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주 넘게 이어진 현대제철 당진제철소 불법 점거 사태가 법원의 퇴거 결정으로 새로운 분기점을 맞았다. 법원은 현대제철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노총) 금속노조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를 상대로 낸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신청에서 사실상 점거의 위법성을 인정하며 퇴거 결정을 내렸다.
2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대전지법 서산지원은 현대제철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업무방해금지 가처분 결정문에서 지난달 23일부터 계속된 당진공장 통제센터 점거를 “부당한 행위”라고 명시했다. 법원은 비정규직지회가 통제센터를 기습 점거하고 폭력을 행사한 점, 이후 극소수 인원만 출입을 허용하며 사실상 조업에 영향을 미친 점, 통제센터가 가스, 전력 등을 관리하는 안전시설인 점 등을 고려했다.
정부의 모호한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 발단이 된 현대제철의 ‘자회사 고용’ 방식은 4년 전 정부가 제시한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방법이다. 공공부문의 정규직 전환 갈등을 불렀던 모호한 가이드라인이 민간 기업 노사에도 파열음을 내고 있는 것이다.
갈등의 핵심은 현대제철의 자회사 채용을 ‘직접 고용’으로 볼 수 있는지 여부다. 고용노동부는 올해 2월 현대제철 측에 불법파견 협력사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도록 시정지시했다. 이후 현대제철은 100% 지분 출자로 현대ITC(당진), 현대ISC(인천), 현대IMC(포항) 등 자회사 3곳을 설립, 협력사 직원 7000명을 채용하기로 했다. 그러나 민노총 산하 현대제철 비정규직지회 소속 2000여명은 자회사 채용을 거부하고 본사 직고용을 요구했다. 자회사는 가짜 정규직이고 본사 채용만이 제대로 된 정규직화라는 것이다.
반면 현대제철은 고용노동부의 시정지시도 권고일 뿐 어떤 형태의 직고용을 택할 지는 자율이라는 입장이다. 이달 출범한 자회사는 기존 정규직의 60% 수준이던 협력사 직원 임금을 80~85%로 올리고 차량구입 할인, 학자금, 의료비 등 정규직 수준의 복지 혜택도 마련했다.
정부는 2017년 7월 발표한 ‘공공부문 비정규직 근로자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파견·용역 근로자에 대해 직접 고용 또는 자회사 설립 방식을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 자회사는 비용부담이 상대적으로 적고 기존 노동자들과의 갈등을 줄이는 완충 수단으로 많은 기관이 도입했다. 실제 인천국제공항공사에서는 지난해 협력사 보안검색요원 1900명이 본사 직고용으로 전환되는 과정에서 기존 정규직 노조와 취업준비생들이 반발하기도 했다.
현대제철 내부에서는 이미 갈등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한달째 사무실 출입이 제한된 당진공장 직원 일동은 노조를 상대로 농성 중단을 요구하는 호소문을 냈다. 협력사 직원들이 입사를 거부하고 있는 현대ITC 신입채용(50명 모집)에는 초봉 4800만원 이상(성과급 별도) 조건에 7600여명이 몰려 150대1의 경쟁률을 보였다.
“자회사 전환은 직접 고용 의무 이행한 것” 판결도
최근엔 자회사 전환을 직접 고용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봐야한다는 판결도 나오고 있다. 올 6월 서울남부지법은 한전의 시설관리 자회사인 한전FMS 직원들이 낸 고용의사표시 소송에서 “정부 지침에서도 자회사 설립후 직접 고용하는 방식을 인정하고 있다”며 사측의 손을 들어줬다.
점거가 장기화 되고 있지만 사태가 수습될 기미는 좀처럼 보이지 않고 있다. 현대제철은점거 중인 근로자들이 협력사 직원이라 직접 협상에 나설 경우 역으로 파견법 위반(불법파견)을 시인하는 꼴이 될 수 있다며 교섭에 나서길 주저하고 있다. 노조는 현대제철이 자회사 채용조건으로 소송취하서 등을 받는 것을 문제삼으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불법점거에 대해서는 민형사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는 논의를 협상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노조가 법원의 퇴거 집행에 불응하면 점거 1일 당 일정 금액을 지급하는 간접강제 결정이 뒤따를 수 있다. 민노총 측은 지역 확대간부 결의대회를 이달말 당진제철소에서 진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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