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경기 안양시의 한 사거리. 1, 2차로 동시 좌회전이 가능한 교차로에서 좌회전 중이던 곽모 씨(27)는 차선을 침범한 옆 차로의 승용차와 충돌했다. 1차로에서 좌회전하던 승용차가 복잡하게 얽힌 점선 형태의 유도선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차선을 살짝 넘어갔다가 2차로에 있던 곽 씨의 렌터카와 부딪친 것이다.
곽 씨는 2주 후 다른 지역에서 유사한 수법으로 교통사고를 냈다. 그는 고의로 교통사고를 내 보험금을 타내는 보험사기 일당 중 한 명이었다.
곽 씨는 선후배 사이인 일당 6명과 함께 안양, 안산, 성남, 수원 등 수도권 일대에서 1, 2차로 동시 좌회전이 가능한 교차로를 물색했다. 그곳에서 차로를 변경하거나 점선 유도선을 혼동해 다른 차로를 침범하는 차량을 표적으로 삼았다. 이들은 렌터카를 이용해 사고 차량을 바꿔가며 지난해 4월부터 1년간 66건의 고의 사고를 내 3억3000만 원의 보험금을 타냈다.
○ 2차로 이상 좌회전 교차로서 보험사기 급증
최근 10, 20대가 주로 가담하는 조직적인 교통사고 보험사기가 급증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고의 충돌에 의한 보험사기 적발액은 523억 원으로 2019년(339억 원)과 비교해 54.2% 급증했다.
특히 2차로 이상 동시 좌회전 교차로에서 표적을 찾는 보험사기범들이 많다. 사고가 많이 발생하는 교차로에서 차선 침범 등 법규 위반을 하는 차량을 공격하면 사기 의도를 숨기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2개 이상 복수 차선에서 동시 좌회전이 가능한 교차로에선 차선을 이탈하는 차량이 많은데 이때 옆 차로에서 고의로 급가속을 해 접촉사고를 내고 책임을 떠넘기는 방식이다. 점선 형태의 좌회전 유도선이 표시되어 있지만 복잡하게 얽혀 있거나 일부가 마모돼 알아보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운전자들이 좌회전 시 차선 이탈을 하지 않도록 ‘노면 색깔 유도선’을 개선하는 것이 고의 충돌 보험사기를 방지하는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색깔 유도선은 교차로, 분기점 등의 노면에 설치하는 분홍색 또는 녹색의 유도선이다. 차로의 명확한 안내와 운전자의 시선 유도를 위해 보통 차로 중심에 45∼50cm의 굵은 선으로 표시한다.
이를 통해 교차로에서의 차선 이탈을 줄인다면 고의적으로 사고를 일으킬 수 있는 여지도 줄어든다. 2008년부터 주요 도로에 색깔 유도선을 설치했던 일본은 설치 후 교통사고가 30∼100% 가까이 감소했다.
○ ‘노면 색깔 유도선’으로 사고 27% 감소
국내에서는 2011년부터 고속도로 일부 구간을 대상으로 색깔 유도선이 도입됐다. 한국도로공사가 2011∼2015년 고속도로 내 76개 지점에서 색깔 유도선을 시범 운영한 결과, 색깔 유도선 설치 후 교통사고 건수가 222건으로 설치 전(305건)보다 27% 감소했다. 특히 여러 도로가 만나는 나들목(IC)에서는 사고가 40% 가까이 줄어드는 등 효과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김현진 한국교통안전공단 모빌리티처장은 “색깔 유도선은 설치비용 대비 사고 감소 효과가 탁월하다”며 “최근 늘어나는 고의 충돌 보험사기를 막는 동시에 기본적인 교통안전을 증진시키는 기능도 해 일석이조”라고 말했다.
이에 최근 대전, 창원 등 주요 지자체들은 교통안전 증진 및 고의 교통사고 예방을 위해 경찰청, 손해보험협회 등과 공동으로 대대적인 색깔 유도선 설치 작업에 나섰다. 대전시는 올해 100개 교차로에, 내년까지 시내 모든 교차로에 색깔 유도선을 도입할 예정이다. 이용섭 손해보험협회 보험사기조사1팀장은 “보험사기가 갈수록 지능화되는 만큼 사고를 유발하는 교통 환경을 보완해 고의 사고 가능성을 미리 줄이는 게 중요하다”며 “지자체와 함께 보험사기 예방을 위한 노면 색깔 유도선 설치 캠페인을 지속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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