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안맞으니 ‘겁쟁이’ 놀리고… 매일 가던 헬스장도 못 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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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백신패스 시대, 접종 미완료자들의 고민
가족 부작용에 공포감 커 거부
운동도, 지인 모임도 포기… 안전성에 대한 믿음 높여야

18일 서울 중구의 한 피트니스센터에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나 48시간 이내 PCR 음성확인서
 소지자만 출입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위쪽 사진). 서울의 한 영화관에는 이 같은 요건을 갖춘 관람객에 한해 백신 
패스 전용 상영관에서 관람 중 음식물 취식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뉴스1
18일 서울 중구의 한 피트니스센터에 “코로나19 백신 접종 완료자나 48시간 이내 PCR 음성확인서 소지자만 출입할 수 있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위쪽 사진). 서울의 한 영화관에는 이 같은 요건을 갖춘 관람객에 한해 백신 패스 전용 상영관에서 관람 중 음식물 취식이 가능하다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뉴스1
《소수가 된 백신 미접종자들의 고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80%를 넘었다. 이젠 소수가 된 백신 미접종자들은 일상에서 크고 작은 불이익을 실감하고 있다. ‘위드 코로나’ 3주 차를 맞은 미접종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이 80%를 넘었다.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따르면 18일 0시 기준 코로나19 백신을 한 차례도 맞지 않은 국민은 923만8464명(18.0%)이다. 접종이 본격화되지 않은 소아·청소년을 제외하고 18세 이상 성인 미접종자만 추리면 305만4567명. 18세 이상 인구의 6.9%에 해당한다.

접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지 않은 17세 이하를 제외한 20∼70대의 접종률은 80% 후반에서 90% 중반에 이르고 있다. 이제 ‘백신 접종 미완료자’는 소수자가 됐다.

접종 미완료자들에게 단계적 일상 회복(위드 코로나)은 기쁘기만 한 소식이 아니다. 방역패스가 도입된 시설에 출입하기가 까다로워졌고, 정부의 방역정책에 동참하지 않는다는 따가운 시선도 받고 있다.

○ 미접종 남매의 속앓이 “천식 가족력 때문에”


“주변에서 ‘음모론 믿는 것 아니냐’ ‘겁쟁이’라면서 엄청 놀려요. 구구절절 말하기가 그래서 웃고 넘어가기는 하는데….”

서울에 사는 직장인 안모 씨(29)는 현재 집에서 자가 격리 중이다. 지난주 같은 부서 직원이 코로나19에 확진됐는데, 안 씨가 밀접접촉자로 분류됐다. 다른 직원들은 백신 접종을 완료했고 증상이 없어 자가 격리 대상자로 분류되지 않았지만, 미접종자인 안 씨는 꼼짝없이 자가 격리를 하게 됐다.

안 씨가 처음부터 백신을 맞지 않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주변에서 코로나19 백신 접종 뒤 크고 작은 후유증을 겪었다는 경험담을 접한 뒤 접종을 포기했다. 친구가 접종 후 가슴 통증으로 고생을 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만 해도 백신을 맞을 생각이었는데 가족의 지인이 백신 접종 며칠 뒤 사망했다는 소식에 덜컥 겁이 났다. 안 씨는 “심각한 접종 부작용 사례들을 접한 뒤로는 오기로 접종을 거부하게 된 것 같다”며 “주변에는 장난처럼 말하지만 사실 접종이 두려운 마음이 크다”고 했다.

안 씨가 느끼는 부작용 공포에는 나름의 근거가 있다. 한 살 터울의 친오빠가 오랜 기간 천식을 앓아왔기 때문. ‘나도 오빠와 비슷한 체질이면 어쩌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다. 오빠 안모 씨(30)도 역시 미접종자다.

오빠 안 씨는 접종을 하려고 병원을 찾은 적도 있다. 그러나 오래 앓았던 천식이 발목을 잡았다. 접종 전 상담을 하던 의사는 “접종 후 알레르기 반응이 있을 수 있으니 고민해 보라”고 했다. 결국 접종을 포기했다. 그는 “부작용이 없는 것도 아닌 데다 지병도 있으니 위험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접종을 해야겠다는 용기가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 그들이 접종을 하지 않는 이유


안 씨 남매와 같은 또래인 2030세대는 백신 접종 의향이 가장 낮은 인구 집단이다. 한국리서치는 지난달 29일부터 이달 1일까지 18세 이상 국민 1000명을 대상으로 코로나19 백신 접종 의향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응답 대상 중 94%가 ‘백신 접종을 받았거나 받겠다’고 답했다. 이들 중 20대(92%·18, 19세 포함)와 30대(88%)는 평균보다 낮은 비율을 보였다. 30대는 소아와 청소년을 제외하면 미접종률이 10%로 가장 높은 세대이기도 하다.

