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나눔]서울시50플러스재단서 운영하는 ‘행복한 학교 밖 선생님’ 프로그램
교직 생활 후 은퇴한 중장년층… 결식 우려 아동들과 비대면 만남
주 1, 2회 수업하며 고민 상담도… 아이들-선생님 모두 “만족해요”
“오늘 학교에선 어땠어? 숙제 너무 잘했어, 우리 수학 천재.”
26일 오후 4시 30분 서울 마포구 서울시50플러스재단 방송실. 서울에 사는 최보철 씨(57·여)와 충남 당진에 사는 김지현(가명·13) 양이 모니터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다.
이날 수업은 ‘소수 나누기’. 두 사람은 최 씨가 화면에 띄운 문제집 화면을 같이 보며 문제를 풀었다. 최 씨가 예제를 설명하면 김 양은 실전문제를 풀었다. 최 씨는 “우리 지현이가 너무 잘한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최 씨와 김 양은 지난달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약 2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만나 수학 수업을 진행한다. 서울시50플러스재단에서 진행하는 ‘행복한 학교 밖 선생님’ 사업을 통해 인연을 맺었다. 최 씨는 고교 수학교사로 30년간 근무하다 5년 전 퇴직했다. 최 씨는 “아이가 수업을 할 때마다 조금씩 마음을 여는 게 보여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퇴직 교사와 함께하는 ‘방과 후 수업’
행복한 학교 밖 선생님은 직장에서 은퇴한 만 50∼64세 중장년층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학습 결손이 생긴 결식 우려 가정 학생들에게 학습 및 정서 지원을 해 주는 프로그램이다. 9월부터 경기 화성, 충남 당진, 전남 구례 등에서 ‘행복두끼 프로젝트’를 통해 도시락을 지원받는 학생들이 서울에 있는 선생님과 비대면으로 만나고 있다. 행복두끼 프로젝트는 지방자치단체와 행복얼라이언스 멤버 기업, 지역 내 사회적 기업이 사각지대 결식 우려 아동에게 도시락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프로그램은 학습 지원과 정서 지원으로 나뉜다. 학생들은 학습 지원을 통해 국어, 영어, 수학 중 한 과목을 매주 1∼2차례, 1회당 최대 2시간 수업을 받는다. 수업은 원격으로 진행된다. 단순히 교과 내용만 배우는 게 아니라 공부 방법과 습관, 재미를 얻는 게 목표다. 현재 11∼17세 학생 19명이 지원받고 있다.
학습 지원 봉사자들은 초중고교, 대학, 특수학교 등 교직에서 만 10년 이상 재직 경험이 있는 전직 교사들이다. 초등 6학년을 가르치는 이연희 씨(60·여)는 13년간 대학에서 교편을 잡다 이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이 씨는 “가르치는 일은 내 평생의 업”이라며 “가르칠 수만 있다면 어디든 가고 싶다는 마음에 참여했다”고 말했다.
정서 지원 프로그램은 문화해설가, 작가, 다문화 교육자 등 문화예술 분야에서 활동하는 중장년층이 교사로 참여한다. ‘나만의 그림책 만들기’, ‘랜선 한양여행 떠나기’ 등의 수업이 열렸거나 앞으로 열릴 예정이다.
○“스스로 공부하는 법 배워요”
행복한 학교 밖 선생님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과 교사 모두 일상이 바뀌었다고 입을 모은다. 아이들은 일주일에 1, 2회 ‘서울 선생님’을 만나는 시간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서울 선생님과 함께하면서 아이들은 스스로 공부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경기 화성에 사는 이태현(가명·13) 군은 성원식 씨(65)와 처음 수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성 씨의 질문에 답변조차 하지 않았다. 지금은 이 군이 먼저 “올림픽은 몇 년마다 열리느냐, 오대양 육대주는 어디냐” 등을 묻는다. 성 씨는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지 않고 어떻게 지식을 찾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려 한다”며 “아이가 스스로 책과 인터넷을 찾아보면서 공부하는 힘을 길렀다”고 말했다.
성 씨의 일상에도 활력이 더해졌다. 35년간 고교 국어교사로 근무한 성 씨는 “아이가 나보다 축구 관련 영어를 훨씬 잘한다”며 “아이를 위해 함께 영어를 배운다”고 말했다. 시중 문제집을 사서 보내주는 것을 넘어서, 아이를 위한 맞춤형 교재를 만드는 교사도 있다.
김가현 서울시50플러스재단 매니저는 “부모 맞벌이 등으로 가정에서 어른과 이야기할 기회가 부족한 아이들이 많다”며 “이달 시행한 중간평가에서 아이들이 행복한 선생님과 수업하면서 정서적 지지를 받아 만족한다고 답했다”고 전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직접 얼굴을 마주 보고 수업하지 못하는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교사들과 아이들은 코로나19 이후를 약속했다. 성 씨는 “아이가 서울에 올라오면 함께 밥도 먹고 축구도 하기로 했다. 나와의 수업을 통해 꿈이 생겼다고 말해 준다면 이 수업의 목표를 이룬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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