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오후 경기 고양 킨텍스에서 열린 ‘청년드림 JOB콘서트‘를 찾은 청년 구직자들이 채용 게시판을 살펴보고 있다. 올해로 14회째를 맞는 이번 일자리 박람회에서는 분야별 현직 직업인과의 멘토링과 취업 컨설팅 등이 준비됐다. 2021.10.7/뉴스1
3년째 웹 디자이너 취업을 준비하는 A 씨(27)는 올 2월부터 디자인 취업 전문학원에 다니고 있다. 구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전문가의 도움을 받기로 한 것이다. 학원만으로 부족하다고 느껴 그룹과외 수업도 추가로 듣고 있다. 지금까지 그가 취업 학원과 과외에 쓴 돈은 120만 원 남짓. 학원비를 내려고 단기 아르바이트도 뛰고 있다. A 씨는 “대기업에 입사하려면 여전히 ‘스펙’이 압도적으로 좋아야 한다”며 “취업 학원 수강은 사실상 필수”라고 전했다.
취업난에 부담 커지는 구직자들
최근 청년 구직자들은 갈수록 더 많은 돈을 취업 준비에 사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26일 동아일보와 취업정보 사이트 진학사 캐치가 20, 30대 취업준비생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1년 이상 취업을 준비한 구직자 63%가 “지난해보다 올해 취업준비 비용이 늘었다”고 답했다.
청년 구직자가 한 달 동안 쓰는 취업준비 비용은 월 평균 35만 원. 생활비나 교통비를 제외하고 학원비, 교재비, 스터디룸 이용료 등에 지출하는 금액이다. 이중 한 달에 100만 원 이상 지출한다고 응답한 구직자도 43명이나 됐다. 가장 많은 금액을 지출하는 청년은 한 달에 225만 원을 쓴다고 답했다.
중소기업을 퇴사하고 개발자로 재취업을 준비하는 양모 씨(31)는 올해 3개월 과정의 실무형 코딩 학원(부트캠프)에 참여했다. 비용은 한 달에 200만 원씩 총 600만 원. 양 씨는 “취업을 다시 준비하려니 과거보다 훨씬 어려워졌다”며 “그나마 개발자가 취업에 유리할 것 같아 모아둔 돈을 털어 고액 부트캠프를 다니는 중”이라고 말했다.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김모 씨(25)도 최근 응시료 100만 원을 내고 금융자격증을 땄다.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인터넷 강의를 듣고 교재를 사느라 총 200만 원 가량 비용이 들었다. 김 씨는 “나는 자격증을 1개 땄지만, 요즘에는 자격증 2, 3개씩은 준비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취업시장 문은 더 바늘구멍이 되고 있다”며 “어떤 스펙을 더 쌓아야 하는지, 취업 준비 과정이 끝나기는 할지 막막하기만 하다”고 덧붙였다. 김 씨는 현재 두 번째 채용연계형 인턴을 하고 있다.
취업준비 비용을 스스로 해결하고 있는 청년들에게는 더 치열해지는 취업경쟁이 막막하다. 또 다른 취업준비생 배모 씨(26)는 “취업준비를 하며 학원에 다니느라 카페와 스터디룸에서 주 5일 아르바이트를 한다”며 “집에서 도움을 받는 사람들은 편하게 준비를 하는데, 나만 이렇게 힘들다는 생각에 박탈감이 들 때도 많다”고 털어놨다. 지난해 8월 대학을 졸업한 배 씨는 “취업난이 심하다보니 지원해봤자 떨어질 것 같다”는 이유로 아직까지 입사 서류를 넣어본 적이 없다. 청년구직자의 44.7%는 배 씨처럼 아르바이트를 통해 취업준비 비용을 마련한다고 답했다.
좁은 취업문에 더 치열해진 경쟁
청년 구직자들이 개인비용을 더 많이 들여가며 취업 준비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양질의 청년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실이 통계청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달 주 15시간 미만 일하는 20, 30대 ‘초단시간 근로자’가 35만2000명에 달했다. 9월만 놓고 보면 역대 가장 많다. 주 15시간 미만 일자리는 주휴수당조차 받을 수 없어 ‘질 나쁜 일자리’로 분류되는데도 청년들이 몰리는 것이다.
청년들이 원하는 대기업 채용은 여전히 얼어붙어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한국경제연구원이 지난달 매출액 기준 5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기업의 67.8%가 하반기(7~12월) 신규채용을 하지 않겠다고 답했다. 1년 전보다 최근 취업 준비에 더 많은 돈을 쓴다는 청년 중 58.6%가 “내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끼기 때문”에 취업 지출을 늘렸다고 답했다. ‘기업이 사람을 적게 뽑기 때문’(51.4%)이라는 응답도 적지 않았다.
공개채용 대신 수시채용이 확대되는 흐름도 최근 취업경쟁을 심화시키고 있다. 채용인원이 더 적은데다, 요구하는 스펙 역시 공채에 비해 높아서다. 1년 반째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이재영 씨(25)는 “문과직렬을 뽑으면서 정보기술(IT) 관련 자격증을 요구하는 기업도 많다”며 “취업준비생들은 비싼 돈을 들여서라도 자격증을 따고, 스펙 경쟁이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취업준비를 하며 총 9번의 면접에서 모두 떨어졌다는 이 씨는 올 8월에 정보기술(IT) 자격증을 2개 취득했다. 그는 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한 IT 비전공자로, 마케팅 직무 취업을 준비하고 있다.
개발자로 취업을 준비하고 있는 취업준비생 정모 씨(25) 역시 “수시채용 이후 취업 준비가 더 힘들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채를 통해 취업한 친구들은 2, 3개의 프로젝트로도 충분히 취업이 됐는데, 수시채용에서는 4, 5개씩 프로젝트를 분위기”라며 “아무리 포트폴리오를 쌓아도 취업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정 씨는 “이렇게 스펙을 쌓는 데 돈이 많이 들다보니 취준생 사이 양극화가 벌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아예 구직을 단념하는 청년도 늘고 있다. 지난달 20, 30대 구직단념자는 30만5000명에 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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