동아일보가 만난 2030세대 접종 미완료자들은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이유로 부작용에 대한 두려움을 꼽았다. 과거 다른 백신을 접종했을 때 알레르기 반응으로 고생을 했거나, 가족 또는 주변 지인이 부작용을 겪는 것을 지켜봐 걱정된다는 것이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 씨(23)는 함께 사는 어머니가 부작용으로 고생하는 모습을 보고 접종을 포기했다. 이 씨의 어머니는 9월 모더나 백신을 접종한 뒤 시력 저하와 심부전증을 호소하고 있다.

한국리서치 조사에서도 응답자들은 접종을 망설이는 이유로 ‘예방접종 이상반응에 대한 우려’(75%)를 가장 많이 꼽았다.

노년층은 접종 후 이상반응이 생길 경우 위중증으로 악화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갖고 있다. 1차 접종을 마친 주부 한모 씨(60)는 다음 주로 다가온 2차 접종을 포기할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다. 한 씨는 수년 전 항생제 주사를 맞은 뒤 눈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했다. 두드러기가 나서 몇 주간 고생하기도 했다. 그 뒤로 백신이나 항생제 주사에 큰 공포가 생겼다고 했다.

“백신을 아직 안 맞았다고 했더니 주변에서 ‘앞으로 약속에 불러주지 않겠다’며 으름장을 놓는 거예요. 울며 겨자 먹기로 접종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며칠 동안 무기력감과 어지럼증으로 고생을 했어요. 한 번은 다리에 힘이 풀려 계단에서 구를 뻔했다니까요.”

한 씨를 지켜본 자녀들도 2차 접종을 만류했다. 1차 접종 때 상담을 했던 의사도 “1차 접종 뒤 많이 불편하면 2차 접종을 하지 않는 게 낫다”고 했다. 한 씨는 현재로선 2차 접종을 하지 않을 예정이다. 다만 친구들이 약속에 불러주지 않을까 하는 걱정은 여전하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요양병원에 입원한 80세 이상 환자 중에는 자녀 등 가족들의 반대로 접종을 하지 못하는 이들이 태반”이라고 했다. 성인 가운데 미접종 비율이 가장 높은 연령은 대규모 접종을 시작한 80세 이상(15.8%)이다.

○ 헬스장도 회식도 포기… 미접종의 대가


“접종자가 딱 1명이 모자라서 전체 회식을 못했어요. 그런데 그 접종 미완료자 중 한 명이 저였거든요. 제가 회사 대표인데, 아쉽고 민망했죠.”

서울 성동구에서 직원 10여 명과 함께 일하는 청년 사업가 김모 씨(26)는 최근 자신 때문에 회식이 취소돼 직원들에게 민망했다고 한다. 수도권 최대 10명, 비수도권 12명까지 사적 모임이 허용되지만 식당이나 카페에서는 접종 미완료자가 최대 4명까지만 모일 수 있다. 김 씨는 사업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해 잠도 못자고 일하는 날이 많은 데다 매일 직원들을 관리해야 해 아직 백신을 맞지 못했다. 김 씨는 “혹시라도 접종 후 이틀을 앓으면 사업이 제대로 굴러가지 않을 것 같은 두려움이 있다. 시간을 비우기가 쉽지가 않았다”고 했다.

김 씨 같은 접종 포기자는 일상에서 크고 작은 불이익을 받는다. 식사 약속에 불려가지 못하거나, 헬스장 등 다중이용시설을 사용하는 데 제약을 겪고 있다고 했다.

