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노원구의 한 아파트에서 세 모녀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태현(25)에게 1심 재판부가 검찰의 형량보다 한 단계 낮은 무기징역을 선고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13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북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오권철)는 전날 살인·절도·특수주거침입·정보통신망침해·경범죄처벌법위반죄 등 5개 혐의로 기소된 김태현에게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김태현이 피해자 3명을 살해한 지 7개월여 만이다.
앞서 검찰은 결심 공판에서 김태현의 범행이 계획적이었다며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 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당시 검찰은 “둘째 딸 살해가 계획에 없던 일이라면 다음 범행 실행에 주저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만 당당하게 행위를 이어나갔다”며 “모친을 죽여야겠다는 결심을 한 것을 보면 일련의 범행이 계획됐던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세 명을 살해하고 범행 과정에서 다른 범죄를 함께 저지른 점을 감안하면 피고인에 대해 극형 외에는 다른 형을 고려할 여지가 없다”며 구형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검찰의 구형보다는 낮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극악무도한 범죄임을 인정하면서도 사형으로 나아가기 위해선 엄격한 요건이 필요하다는 논리는 내세웠다.
재판부는 “형사 처벌의 응보적 성격과 일반 예방적 성격을 고려하면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의견은 당연하다”며 “그러나 법원으로서는 엄격성, 다른 유사 사건과의 양형 형평성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사형 선고의 전제조건이 충족되는 지 여부를 세심히 살펴봐야 할 의무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사건 범행을 대체로 인정하고 벌금형 초과 범죄전력이 없는 점, 범행 후 도주하지 않았고 재판 과정에서 잘못을 반성한다는 반성문을 제출하고 피해자와 유족들에게 사죄 뜻 밝혔다”며 “사회 격리 수감생활을 통해 자신의 잘못을 진정으로 반성하고 참회하고 피해자와 유가족들에게 속죄하는 마음으로 살도록 사형 이외 가장 중한 형벌을 선고한다”고 말했다.
잔혹한 살해에도 불구하고 사형 대신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방청석에 있던 유가족은 “이런 법이 어딨냐”며 오열하는 모습을 보였다.
유족들은 선고 이후 취재진을 만난 자리에서 “단란했던 가정이 무참히 살해범에 의해 사라졌다”며 “사형을 줘도 모자란 살인범에게 무기징역이 웬 말이냐. 재판부의 한심한 태도”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함께 항소에 나서겠다는 뜻을 전했다.
전문가들은 재판부가 상징적 의미의 사형보다는 실효성 있는 무기징역을 택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판단했다.
법률사무소 월인의 채다은 변호사는 “최근 사형은 연쇄살인범이나 반성의 기미가 없는 극악무도한 범죄자들을 중심으로 선고되고 있다”며 “앞선 비슷한 사건들의 양형 형평성을 고려할 때 김태현에게 사형을 내리게 되면 그 범주가 너무 넓어진다고 판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실상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현실을 고려해 실효성 있는 무기징역을 선택한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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