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0년대 초반 흔치 않았던 고기, 공장식 축산 혁신이 육식 대중화
사육 과정서 항생제 남용 발생하고 대규모 분뇨 배출로 수질오염 초래
메테인 등 세계 온실가스 18% 배출
세계 기념일을 보면 10월은 음식과 관련한 기념일이 많습니다. 1일 채식주의자의 날, 4일 동물의 날, 16일 세계 식량의 날, 17일 빈곤 퇴치의 날 등입니다. 음식과 빈곤 퇴치는 깊은 연관이 있습니다. 푸짐한 식탁, 특히 육식을 마음껏 먹는 것은 빈곤의 반대인 풍요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1인 1닭’이 문화가 되어 버린 우리는 건강을 걱정할 정도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언제부터 육식을 풍요롭게 즐길 수 있게 되었을까요?
1954년 법으로 제정되어 미국의 대외 식량지원 전략이 된 ‘잉여농산물 원조법(P.L.480·The agricultural Trade Development and Assistance Act or Public Law 480)’을 살펴볼까요. 이 프로그램의 목적은 첫째, 인도 지원, 둘째, 개발 원조, 셋째, 미국 내 과잉생산 농산물 처리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955년부터 1981년까지 26년간 지속되었는데 1972년 이후로는 완전 유상으로 잉여농산물이 도입되었습니다. 당시 원조 기준은 1인당 국민소득이 500달러 이하인 국가에 해당되었는데 6·25전쟁으로 농업 기반이 파괴되어 굶주리던 국민을 살리는 데 큰 기여를 한 것은 사실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중 미국이 연합국의 식량을 제공하기 위해 농업을 장려하였고 전쟁이 끝나자 잉여농산물 처리가 골칫거리가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만들어진 ‘P.L.480’은 잉여농산물을 활용하여 미국의 해외 정책을 관철시키려는 의도로 만들어졌습니다. 인도적 지원도 있지만 사실상 식량으로 상대 국가를 우호국으로 만들려는 의도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당시 공산 세력과 휴전선으로 대치 중이었기 때문에 농산물 원조로 국방비를 더 많이 지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인도적 국가라는 이미지를 키우고 아시아에서 공산주의를 억제하는 효과를 얻게 됩니다. 하지만 값싼 농산물이 들어오면서 우리 농가들의 가격 경쟁력이 사라져 생산 기반이 무너지는 부작용도 있었습니다.
쌀을 주식을 삼던 우리나라가 밀을 소비하면서 쌀을 생산하던 농가 수입은 줄어들었습니다. 같은 시기 산업화가 진행되며 농촌 인구가 대도시로 유입되어 농촌은 붕괴되기 시작했습니다. 농민들은 돈이 되는 고추, 마늘, 양파 등을 재배하기 시작했고 소규모였던 가축 사육이 확장되었습니다. 그러나 급작스러운 이상기후, 감염병 확산 등으로 가격이 폭등하거나 폭락하는 사태들이 빈번하게 발생했습니다.
‘P.L.480’이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킨 것은 축산업입니다. 1960년대까지 우리나라의 농가는 음식 찌꺼기나 곡물 부산물로 가축을 키웠습니다. 그만큼 육류의 공급량이 적어서 달걀도 귀한 음식이었고, 고기를 먹는 것은 연례행사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옥수수를 이용한 배합사료 공장을 만들며 축산업이 확장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1인당 육류소비량은 급증했습니다. 1995년에 발효된 우루과이 라운드로 세계무역기구(WTO·World Trade Organization) 체제에 농업이 포함되어 소규모 축산농은 사라지고 공장식 축산만 남게 되었습니다. 축산업은 더욱 밀집사육이 강화되었고 정보기술(IT)의 접목으로 생산성이 향상되었습니다. 하지만 위생 문제로 항생제 등 약물 남용이 발생하였고, 대규모 분뇨 발생으로 인한 토양 및 수질 오염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더욱이 온실가스 메테인 발생, 사료 재배 과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등으로 축산업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 중 18%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인류가 지금과 같이 육류를 풍족하게 먹을 수 있게 된 것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풍요의 상징 국가 미국도 1930년대만 해도 곡물류 중심으로 식단이 구성되었으나 1960년대에 이르러서야 쇠고기가 미국 문화의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이런 변화는 거대자본이 중심이 되어 공장식 축산, 냉장 가공과 도매유통의 혁신으로 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자본이 주도하는 농업은 과학기술이 결합하여 질병을 통제하고 다양한 육종을 만들어냈고, 유통의 현대화로 지역에서 생산된 육류를 구매하는 소비에서 각종 첨가물로 자극적이고 유통기간이 늘어난 가공육류를 자동차를 타고 대형 마트에서 구매하는 형태로 변화하게 되었습니다.
인체에 대한 육식의 유·무해 논쟁은 진행 중입니다. 그러나 논쟁과 별개로 기후위기에 과도한 육식이 큰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육식은 영양학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 경제, 정치의 측면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분명한 것은 육식이 문화를 바꾸었고 문화의 변동으로 생태계의 위기가 가속화되었습니다. 육식과 채식에 대한 논쟁이 더욱 활발해져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문화를 후세에 물려주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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