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환경부 블랙리스트’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은경 전 환경부 장관의 항소심 재판부가 ‘임원 12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행위’를 유죄로 인정한 1심과 달리 8명에 대한 부분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24일 서울고법 형사6-1부(부장판사 김용하·정총령·조은래)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김 전 장관의 항소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1심과 달리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전 장관이 산하 공공기관 임원들에게 사표제출을 지시한 사실을 인정했다. 김 전 장관은 환경부 운영지원과 등을 통해 청와대 인사수석실과 협의했고, 협의 내용도 보고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김 전 장관 측은 재판과정에서 ‘사표제출을 지시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지만, 2심도 교체 대상자를 즉시, 연내, 이후로 구분해 순차적으로 교체한 것으로 봤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직권을 남용해 산하 공공기관 임원 15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해 ‘의무없는 일’을 하게 했다고 보고 있다.
이어 1심은 김 전 장관 등이 소속 공무원 등을 통해 산하 공공기관 임원 12명에게 사표를 요구, 받아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2심은 전모 한국환경공단 이사장 등 4명에게 사표를 제출하라고 요구한 혐의만 1심과 마찬가지로 유죄로 판단했다. 그외 박모 한국환경공단 본부장 등 8명에게 사표 제출을 요구한 행위는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봤다.
2심 재판부는 “해당 임원들이 사표를 제출해 ‘의무없는 일’을 했다고 할 수 없다. 혹은 김 전 장관이 직권을 남용한 것과 산하기관 임원들이 사표를 제출한 것 사이에는 인과관계가 있다고 볼 수 없다”고 했다.
임기가 만료된 임원들에게 사표를 제출받은 후 후임자 인선에 나서는 것은 법령상 의무에 없는 일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공공기관 임원에게 임기를 보장하는 것은 업무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했다.
또 사표를 제출한 임원들 일부는 법정에서 “정권이 바뀌면 재신임을 받기 위해 사표를 제출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진술했다. 2심은 일부 임원들이 김 전 장관의 요구로 사표를 제출했다는 혐의가 충분하게 입증되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검찰은 김 전 장관이 환경부 공무원과 산하 공공기관 직원들에게 ‘임원들에게 사표를 받으라’고 요구한 것 역시 의무에 없는 일을 하게했다고 보고있다. 1·2심은 이와 판단을 달리해 모두 무죄로 봤다.
김 전 장관은 신 전 수석과 공모해 청와대 추천 인사, 환경부 추천 인사가 후임으로 선정될 수 있도록 지원한 혐의도 받고 있다. 사전에 내정자가 합격할 수 있도록 정보를 제공하고, 심사 과정에서 후한 점수를 주도록 유도했다는 것이다.
1심은 사전지원과 현장지원 관련 업무방해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2심은 “후임자 임명 과정에서 실·국장들을 혼란스럽게 할만큼 위협해 심사를 방해했다고 보기 어렵다”며 모두 무죄 판결했다. 직권남용 혐의는 1심과 같이 판단했다.
2심은 표적감사를 통해 공공기관 임원에게 사표를 제출하도록 요구한 혐의도 1심과 달리 판단했다. 2심은 사표를 제출하라고 협박했다는 강요 혐의는 무죄로 판단하고, 사표 제출이 의무에 없는 일이라고 보고 직권남용죄는 유죄로 판단했다.
김 전 장관은 ‘청와대 추천 인사가 서류심사에서 탈락했다’는 이유로 환경부 소속 한 과장을 전보했다는 혐의도 받고 있다. 1심은 직권남용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지만 2심은 무죄로 판결했다.
이같은 과정을 통해 형량은 6개월 줄었다.
2심 재판부는 “ 피고인(김 전 장관)이 한 행위로 공공기관 임원 5명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심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됐다면 최종 후보자로 선정되지 않은 사람들이 임원에 임용됐을 수도 있다”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또 “임원 공모에 131명이 지원했는데 내정자가 있었다. 내정자에게만 각종 지원이 이뤄지고, 이로 인해 지원자들이 시간과 경제적 손실을 입었다. 탈락자들은 심한 박탈감을 느꼈을 것이다. 또 깊은 불신도 야기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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