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클리 리포트]위기의 대학, 생존 키워드는 ‘온라인’
[1] 학교간 강의 공유
[2] 전면 온라인 수업
[3] 학위 취득 속도전
“안녕하세요. 오늘은 기초화학 두 번째 시간, 주기율표에 대해 배워 보겠습니다.”
지난달 9일 오전 10시 정각. 엔지니어가 “하이∼큐!”라 외치며 실시간 강의 시작을 알리자 한양대 화학과 김민경 교수가 입을 열었다. 김 교수 앞에는 86인치 모니터 하나와 프롬프터 두 개만 있을 뿐 칠판도 학생도 없었다. 그 대신 한양대가 만든 자체 강의 플랫폼 ‘HY-LIVE’ 화면의 카카오톡 창에는 ‘백석문화대’ ‘동양미래대’ ‘인덕대’ ‘안산대’ 등 이름 앞에 4개 전문대학 이름을 단 학생 60명의 대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이 학생들은 한양대가 ‘공유 교육’ 협약을 맺은 대학 소속이다. 원래대로라면 이 학생들은 소속 대학 강의실에서 김 교수의 홀로그램과 함께 실시간으로 강의를 들을 수 있다. 이날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해 강의실 수업이 제한돼 재택으로 진행된 수업이었다.
급격한 학령인구 감소와 코로나19로 위기에 처한 대학들이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생존 키워드는 온라인을 통한 △경계 허물기 △다이어트 △확장이다. 여러 대학이 강의를 공유하며 강의를 다양화하면서도 교수 채용 부담은 줄인다. 학생들의 학비 부담을 덜고 학위 취득 속도를 높인다.
○ 한양대 ‘홀로그램 교수’와 공부하는 학생들
“실험실의 조교 선생님 나와 주세요.”
김 교수가 말하자 강의 중인 스튜디오와 실험실이 실시간으로 연결됐다. 학생들은 조교가 과산화수소에 아이오딘화 칼륨, 색소, 세제를 넣어 화산이 폭발하는 것처럼 거품이 솟아오르는 장면을 집중하며 지켜봤다.
원격수업 시간에는 보통 학생들이 줌(Zoom) 화면에 얼굴을 공개하지 않아 검은 화면만 보이는 일이 잦다. 그러나 김 교수 수업 화면에 비치는 학생들의 눈빛은 살아 있다. “Ti(티타늄)는 무슨 원소일까요?”라고 김 교수가 묻자 채팅창에 답변이 빠르게 올라왔다. “정답 맞힌 학생, 커피 제가 쏘겠습니다. 카톡 남겨 주세요.” 김 교수가 말했다.
거리 두기가 완화되면 학생들은 각자 대학 강의실에 모여 실제와 똑같은 김 교수 모습을 보며 수업을 들을 수 있다. 한양대가 ‘텔레프레전스(tele-presence·원격 실재)’ 기술을 이용해 서울 캠퍼스에서 강의하는 교수의 실물 크기와 동일한 모습을 다른 대학 강의실에서 홀로그램으로 나타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이다. 13개 대학이 한양대와 컨소시엄을 맺고 강의를 공유받는다.
지금은 대부분 한양대 교수가 강의하고, 다른 대학들이 강의를 받는 형태다. 기초화학 강의도 김 교수가 전문대학 학생에 맞게 커리큘럼을 재구성한 것. 시스템이 갖춰졌으므로 다른 대학 교수도 강의 절반을 맡아 홀로그램으로 등장할 수 있다. 김우승 한양대 총장은 “‘왜 굳이 다른 대학과 강의를 공유하느냐’는 의문도 있지만 앞으로 대학이 생존하려면 고등교육 공동체 개념이 있어야 한다”며 “우리만 소유하겠다는 마음을 버리고 주요 대학도 공유에 참여하면 좋겠다”고 했다.
강의 공유가 활성화되면 대학들은 비용 부담을 크게 줄일 수 있다. 현재 대학들의 가장 큰 관심사인 인공지능 분야는 가르칠 교수가 국내에 많지 않은 게 문제다. 만약 강의를 공유하면 모든 대학이 높은 비용을 부담할 필요가 없다. 철학 강의는 A대 교수, 역사 강의는 B대 교수로 드림팀을 만들 수도 있다. 학생들은 어느 대학에 다니든 유명 강의를 들을 수 있다.
