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밖에 ‘남친’ 있는데 성관계? 성폭행?…‘16시간 진실공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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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21년 10월 28일 07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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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어진 연인을 협박하고 성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20대 남성이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협박 혐의는 유죄로 판단됐지만, 강간 혐의에는 무죄가 선고돼 실형을 피했다.

서울남부지법 형사합의13부(부장판사 이상주)는 강간 등 혐의로 기소된 A씨(23)에게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고 28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9년 1월 전 연인 B씨(여)에게 욕설과 함께 “지금 집으로 오지 않으면 너희 엄마에게 모든 걸 말하겠다” 등 협박한 혐의로 기소됐다.

약 2시간 뒤 자신의 연락을 받고 서울 영등포구 소재 주거지로 온 B씨에게 나체 사진, 성관계 동영상을 보여주면서 “시키는 대로 하면 지워주겠다” 등의 말과 함께 B씨를 강간한 혐의도 있다.

A씨는 “억울하다”며 국민참여재판을 원한다는 의사를 밝혔고, 재판부가 이를 받아들이면서 이번 사건은 배심원들의 판단도 함께 받게 됐다.

A씨 측은 ‘B씨를 집으로 오게 한 과정에서의 협박’ 혐의는 인정했지만, 강간 혐의는 완강히 부인했다.

사건 당일 성관계가 있었지만 사진과 영상을 보여주면서 협박을 한 적이 없고, 위협이 되는 말을 했다 하더라도 ‘강간죄에서의 협박’에 이를 정도는 아니라고 주장했다.

반면 B씨는 고소장에서 “A씨가 협박과 함께 성관계를 요구했고, 저는 부모님에게 나체 사진이 보내질까 봐 무서워 울기만 했다”며 “A씨를 꼭 처벌해달라”는 의견을 밝혔다.

결국 국민참여재판에서는 ‘성관계 강제성 여부’를 두고 검찰과 A씨 측이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검찰은 배심원들에게 “피해자가 범행 현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정황만으로 폭행·협박이 없었다고 단정하지 말라는 판례가 있다. 상황에 따라 저항하는 모습은 다양하게 나타날 수 있다”며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고려하라는 취지의 ‘성인지 감수성’ 판례도 있다”고 당부했다.

반면 A씨는 피고인신문에서 “성관계 영상이나 나체 사진은 피해자의 동의를 받고 찍은 것이고, 재결합할 수 있단 생각에 지우지 않고 있었다”며 “피해자에게 사진을 유포하겠다고 협박을 한 사실도 없다”고 주장했다.

또 “B씨를 만난 뒤 집 문제로 30분간 언쟁을 벌이다가 자연스럽게 분위기를 타서 성관계로 이어졌다”며 “사귈 때도 크게 싸웠어도 1시간 만에 화해하고 장난쳤었다”고 말했다.

특히 양측은 진술의 신빙성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B씨가 증인신문 과정에서 일부 증언을 바꾼 것, 사건 당일 있었던 일을 A씨가 비교적 더 상세히 기억하는 것에 대해 양측은 다르게 해석했다.

검찰은 “이 사건은 2019년 1월에 발생했고 A씨가 범죄를 저질렀는지 판단하는 것은 3년이 지난 시점”이라며 “그때는 기억했는데 지금은 기억하지 못한다고 탓할 수는 없다”고 강조했다.

또 “오래돼서 기억이 나지 않는 것일 뿐이고, 오히려 A씨 처벌이 목적이었다면 더 과장해서 거짓된 진술을 했을 것”이라며 “피해자 진술이 일관되고, 피해자가 A씨를 무고할 이유가 없는 점 등을 고려해달라”고 밝혔다.

이에 변호인은 “검사의 주장은 피해자의 진술은 믿어야 하고, 피고인 진술은 믿을 수 없다는 게 전부”라며 “A씨 진술은 구체적인데, 지엽적이고 부차적이고 사소한 것이 진실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했다.

사건 당시 집 앞에 B씨의 남자친구가 있었던 점과 관련해서도 양측은 충돌했다. B씨는 남자친구를 대문 앞에 세워두고 A씨가 있는 집으로 들어간 것으로 조사됐다. A씨는 B씨가 남자친구를 데려온 사실을 몰랐다고 한다.

변호인은 “강간의 수단으로서 협박을 받았다면 문밖의 남친에게 알려 상황을 해소할 수 있었다”며 “언제든지 문을 열고 나가 도움을 요청하거나 신고를 할 수 있었을 텐데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은 게 과연 합리적이냐”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밖에서 남자친구가 기다리고 있는데 성관계를 했다는 건 매우 이례적이고 상식적이지 않다”며 강간죄를 주장했다. 또 “성관계 사진을 유포한다는 말 한마디가 주먹으로 때리는 것보다 더 큰 공포가 될 수 있다. B씨가 밖으로 나가 남자친구를 불렀다면 A씨가 사진 전송 버튼을 누르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었냐”고 반문했다.

이어 “반성의 기미가 없고 피해자의 명예를 반복적으로 훼손하고 있다”며 A씨에 대해 징역 4년을 구형했다. A씨는 최후진술에서 “제발 도와달라”며 흐느꼈다.

오전 9시30분부터 다음날 새벽 1시 넘어서까지, 16시간에 가깝게 진행된 재판의 결론은 집행유예였다.

협박 혐의는 배심원 7명 중 5명이 유죄로 판단했고 2명이 무죄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A씨가 공소사실 인정하고 있고, 증거에 의하면 유죄로 인정된다”며 징역 6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40시간의 사회봉사도 명령했다.

쟁점이 됐던 강간 혐의에 대해서는 배심원 2명이 유죄 의견을 냈고, 5명이 무죄 의견을 냈다.

재판부는 “일관된 진술을 하지 못한 의문점 등 여러 정황을 살펴보면 피해자의 진술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며 “검사가 제출한 증거로는 공소사실이 합리적 의심을 할 여지가 없을 정도로 증명됐다고 보기 어렵다”고 강간 혐의를 무죄로 판단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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