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갈될 국민연금, 손절이 답” vs “그래도 존버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1월 25일 03시 00분


극과극이 만나다-시즌2〈2〉MZ세대 국민연금
스타트업 창업한 95년생 선강민씨 vs 대출 짊어진 87년생 신입 변호사 이용익씨
“국민연금 더 내라 하면 갈취” vs “흙수저에겐 안전망”
MZ세대, “정치권, 연금 고갈 알고도 방치…청년만 손해”

스타트업 대표 선강민 씨(왼쪽)와 신입 변호사 이용익 씨가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청년은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두고 엇갈린 시각을 보였지만 ‘왜 정치권은 국민연금이 고갈될 때까지 문제를 방치했느냐’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스타트업 대표 선강민 씨(왼쪽)와 신입 변호사 이용익 씨가 21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두 청년은 국민연금 개혁 방안을 두고 엇갈린 시각을 보였지만 ‘왜 정치권은 국민연금이 고갈될 때까지 문제를 방치했느냐’는 문제의식에는 공감했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선강민(26): 월급쟁이로는 내 집 마련이 불가능해 대기업의 스카우트 제의도 마다하고 창업에 뛰어든 스타트업 대표. 본인 몫을 포함해 매달 직원 5명의 국민연금 보험료 80여만 원 납부. 사업 적자에 사비까지 털어 직원 보험료 메운 날도 부지기수. “국민연금은 폭락이 예상되는 투자처”라고 생각.

#이용익(34): 올 4월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늦깎이 변호사. 못 갚은 학자금 대출이 아직 수천만 원. 통장 잔액은 마이너스. 8년 전 아버지 사업이 부도난 뒤 삼남매가 부모 부양을 분담. 월급에서 대출 원금과 이자, 부모 용돈을 빼면 ‘텅장(텅텅 빈 통장).’ “믿을 만한 노후대책은 국민연금뿐”이라고 생각.

MZ세대(밀레니얼+Z세대) 사이에선 국민연금을 ‘손해가 예정된 투자’로 보는 시각이 많다. 1990년대생이 25세부터 월 300만 원을 번다고 가정했을 때 65세부터 받게 될 연금 수령액은 약 98만 원. 1960년대에 태어난 부모세대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했을 때 수령액(176만 원)보다 매달 78만 원을 덜 받는다. MZ세대가 국민연금을 받는 2060년 무렵부터는 보험료를 내는 사람보다 수급자가 더 많아진다. 내가 낸 돈마저 떼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1995년생 강민 씨는 어차피 고갈될 국민연금이라면 손실이라도 최소화하는 ‘손절(損切)’ 전략을 지향한다. 내가 낸 만큼 돌려받기 어렵다면 부담액도 확 줄여 월급의 1%만 내겠다는 것이다. 1987년생 용익 씨의 생각은 다르다. 믿을 만한 노후 대책이 국민연금뿐이라 이 제도가 ‘존버(힘들게 버팀을 뜻하는 속어)’해주길 바란다. 모두가 조금씩 보험료를 더 내서라도 공공 안전망을 지키자는 것이다. 두 청년이 21일 오전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 “1% 내고 1% 받자” vs “혼자 노후 대비 불가능”

▽강민=요즘은 노인이 아니라 청년이 취약계층이에요. 제가 왜 실패 리스크까지 지면서 사업을 하겠어요. 월급만 모아서는 집 못 사요. 제 또래들은 빚내서 주식과 비트코인에 한 방을 걸어요. 이미 위험 부담을 짊어졌는데 거기다 부양 부담까지 짊어지란 건 과한 요구 아닌가요. 저는 월급의 1%만 내고 딱 그만큼만 받고 싶어요. 내 돈인데 선택권을 줘야죠.

▽용익=강민 씨 말대로 모두가 적게 내고 적게 받는다면 노후는 개인의 몫이 돼요. 개인이 스스로 노후를 책임질 수 있을 거라고 보세요?

▽강민=그건 가능과 불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개인의 의무죠. 내가 나를 책임져야죠. 누구한테 짐을 지우는 게 아니라.

▽용익=지금은 젊으니까 난 아닐 거라 생각하지만 자기 의지와 무관하게 실패할 때도 있어요. 그럴 때를 대비한 안전망이 필요해요. 저희 아버지가 운영하던 건설회사가 2013년에 부도가 났어요. 평생 모아 마련한 집이 날아가고 연금보험까지 압류됐어요. 자금줄이 다 말랐을 때 유일하게 아버지를 지켜준 게 국민연금이에요. 57세부터 조기 수령하면서 매월 75만 원씩 받고 계세요. 이게 없었다면 저와 제 형제들의 부양 부담이 커졌을 거예요. 국민연금이 자식세대의 숨통도 틔워줘요.

▽강민=국민연금이 필요한 건 알죠. 근데 왜 다들 여태까지 손놓고 있었나요. 윗세대들은 받을 만큼 다 받아놓고서 국민연금 고갈되려 하니까 왜 그 모든 책임을 저희 세대에 떠넘기는 건가요. 억울하잖아요.

▽용익=충분히 공감해요. 당장 제 월급에서 국민연금 보험료를 더 떼어 간다고 하면 부담스럽죠. 하지만 저희 세대가 이 문제를 회피하면 자식 세대가 더 큰 부담을 질 거예요.

▽강민=자식 세대까지는 저한테 먼 얘기네요. 지금도 직원 5명의 국민연금 보험료를 사업자 부담으로 매달 70만 원씩 내고 있어요. 당장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면 사업자 부담도 늘겠죠. 스타트업 대표 입장에선 숨이 막혀요. 어떻게든 비용 줄여보려고 내년부터 월 300만 원씩 빠져나가는 사무실도 빼는데… 보험료율이 15%, 16%까지 오른다면 이건 갈취죠.

