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공계생들 “연구요원 가느니 현역입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5일 03시 00분


군복무 대신하는 석사 병역특례 선발 축소에 “대학원 졸업때 제도 폐지될라”
서울대 공대-자연대 군입대 휴학 늘어… 전문연구요원 지원자는 감소 추세
이공계 교수 “대학원 진학 줄까 우려”… “국내 대학원 경쟁력 높여야” 의견도

서울대 전기정보학과에 재학 중인 박경환 씨(22)는 1월 현역으로 군복무를 마치고 변리사 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공대생인 박 씨는 연구기관 등에서 군 복무를 대신하는 병역특례제도인 전문연구요원에 지원할지도 고려했지만 결국 현역 복무를 택했다. 전문연구요원에 지원하려면 이공계 대학원에 진학해야 하는데 연구요원 선발 규모가 축소되는 추세였기 때문이다. 박 씨는 “전문연구요원이 언젠가 폐지될 수 있다는 얘기가 있어서 대학원 진학은 일찌감치 접어뒀다. 대학원 졸업 시점에 이 제도가 사라지면 시간을 허비한 꼴이 될 수 있지 않나”라고 말했다.

전문연구요원은 이공계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군 복무방식이다. 석사 학위를 소지한 경우 병무청 지정 연구기관이나 기업에서 급여를 받으며 3년간 근무하거나(석사전문요원), 2년 간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은 뒤 1년간 근무하는 방식(박사전문요원)이어서 경력 단절 없이 군 복무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요즘 들어 전문연구요원 대신 현역 입대를 택하는 이공계생들이 늘고 있다. 서울대 공대의 경우 군 입대를 목적으로 휴학한 학생이 2016년 426명에서 지난해 609명으로 늘었다. 서울대 자연대는 2016년 15명에서 2019년엔 116명으로 3년 새 7.8배나 늘었다. 이에 비해 전문연구요원 지원자는 공대가 2017년 357명에서 지난해 206명으로, 자연대가 173명에서 118명으로 줄었다.

1973년 도입된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국내 방위산업에 인력을 공급하고 인재 유출을 줄인다는 목적으로 50년 가까이 이어져왔다. 하지만 국방부는 저출산으로 병역자원이 부족해지자 2019년 1500명이던 석사급 전문연구요원 선발 규모를 2025년까지 1200명으로 줄이기로 하는 등 각종 병역특례를 축소하고 있다. 정부가 추가 감축 계획을 내놓은 것은 아니지만 이공계 학부생들 사이에선 대학원을 졸업할 즈음 선발 인원이 크게 줄거나 제도 자체가 폐지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 번지고 있다.

서울대 공대에 재학 중인 전모 씨(23)는 “전문연구요원을 지망할 경우 석사학위 취득 후인 4, 5년 뒤에나 지원서를 쓸 텐데 병역 특례가 그때까지 남아있을지 의문이어서 현역 입대를 택했다”고 했다.

이공계 학과 교수들은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축소될 경우 대학원 진학자 수가 줄어들까봐 우려하고 있다. 곽승엽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가 2018년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서울대, 고려대, 연세대, KAIST, 포항공대의 이공계 대학원생 1565명 중 83%가 “전문연구요원 제도가 없다면 해외 대학원에 진학하거나 취업했을 것”이라고 답변했다.

이병호 서울대 공대학장은 “국내 대학원 진학률이 최근 크게 떨어져 서울대 대학원 연구실들도 인원을 못 채우는 경우가 많다”며 “교수들 사이에서 이대로 가다간 대부분의 연구실 운영이 힘들어질 거라는 우려가 크다”고 말했다. 이준호 서울대 자연대학 학장은 “우수한 과학기술 인재들이 국내 대학과 연구기관에서 활약할 수 있도록 적절한 병역 혜택을 제공하는 전문연구요원 제도는 유지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병역특례 축소가 시대적 흐름이 된 이상 이공계 인재들이 국내 대학원을 택할 수 있도록 경쟁력을 높이는 게 근본적인 해법이라는 의견도 많다. 미국 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이공계 대학생 김모 씨(24)는 “국내 학계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진다면 병역특례가 없어도 국내 대학원을 택하는 학생들이 자연스레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연구요원 선발 업무를 담당하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국내 대학원생들은 최저임금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연구에 집중하지 못한 채 행정 업무에 시달리는 일도 잦다. 국내 대학원의 열악한 처우 때문에 해외 유학길에 오르는 학생도 적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공계생들#연구요원#현역입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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