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접종률을 높이려는 정책 취지는 이해하지만 저처럼 부정맥 질환이 있는 사람들한테까지 접종을 강요하는 건 맞지 않는 거 같아요.”
2019년 심혈관 질환인 부정맥 수술을 받은 취업준비생 장모 씨(25)는 30일 정부가 도입을 검토 중인 ‘백신 패스’ 제도에 대해 30일 이렇게 말했다. 장 씨는 며칠 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예방 접종 예약을 했다가 주변에서 심장 질환자에게 부작용이 생길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듣고 취소했다.
● “부작용 우려로 못 맞는데 지나친 불이익”
백신 패스는 백신 접종 완료자에게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수 있게 하되 미접종자에 대해선 유전자증폭(PCR) 검사 음성확인서를 제출한 경우에만 이용을 허용하는 제도다. 독일과 프랑스, 덴마크 등에서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 정책의 일환으로 운용되고 있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29일 브리핑에서 백신 패스와 관련해 “미접종자들을 보호하는 목적도 있고, 접종률을 끌어올리기 위해 미접종자들에게 다소 불편을 끼치는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하지만 장 씨는 “개인마다 건강 상태가 다르고 부작용 위험 때문에 백신을 맞고 싶어도 못 맞는 경우도 있는데 백신 접종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음성확인서를 준비해야 하는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면 지나친 불이익인 것 같다”고 했다.
정부가 ‘위드 코로나’에 대비한 방안으로 백신 패스 도입을 검토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미접종자들은 “인간의 기본권을 침해하고 사회 분열을 불러올 수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서울 광진구에 사는 최혜진 씨(34)는 “어머니가 알레르기 반응으로 쓰러져 입원한 적이 있다. 저 역시 비슷한 일이 생길 수 있어 백신을 맞고 싶지 않은데 미접종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것은 개인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영등포구에 거주하는 최모 씨(25)는 “1차 접종 직후 5분 만에 전신 중증 알레르기 반응인 아나필락시스 반응이 나타났다. 의료진이 백신 부작용 때문에 2차 접종을 하지 말라고 해서 맞지 않았다”며 “기저질환자나 부작용 사례자들도 생활에 제약이 없도록 별도 절차를 마련해줬으면 한다”고 했다. 29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백신 패스 반대합니다”라는 청원글에는 30일 오후 6시 기준 2만1900여 명이 동의했다.
해외 접종자들은 백신 패스의 혜택에서 제외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현재 해외에서 백신을 접종을 완료한 경우 국내 접종자가 받는 백신 인센티브를 받지 못하는 실정이다. 미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다 지난달 귀국한 대학생 김모 씨(23)는 최근 식당에서 친구 3명과 저녁식사를 하려했지만 국내 접종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합석을 거부당했다. 김 씨는 “해외에서 이미 2차 접종을 받을 받아 국내에서는 추가로 접종을 받기도 어렵다”고 했다.
● “불이익 주기 보다 접종자에 인센티브 바람직”
전문가들은 “단계적 일상 회복으로 가려면 백신 접종자와 미접종자에게 각각 맞는 방역 지침이 필요하기 때문에 백신 패스도 도입할 필요가 있지만 기저질환이나 부작용 우려 등으로 백신을 맞지 못하는 경우도 고려해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백신 접종 여부에 따라 이용 제한을 두는 다중이용시설의 종류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백신 접종율을 높이려면 미접종자에게 불이익을 주기보다 접종 완료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정재훈 가천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기저질환이 있는 경우에도 의료진과의 소통을 통해 가급적 백신 접종을 하라고 권한다”며 “심각한 부작용 등으로 인해 1차 접종밖에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전문의 진단서를 통해 백신 패스를 대체하는 방안도 필요하다”고 했다.
최재욱 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교수는 “백신 패스를 실시하기 전에 미접종자들이 접종을 하지 않는 원인을 면밀히 분석한 뒤 미접종자들을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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