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속으로]400년 전후 부장품 30여점 발굴
지배자 집단의 고분서 접시 출토
부산 가야사 유적의 경계지점 확장
“긴급 예산 투입해 발굴조사해야”
27일 오전 부산 기장군 철마면 고촌휴먼시아 아파트 입구. 산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자 고촌리 고분군 발굴 현장이 나왔다. 해발 100m 지점의 약 150m² 부지에서 모습을 드러낸 고분군은 목곽묘(덧널무덤) 6기, 석곽묘 1기, 옹관묘(유아묘) 2기 등 총 9기다.
박정욱 부산시립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이곳 고촌리 고분군은 당시 지배층의 공동묘지로 보인다”며 “바로 아래 고촌신도시 일원에서는 금관가야 주민의 삶터임을 증명하는 생활유적이 2005년까지 다수 나왔다”고 말했다. 9기의 묘에서 외절구연고배(外切口緣高杯·그릇의 입구가 바깥으로 꺾인 굽다리 접시) 등 토기 20여 점과 곡옥(曲玉·굽은 옥) 1점, 칠기류 7점 등 30여 점의 부장품이 나왔다. 모두 5세기 초인 서기 400년 전후의 유물인 것으로 조사팀은 보고 있다.
이곳에서 출토된 유물의 눈에 띄는 특징은 외절구연고배가 10여 점 나왔다는 점. 금관가야 지배자 집단의 고분에서 나오는 이 접시는 이 시기 다른 문화권에서는 거의 발견되지 않아 학계에서는 금관가야의 권역을 설정하는 중요한 지표로 삼는다. 이 접시는 철기문화를 꽃피운 금관가야의 수도 경남 김해의 대성동 고분군에서 다수 나왔고 낙동강 건너 부산에서는 강서구 미음동과 북구 화명동 고분군 등에서 출토됐다.
지금까지 부산에서 5세기 초 외절구연고배 등 금관가야의 유적이 발견된 마지노선은 동래구 복천동 고분군까지였다. 복천동에서 신라 수도였던 경주 쪽으로 직선거리 9km 떨어진 고촌리에서 금관가야를 대표하는 유적들이 이번에 새로 발굴된 것이다. 이는 낙동강 유역에 집중됐던 5세기 초 금관가야의 세력권이 부산의 가장 동쪽인 기장군까지 미치고 있었다는 것이 입증된 것으로 학계가 이번 발굴 조사의 의미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다.
이현주 부산시립박물관 문화재조사실장은 “고촌리 고분군에서 지근거리인 만화리 고개를 넘어 다다르는 기장읍에서는 이단투창고배(二段透窓高杯)가 출토됐다. 이는 외절구연고배보다 조금 더 직선적인 형태의 접시로 학계는 신라시대 유물로 간주한다. 부산의 가야사 유적 경계 지점이 기장군까지 확장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평가했다.
김두철 부산대박물관장(고고학과 교수)은 “금관가야는 낙동강을 놓고 김해 대성동 세력권과 부산 복천동 세력권 등으로 나뉘었다. 출토 유적 등을 미뤄 볼 때 부산지역의 최상위 지배층은 복천동에 있었으며 고촌리에는 그보다 낮은 지배층이 거주했을 것”이라며 “고촌리 고분군이 복천동의 위성고분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고촌리 고분군이 처음 세상에 드러난 것은 1960년대다. 동래고 향토반 학생들이 주변 유물 채집 중 발견했다. 그간 육안으로 흔적을 찾는 지표조사는 수차례 이뤄졌으나 땅을 파 적극적으로 발굴에 나서는 시굴조사는 국정과제인 ‘가야문화권 조사연구사업’의 하나로 올해 7월부터 시작됐다. 허탁 부산문화지킴이 대표는 “이 일대에 얼마나 더 많은 가야사 유물이 있을지 모르는데 늑장 조사가 이뤄져 많은 유물이 도굴당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정부와 부산시 등이 긴급하게 예산을 투입해 적극적으로 주변 발굴 조사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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