○ 빠른 온라인 학위로 짧아지는 지식 주기에 대비
‘4년제 일반대학 최초, 전 과목 전면 온라인 수업!’
대구가톨릭대가 내년에 신설하는 유스티노자유대학 홈페이지에 내세운 홍보 문구다. 이 단과대학에서는 학생이 모든 과목을 원격수업으로 듣고, 1년 3학기제로 학사 학위를 3년 만에 취득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원격수업이 확대되자 교육부는 지난해부터 전체 교과목 학점의 20%로 묶여 있던 원격수업 제한 규정을 폐지했다. 이에 대구가톨릭대는 학생이 일부 실습 과목을 제외한 모든 전공과 교양 과목을 원격수업으로만 들을 수 있는 단과대를 만들었다.
전면 원격수업이다 보니 학비는 오프라인 과정의 절반 수준이다. 미리 업로드돼 있는 강의를 듣기 때문에, 낮과 밤 또는 주말과 공휴일에도 수업을 들을 수 있다. 우동기 대구가톨릭대 총장은 “지식의 주기가 짧아지고 있는 만큼 고3 학생뿐 아니라 모든 시민이 입학해 자기 상황과 수요에 따라 자유롭게 수강할 수 있다”며 “기존 교수를 활용할 수 있고 시설 투자도 필요 없어 등록금을 낮출 수 있다”고 말했다.
강의실 없이 학생이 세계를 돌며 다양한 경험을 하고 온라인으로 실시간 강의를 듣는 ‘미네르바대학’이 2023년 한국에도 설립된다. 한샘 창업주 조창걸 명예회장이 세운 공익법인은 지난달 ‘태재대학 설립준비위원회’를 설치했다. 위원회 측은 미네르바대와 계약을 맺고 각종 프로그램과 노하우를 전수받는 중이다. 교육부에는 사이버대학으로 설립을 인가받고, 2023년 3월 개교를 목표로 내년 하반기(7∼12월)부터 신입생을 모집할 예정이다. 정원은 미네르바대처럼 200명 이내로 절반은 국내 학생, 절반은 해외 학생으로 채울 계획이다.
미네르바대처럼 국내에 캠퍼스는 없다. 학생들은 세계 여러 도시를 돌며 수업을 듣는다. 위원회 이사 구자문 전 선문대 총장은 “줌보다 상위 버전의 플랫폼을 만들어서 실시간으로 완전히 쌍방향적인 수업을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 현지 학위 취득으로 우수 외국인 학생 유치
과거 졸업장 장사 수준으로 마구잡이식으로 외국인 유학생을 받는 것에서 벗어나 고급 인재를 양성하는 대학도 늘고 있다. 포스텍(포항공과대)은 이집트 정부 요청에 따라 내년 2월부터 이집트 학생에게 온라인으로 ‘인공지능·데이터사이언스 전문 공학석사’ 과정(DEBI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학생들은 이집트에서 단 한 번도 오지 않고 온라인으로 수업을 듣고 포스텍 학위를 받는다.
이는 교육부가 지난해 원격수업 규제를 없애면서 일반 대학이 온라인으로 석사 학위 과정을 운영하는 것도 허용한 덕분이다. 학생들은 여름방학 없이 온라인으로 3학기 수업을 듣고 1년 만에 학위 과정을 마칠 수 있다.
동서대는 2011년 중국 우한시의 중남재경정법대와 한중 합작 대학인 ‘한중뉴미디어대학’을 설립했다. 이 합작 대학이 학령인구 감소라는 위기 속 효자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해당 대학 학생 300명 모두 1년간 동서대에 와서 수업을 듣는 게 졸업 요건이다. 동서대의 전체 외국인 유학생 수는 2018년부터 감소 중이지만, 한중뉴미디어대 학생 수는 계속 유지 중이다. 코로나19 우려로 입국하지 않는 학생들은 중국에서 실시간으로 수업을 듣는다. 장제국 동서대 총장은 “중남재경정법대는 중국 대입시험에서 1등급을 받은 학생만 입학한다”며 “설립 당시에는 국제화를 목적으로 만든 해외 캠퍼스였는데, 매년 꾸준히 우수한 학생이 들어오니 학령인구 감소 위기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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