▽용익=갈취가 아니라 우리도 보호받는다고 생각해보자고요. 저는 사회에 나오기도 전에 빚부터 졌어요. 학자금 대출 2000만 원이 아직 남아 있고 로스쿨 다니면서는 생계비를 마련하려고 마이너스통장을 뚫었어요. 세후 400만 원 후반의 월급을 받지만 대출 원금과 이자로 빠져나가고 부모님 용돈 보태드리면 저 먹고살기도 빠듯해요. 노후를 위해 투자할 여유가 없어요. 국민연금이 거의 유일한 노후 대책이에요.

○ “부담만 안겨, 손절” vs “존버, 불가피”

▽강민=국민연금이 더는 유지될 수 없는 구조인데 대책이 될 수 있나요. 출산율이 1명 밑으로 떨어져 0.8명이에요. 돈 낼 사람은 주는데 돈 받을 노인 인구는 더 늘어날 거예요. 국민연금 재정 고갈은 시작에 불과해요. 앞으로 저희 세대가 짊어져야 할 복지 부담은 더 커지는데 정작 제가 받을 혜택은 없어요.

▽용익=저는 제가 이미 많은 혜택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로스쿨 다닐 때 학비가 없어 관두려는 순간마다 장학금이 주어졌어요. 이 나라는 제가 최소한 무언가를 시작이라도 해볼 수 있게 기회를 줬어요. 강민 씨가 창업할 수 있었던 것도 국가안전망 덕분 아닌가요.

▽강민=얼마를 받았는지가 아니라 앞으로 얼마를 잃을지 계산해야죠. 당장 대통령선거 후보만 봐도 포퓰리즘 공약만 내세워요. 결국 제가 갚을 빚이죠. 투표 안 한 지도 꽤 됐네요. 희망이 없어요. 오죽하면 제 주변 영재고 출신 동기들은 이미 이민을 떠나서 한국 국적을 포기해요. 저도 진지하게 이민을 고민하고 있고요.

▽용익=강민 씨는 집안 경제적 여건이 받쳐주니까 이민을 선택할 수 있지만 저는 아녜요. 서른넷 늦은 나이에 변호사시험에 합격한 게 제가 이뤄낸 유일한 성과예요. 떠날 자금도 없고, 떠나기엔 이미 너무 늦은 사람들이 있어요. 저를 포함해 많은 청년들은 이 나라 손절하고 싶어도 못 하니까 여기서 존버하는 거예요. 그럼 자포자기할 게 아니라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어떻게 버텨낼지 같이 방법을 찾아봐야죠.

대화 마지막까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던 두 청년에게 물었다. 대통령선거 후보들에게 바라는 게 있느냐고. 한국을 손절하겠다는 강민은 1초도 망설이지 않고 “기대가 없다”고 했다. 한국에서 존버할 수밖에 없다고 했던 용익은 한참을 뜸들이다 이렇게 말했다.

“대선 후보들이 선심성 공약 말고 차라리 솔직하게 말해줬으면 좋겠어요. 국민연금이라는 제도를 손봐야 한다면 제가 앞으로 얼마나 부담해야 하는지, 지금 안 고쳐 놓으면 나중에 어떻게 되는지. 이거라도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대선후보들, 연금개혁 청년유권자 요구에 응답해야”
전문가들 토론 관전평


“국민연금이라는 사회적 안전망을 지탱하는 건 결국 그 제도에 십시일반 기여하는 시민 간 신뢰입니다.”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을 주제로 토론을 벌인 시민 4명의 대화 텍스트를 분석한 뒤 이같이 평가했다. 정 교수는 “서로의 처지를 몰랐던 청년세대와 기성세대가 대화를 통해 각자의 자리에서 치열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한 뒤 고통을 분담하겠다며 함께 국민연금 개혁의 해법을 찾아냈다”며 “이런 대화가 시민사회의 신뢰를 쌓아나가는 사회적 자본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 교수는 국민연금 개혁의 성공을 위해선 사회적 합의가 반드시 필요한 만큼 공론장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교수는 “대화를 통해 세대 간 신뢰를 쌓는다면 △보험료율 인상 △소득대체율 인하 △가입상한연령 연장 등 세대 간 양보가 전제되어야 하는 국민연금 개혁을 추진할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국연금학회장을 맡고 있는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청년세대가 비판하는 대상은 국민연금이란 노후 안전망 그 자체가 아니라, 국민연금이란 공공 안전망을 기금이 고갈될 때까지 방치한 정치권과 기성세대”라고 지적했다.

윤 연구위원은 “유권자로서 청년세대는 내년 대통령선거 후보자들에게 국민연금의 미래에 대한 정확한 진단과 해결책을 주문하고 있다”며 “이제는 후보자들이 청년 유권자들의 요구에 응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토론 참여 시민 어떻게 선정했나

‘극과 극이 만나다’ 시즌2 토론은 참여 의사를 밝힌 시민 200여 명 가운데 국민연금 개혁을 주제로 실시한 정책 성향 설문 조사에서 상반된 응답을 한 시민 두 쌍을 선정해 진행했다. 설문 항목은 정순둘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등 전문가의 자문을 토대로 마련했다. 토론 참가자들은 △국민연금 보험료 증액 △소득대체율 인하 △가입상한연령 연장 △공적연금 신뢰도 등 문항에서 서로 대립되는 답변을 했다.

○ 특별취재팀

▽조응형 이소연(이상 사회부) 지민구(산업1부)
▽김나현 김선우 오세정 윤유성 디지털뉴스팀 인턴기자

후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국민연금#연금#청년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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