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변 사람들에게 자신과의 연인 관계를 알렸다는 이유로 여자친구를 폭행해 결국 숨지게 한 혐의를 받는 30대 남성이 첫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재판을 지켜보기 위해 법정을 찾은 피해여성의 유족들은 오열하며 엄벌을 호소했고, 30대 남성 역시 눈물을 보였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2부(부장판사 안동범)는 4일 상해치사 혐의로 기소된 A씨의 1차 공판기일을 진행했다.
이날 방청석은 재판 시작 약 30분 전부터 피해여성의 유족 등으로 꽉 찼다.
구속 상태인 A씨가 수감복을 입은 채 법정에 들어서자 방청석 곳곳에서 울음이 터져 나왔다. A씨 역시 기본 신상정보를 묻는 재판부의 질문에 대답하며 울먹였는데, 방청석에서는 욕설이 쏟아졌다.
일부 방청객들은 “안 들린다. 크게 말해라”, “울어? 뭘 잘했다고 우느냐”라고 A씨를 향해 소리쳤고, 방호원들은 “조용히 하라”며 이들을 막았다.
재판부는 일부 방청객을 일으켜 세워 “심정은 알겠는데 재판 진행에 방해가 되니 조용히 해달라”고 다독인 뒤 재판을 진행했다.
검찰은 정신을 잃고 쓰러진 피해여성 B씨를 수차례 폭행한 혐의를 받는 A씨의 구체적인 혐의들을 나열했다.
검찰은 “A씨는 지난 7월24일 자신과 연인 관계인 피해자 B씨의 주거지에서 말다툼 도중 B씨를 침대 위로 밀어 넘어뜨렸다”며 “이후 B씨가 자리를 뜨려는 A씨를 쫓아가 머리채를 잡자 화가 난 A씨는 B씨를 벽으로 세게 밀어 몸과 머리에 강한 충격을 받게 했다”고 전했다.
이어 “B씨의 복부와 어깨 등을 10여차례 밀면서 머리 등이 유리벽에 수차례 부딪히게 했다”며 “A씨는 B씨가 정신을 잃고 쓰러졌음에도 몸 위에 올라 타 위에서 아래로 누르는 방식 등으로 폭행했다”고 덧붙였다.
검찰은 “A씨는 쓰러진 B씨를 내버려두고 자신의 차 열쇠를 찾아 차량으로 향하던 중 B씨가 다시 쫓아와 머리를 때리자 격분해 주먹으로 B씨를 폭행했다”며 “이후 주민이 나타나자 B씨를 다시 오피스텔 1층으로 데려갔고, B씨가 자신을 때릴 것처럼 행동하자 다시 벽으로 강하게 밀어낸 뒤 의식을 잃은 상태로 방치했다”고 밝혔다.
검찰이 공소요지를 밝힌 뒤 재판부는 “의견서를 보면 A씨 측에서 피해자 유족에게 사죄 의사가 있는 걸로 돼있다”며 입장을 물었다.
이에 A씨 변호인은 “피해자 유족들한테는 구체적으로 연락 등 접근이 어려워서 못 하고 있다”며 “피해자 측 변호인을 통해서라도 사죄 의사를 전하려고 시도 중이다. 얼마든지 100번이라도 사죄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방청석에서는 “사람 죽여놓고 저게 지금 할 소리냐”, “나도 그럼 똑같이 죽이고 사과하겠다” 등의 지적이 터져나왔다.
A씨 측 변호인은 재판 이후 기자들과 만나 “모든 혐의들을 인정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유족과의 합의는 어떻게 진행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변호인은 “계속 시도 중인데 유족 측에서 연락을 안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A씨의 다음 재판은 오는 18일 오후 열릴 예정이다.
A씨는 지난 7월25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오피스텔에서 자신의 여자친구 B씨와 말다툼을 하던 중 B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는다.
사건 범행 직후 A씨가 119에 “B씨가 술을 많이 마시고 취해서 넘어지다가 다쳤다”라는 취지의 거짓 신고를 해 현장에 출동한 구급대원들은 혼란을 겪은 것으로 전해졌다. 병원으로 이송된 B씨는 약 3주 동안 혼수상태로 지내다가 결국 사망했다.
수사에 착수한 경찰은 지난 7월 말 A씨에게 상해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법원은 ‘도주 우려가 없다’ 등의 이유로 기각했다. 이후 추가 조사를 진행한 경찰은 지난 9월 상해치사 혐의로 다시 A씨의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법원은 영장을 발부했다.
한편 이 사건은 B씨의 모친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A씨의 엄벌을 호소하는 청원글 등을 올리면서 국민적 관심을 끌었다.
모친은 “A씨는 운동을 즐겨하고 응급구조사 자격증이 있는 건장한 30살 청년인 반면 딸은 왜소한 체격”이라며 “A씨는 고의가 아니었다고 주장하지만 과연 자신의 힘이 연약한 여자를 해칠 수 있었다는 것을 몰랐겠느냐”고 호소했다.
모친 등 유족은 A씨가 살인죄라고 주장했지만 사건을 수사한 서울 마포경찰서는 ‘살인의 고의성’ 여부를 확정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살인 대신 상해치사 혐의를 적용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