서울 용산구에 거주하는 직장인 김호균 씨(28)는 퇴근 후 매일 찾던 헬스장의 이용권을 며칠 전 환불했다. 김 씨는 부작용 예방 등에 대한 정부 대처가 미흡하다고 보고 접종을 거부했다. 김 씨는 “48시간 내 음성 확인서가 있으면 헬스장 이용이 가능하다고 하는데, 직장도 있는데 이틀마다 검사 받으러 갈 수는 없지 않냐”고 말했다. 중구에서 헬스장을 운영하는 이유나 씨(25)는 “전체 회원 중 약 10%가 회원권 중단을 하거나 환불을 했다”고 했다.

직장인 권모 씨(40)는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는데 그 친구가 접종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 젓가락이 섞일 수밖에 없는 고깃집에 갔는데, 솔직히 그 친구가 손댄 반찬에는 손이 안 가더라”고 했다. 백신 미접종자였던 대학원생 고모 씨(26)는 밖에서 만난 친구들에게서 ‘교양 없고 무식하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아 결국 1차 접종을 받았다.

○ “안전성 정확히 알려 접종 유도해야”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는 것은 코로나19 대유행 때만 일어난 현상은 아니다. 백신이 발명된 때부터 백신 거부감도 함께 생겨났다. 백신은 1700년대 말 제너가 ‘우두법’이라는 이름으로 천연두 예방법을 보급하면서 시작됐다. 당시 “소의 균을 이용하는 것은 비위생적”이라는 반발이 일었다. 1870년대 영국에서는 천연두 백신 의무화에 맞서 강제 백신 접종에 반대하는 운동이 일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도 백신 접종 뒤 부작용을 겪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마다 백신 접종을 겁내거나 거부하는 사람들이 나타나곤 했다. 21년 전 국내에서 홍역 풍진 볼거리백신(MMR) 접종 관련 사고가 이어지자 동아일보는 백신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이렇게 보도하기도 했다. 현재 코로나19 백신 접종을 거부하는 이들의 생각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 원인이 백신 접종에 의한 것인지 다른 원인 때문인지 분명치 않지만 하나같이 접종 직후에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해 부모들이 공포감을 느끼는 분위기다. (중략) 의사들은 원인 조사를 해보면 백신 사고가 아닌 것으로 판명되는 경우가 많다고 주장한다.’

백신을 거부하는 사람들은 음모론을 믿거나, 반정부적인 정치 성향을 갖고 있을 것이라는 추측도 편견일 가능성이 높다. 최근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전국의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국민들의 백신 접종 의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인식’이었다. 백신의 안전성이 높다고 느낄수록 백신 접종 의향이 높았다는 것이다. 반면 정치 성향과 백신 접종 의향에는 유의미한 상관관계가 나타나지 않았다.

유 교수는 “연구 결과를 보면 백신 인센티브 등을 통해 백신을 맞게 유도하는 것보다는 백신 자체의 안전성을 입증하고 국민들에게 홍보하는 것이 접종률 제고에 효율적일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1970년대 초 백일해 백신을 둘러싸고 영국에서 시작된 논란은 백신의 안전성에 대한 불확실성이 접종 의욕을 얼마나 떨어뜨리는지 잘 보여준다. 당시 영국의학저널에 “백일해 백신이 뇌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는 의혹이 담긴 논문이 게재된 뒤 영국의 백일해 백신 예방 접종 비율은 기존 70∼80% 수준에서 40%대로 추락했다. 이 비율은 1992년이 돼서야 91%로 높아졌다.

코로나19 백신도 도입 초기 수많은 가짜뉴스에 시달려야 했다. 미국에서는 백신 관련 가짜뉴스를 접한 한 약사가 백신 500명분을 무단으로 폐기하는 일도 있었다. 이 인물은 올 1월 500명 이상에게 투여 가능한 모더나 백신 57병을 오염시킨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약사는 경찰에 “백신이 인간의 유전자(DNA)에 돌연변이를 일으켜 사람들을 해칠 것이라고 보고 의도적으로 오염시켰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백신에 대한 과도한 공포를 가질 필요는 없고, 부득이하게 접종을 하지 않을 경우 방역 지침 준수에 더욱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당부했다. 위드 코로나 이후 확진자가 늘고 있는 데다 돌파감염도 잦아 집단감염 개념이 무색해졌기 때문이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독감 백신을 맞고 이상이 없었다면 아나필락시스 우려는 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정말 백신을 맞기 어렵다고 판단될 경우에는 모임 횟수와 다중이용시설 이용을 줄이는 편이 좋다”고 말했다.

#백신#백신패스 시대#접종 미완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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