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억 원대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경찰 수사를 받고 있는 신풍제약이 ‘을’의 위치에 있는 원료 납품업체를 동원해 비자금을 조성한 것으로 파악됐다. 신풍제약 측이 금융당국에 덜미가 잡힐 위기에 놓이자 납품업체가 추징금을 내는 등 책임을 떠안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 단가 부풀려 어음 빼돌린 뒤 돈세탁
7일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2009년 의약품 원료 납품업체를 설립한 A 씨는 2015년경까지 신풍제약과 거래하며 비자금 조성을 도왔다. A 씨가 신풍제약 측의 요청에 따라 납품 원료의 단가를 부풀려 세금계산서를 발행하면 신풍제약은 실제 단가에 상당하는 어음만 A 씨에게 지급하고 나머지는 빼돌려 비자금으로 축적하는 식이었다.
내부 사정을 잘 아는 관계자에 따르면 신풍제약 B 전무가 비자금 조성을 담당했다고 한다. B 전무는 실제 단가보다 부풀려진 액수에 대해선 A 씨에겐 어음 사본만 주고, 원본은 어음할인업자 C 씨에게 전달해 현금화하도록 했다. C 씨는 어음을 현금화한 뒤 여러 계좌를 이용해 세탁한 자금을 B 전무에게 전달했다. C 씨는 신풍제약에 근무하다 1997년경 퇴사해 어음업체를 차린 것으로 알려졌다.
신풍제약 측은 납품 대금을 부풀림에 따라 A 씨가 더 내야 하는 세금을 보전해주기도 했다. 이 과정을 지켜본 관계자는 “A 씨가 세운 여러 업체를 통해 조성된 신풍제약의 비자금이 수백억 원에 달한다”고 했다.
서울경찰청 금융범죄수사대는 지난달 24일 서울 강남구 신풍제약 본사와 경기 안산시 공장 등을 압수수색해 관련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전해졌다.
○ 발각 위기 놓이자 납품업체에 책임 전가
A 씨는 2009년과 2011년 국세청의 세무조사를 받는 과정에서 원료 단가를 허위로 높인 사실이 적발됐다. 하지만 책임은 A 씨에게 돌아갔다. A 씨의 지인은 “A 씨가 혼자 비자금을 조성한 것처럼 꾸며 신풍제약의 비자금 조성 사실을 숨겼다”며 “거래를 계속 이어가기 위해선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A 씨는 거액의 추징금을 내고 신용불량자가 됐다고 한다.
2016년 A 씨가 자신의 업체를 한 통신장비업체에 매각하는 과정에서도 비자금 조성 관련 단서가 드러났다. 인수합병을 앞두고 진행된 회계실사에서 장부에 기재된 30억 원 상당의 어음이 존재하지 않았던 것. A 씨는 해당 업체 측이 신풍제약에 문제를 제기하려 하자 이를 무마하기 위해 부족한 어음을 직접 충당하는 조건으로 매각을 성사시켰다. 이 때문에 A 씨는 매각 대금을 고스란히 회사에 재투자해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A 씨의 지인은 “B 전무가 A 씨에게 ‘잡음이 나지 않도록 해달라’면서 회사 매각 후 다시 원료 납품을 하면 매년 50억 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게 돕겠다는 약속을 했다고 한다”고 말했다.
A 씨는 이 약속을 믿고 신풍제약에 원료 샘플을 보냈지만 신풍제약 측은 거래를 회피했다고 한다. A 씨는 납품 요청이 3년 가까이 거부되자 2019년 신풍제약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지만 지지부진해 결국 소를 취하했다. A 씨는 세무서, 국민권익위원회, 청와대 국민청원을 통해서도 비자금 조성 문제를 제기했지만 추징금 납부 등 불리한 전력이 있어 별다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한다. A 씨는 지난해 말 사망했다.
B 전무는 5일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A 씨를 아느냐” “비자금 조성 의혹을 해명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다”는 답변을 반복했다. 어음할인을 맡았던 C 씨는 연락이 닿지 않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