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천구 가산동 신축건물 공사현장, 이산화탄소 소화설비 갑자기 작동
밀폐공간 산소농도 급격히 낮아져… 발전실 작업자 2명 사망-2명 중상
수동 스위치 눌러 가스 살포된 흔적, 가스 누출 멈추려다 실수했을 수도
경찰, 정밀감식… 고의성 여부 수사
서울의 한 건물 공사 현장에서 화재 진압용 가스가 누출돼 인부 2명이 숨지고 19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현장 감식 결과 누군가 이 가스 살포 장치를 조작했던 흔적이 발견돼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당시 이 건물에는 화재가 발생하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 구로소방서 등에 따르면 23일 오전 8시 52분경 서울 금천구 가산동의 한 신축 건물 공사 현장 지하 3층에서 발생한 가스 누출 사고로 현장팀장 김모 씨(45) 등 2명이 숨지고 2명이 중상을 입었다. 17명은 가벼운 부상을 입고 치료를 받았다. 소방 관계자는 “발전기실 화재 진압 목적으로 설치된 이산화탄소(CO₂) 소화설비가 작동하며 130병 분량(58kg)의 가스가 일제히 살포됐다. 산소 농도가 급격히 낮아지는 상황에서 사망자들이 미처 대피를 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고압으로 농축된 이산화탄소가 주성분인 이 화재 진압용 가스는 냉각 효과뿐 아니라 산소 밀도를 낮춰 연소를 방해하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이산화탄소는 색과 냄새가 없기 때문에 밀폐된 공간에서 살포될 경우 유출 여부를 알 수 없어 질식을 유발할 수 있다. 8월에도 충남 당진시 화력발전소에서 소화설비 교체 작업 중 이산화탄소가 유출돼 작업자 1명이 숨지는 사고가 있었다.
이번에 사고가 난 건물은 지하 5층, 지상 10층 규모로 최근까지 지하 5개 층에 대한 추가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사고 당일 52명이 전기·배관 작업 등을 하고 있었다. 사망자 2명을 포함한 10여 명은 지하 3층 발전기실에서 발전기 연통 보온재를 덮는 작업 등을 하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 금천경찰서는 24일 사고 현장 관리자를 불러 사고 경위를 조사하고 있다. 경찰은 누군가 고의 또는 실수로 소화설비를 작동시켰을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이 소화설비는 화재감지기가 불을 감지하거나 해당 층에 설치돼 있는 수동 스위치가 눌리면 작동하도록 설계돼 있다. 경찰은 “현장 점검 결과 화재가 난 정황을 발견하지 못했다”는 소방 측 설명과 수동 스위치가 조작된 흔적이 있는 점 등을 토대로 누군가 장비를 조작해 가스가 방출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사고 당일 현장에서 작업하고 있던 A 씨는 “데이터센터로 설계된 해당 건물 특성상 각 층마다 지문 또는 카드를 인식해야 통과할 수 있는 중간문이 여러 개 있기 때문에 아무나 드나들 수 없다”며 “소화약제(가스)가 저장돼 있는 장소 내부에도 제한된 인원만 입장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건물 내부 폐쇄회로(CC)TV 영상을 확보해 사건 당일 출입자 명단을 확인하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누군가 임의로 장치를 조작해 가스가 살포됐을 가능성을 포함해 조사하고 있다. 다만 가스 누출을 멈추게 하기 위해 설비를 조작하는 과정에서 수동 스위치를 잘못 눌렀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경찰은 이르면 25일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사망자 부검을 신청하고 소방, 국과수와 합동 감식을 벌여 정확한 사고 원인을 규명할 예정이다.
현장 관계자 등에 따르면 사망자 2명을 비롯한 현장 인부 대부분은 하청업체 소속이었다고 한다. 이번 사고로 숨진 김 씨의 동생은 24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형이 소속된 하청업체에서 빈소 마련 등을 도와줬을 뿐 원청사에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있다”며 “원청이 책임감 없이 나 몰라라 하니 이런 사고가 발생하는 것 아니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사고 현장을 찾은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은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하고 책임자를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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