겸 가수로 홍보를 했는데 그리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아서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며 “믿을 수 있는 변호사로 저를 아는 분들만큼이나 신인 가수로만 저를 아는 분들도 많다. 사실 음악은 음악 자체로만 평가해주는 것이 저도 좋다”고 했다.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민성 변호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17일 서울 서초구 양재동의 음악 작업실에서 노래를 부르는 김민성 변호사.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 “가수는 ‘부캐’일 뿐… 변호사 본업 충실


김 변호사의 노래는 특히 듣는 사람들에게 ‘가사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다. SNS에서도 ‘가사가 좋으니 꼭 들어보라’며 지인들에게 김 씨의 노래를 추천하는 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그는 ”예를 들어 ‘비’를 주제로 가사를 쓴다고 하면 같은 주제로 성공한 노래들을 먼저 쫙 뽑아 꼼꼼히 뜯어본 뒤 작업을 한다. 의뢰인에게 맞는 판례를 분석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했다.

김 변호사가 꼼꼼한 분석을 바탕으로 가사를 전체적으로 구성하는 데 강점이 있다면, 함께 활동하는 싱어송라이터 멕켈리는 노래를 들으면 머릿속에 남는 ‘포인트’ 있는 표현을 더하는 데 강점이 있다. 그는 ”꾸준히 음악을 해온 멕켈리와 함께 곡 작업을 하는 게 도움이 많이 되고 배우는 점도 많다“며 ”멕켈리의 노래도 점점 더 좋은 반응을 얻고 있어서 함께 앞으로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좀 더 성장시켜보고 싶은 욕심도 생긴다“고 했다.

다만 그는 대표변호사로서의 업무와 음악 활동을 병행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는 질문에는 다소 진지하게 답했다. ”언제까지나 가수 활동은 ‘부캐’일 뿐 변호사로서의 생활에 쏟는 에너지와 시간이 훨씬 많아요. 최우선은 본업에 충실 하는 것이고, 제가 더 잘할 수 있는 건 변호사로서의 일이에요. 물론 ‘가수’라는 호칭과 ‘변호사’라는 호칭 둘 다 마음에 듭니다.(웃음)“

본업인 변호사로서의 목표에 대해선 ”제가 주로 맡아온 이혼, 손해배상, 형사 등 분야에서 가장 좋은 성과를 낼 수 있는 능력과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라고 했다. 또 ”가수와 변호사는 전혀 다른 분야“라며 ”엔터테인먼트 관련 사건들에 대해 변호사들이 사실관계 파악은 물론 관례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제가 이 분야에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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