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리로 익살 번뜩… 그림으로 손주사랑… ‘어르신 예술’ 활짝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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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대상 문화예술교육 활기

경북 예천 ‘노세노세 캥마쿵쿵노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예천 토박이 노인들이 풍물을 치며 자신들이 노랫말을 붙인 노동요를 부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경북 예천 ‘노세노세 캥마쿵쿵노세’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예천 토박이 노인들이 풍물을 치며 자신들이 노랫말을 붙인 노동요를 부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들에가 일하고 집에 왔디만 밥 차리라 카네 / 난 아니라고 봐 / … 화나서 반말 했디만 시어머이가 화를 내네 / 난 아니라고 봐 / … 남자는 하늘이고 여자는 땅이라꼬 / 난 아니라고 봐 …’

노래 ‘난 아니라고 봐’(가제)의 가사 일부다. 경북 예천 70대 할머니들이 살면서 겪은 고부갈등, 남녀차별 등을 소재로 지은 향토 민요다. 사투리를 그대로 써 생동감 넘치고, ‘난 아니라고 봐’라는 후렴구에는 유머가 감돈다.

이들은 경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하고 사단법인 국가무형문화재 예천통명농요보존회가 운영하는 프로그램 ‘노세노세 캥마쿵쿵노세’에 참여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진행하는 지역특성화 문화예술교육 지원사업의 하나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더 소외되는 노인세대가 문화예술 작품으로 일상을 표현하는 일을 지원하고 있다. 이를 통해 공동체와 소통하고 지역사회와 연결되도록 한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한국노인종합복지관협회가 주관하고 경기 성남시 판교노인종합복지관이 운영하는 ‘함께 사는 동네만들기 동고동락(同苦同樂)’은 문학을 기반으로 한다. 참여 노인 10여 명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일상 소재에 대해 설문조사를 하고 인터뷰를 해보도록 교육받는다. 복지관은 비대면 영상채팅 줌(zoom)을 통해 참여자 대화 서클을 만들어 쌍방향 소통한다. 복지관 이주현 예술강사는 “일방적 교육이 아니라 강사들이 어르신의 삶의 지혜를 배우는 시간”이라며 “어르신들은 주변 사람을 인터뷰하고 설문지를 만드는 과정을 통해 공동체에 필요한 어른, 이웃으로서의 역할을 고민하게 된다”고 말했다.

전북 김제 ‘오늘은 그냥 그림 안 그릴려고’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노인들이 삶의 한 조각을 그림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전북 김제 ‘오늘은 그냥 그림 안 그릴려고’ 프로그램에서 활동하는 노인들이 삶의 한 조각을 그림으로 표현해내고 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제공
전북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가 주관하고 ‘이랑고랑’이 운영하는 ‘오늘은 그냥 그림 안 그릴려고’는 전북 김제의 70, 80대들이 첫사랑 추억, 출산 기억 등 자신의 삶을 그려서 자수 제품이나 노트, 달력 등으로 만든다. 지난해부터 매주 1회, 3시간씩 할머니 20명 안팎이 노인정에 나와서 황유진 강사를 비롯한 20, 30대 젊은이들에게서 그림을 배운다.

처음에는 이상한 종교단체는 아닌지, 뭔가 팔려는 ‘수작’은 아닌지 의심하던 노인들은 마을 벽화를 함께 그리면서 긴밀해졌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농작물 그리기부터 시작해 김장 준비, 출산 등 일상을 표현하는 그림을 그린다. 지난해 참여 노인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 일을 계기로 이달 중 ‘영정(影幀) 영상’을 찍기로 했다.

황 강사는 “달력이나 머그컵 등을 만들어 명절에 내려온 자식, 손주에게 자랑하고 선물하면서 뿌듯해하신다”고 말했다. 그는 “소소한 재밋거리, 일상의 작은 변화만으로도 어르신 삶이 조금씩 변한다”며 “할머니들에게서 받는 배려와 사랑이 더 많다”고 말했다.

‘노세노세 캥마쿵쿵노세’는 예천 노인들의 삶을 사투리 등으로 표현해 향토 민요나 노동요로 만든다. 통명농요 전수자인 안성배 씨 등이 가르친다. 올 5월부터 일주일에 한 번, 대부분 70대인 15명 안팎이 마을회관에서 배운다. 이들의 인생사가 모티브가 되고 표현도 일상 언어로 한다. 어릴 적 기억에만 어렴풋이 남은 민요와 전통놀이를 되살린 셈이다. 안 씨는 “노래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하지도 않고 누구나 할 수 있기 때문에 스스로 즐겁게 부를 수 있는 놀잇감으로 재탄생시키고 싶었다”고 말했다.

노랫말은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진다. 마음을 표현한 편지를 써보고 추억이 담긴 사진이나 옷 같은 소품들을 통해 다양한 주제가 형성된다. ‘아이 셋 데리고 친정 가다가 하나 잃어버렸다’ 같은 추억이 쌓인다. 수업이라기보다는 수다 떨다 오는 느낌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노래 5곡은 이달 중순 음원으로 나온다. 가사와 간단한 멜로디는 어르신들이 구성하고 추임새 합창 같은 편곡을 강사들이 추가했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 관계자는 “각 지자체와 광역문화예술교육지원센터, 지역복지관 등과 함께 노인이 주체가 돼 문화예술교육을 누릴 수 있도록 긴밀하게 협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어르신 예술#노인문화예술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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