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8일 치러진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과학탐구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출제 오류 시비가 법정까지 가게 되자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이 사과했다.
강태중 평가원장은 9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2022학년도 수능 채점 결과 브리핑에서 “논란의 여지가 생긴 것 자체에 대해서 충분히 송구한 마음을 갖고 있다”며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는 것이 평가원의 책임이라는 점에서 미흡했다는 점을 충분히 인정할 수 있다”고 말했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은 동물 종 두 집단에 대한 유전적 특성을 분석해 멘델집단을 가려내 옳은 선지를 구하는 문제다. 출제오류를 지적하는 이들은 계산 과정에서 특정 집단의 개체 수가 음수(-)가 되기 때문에 보기의 조건을 모두 만족하는 집단이 존재할 수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해당 문항에는 156건의 이의가 제기됐으나 평가원은 “이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더라도 교육과정 학업 성취 기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의 타당성은 유지된다고 판단했다”며 정답을 그대로 유지했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출제오류에 대해 수험생 92명은 지난 2일 서울행정법원에 정답 결정 처분 취소 본안소송과 함께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집행정지는 처분으로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처분 효력을 잠시 멈추는 결정이다.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지난 8일 비공개 심문을 진행했으며, 이르면 9일 중 집행정지 처분이 나올 예정이다. 평가원은 오는 10일 각 영역별 표준점수와 백분위 등을 담은 성적표를 수험생들에게 통지 예정이다.
그러나 평가원은 정답을 유지해 여타 대학입시 일정을 유지하며, 미리 판결을 예단해 움직이지 않겠다는 뜻을 밝혔다.
강 원장은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가처분 결과에 대해) 예단하고 있지 않다”며 “최종 결정에 근거해서 정해진 대입 일정을 지켜나갈 것이다. 다른 변화가 생긴다면 또 그에 상응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평가원이 정답 확정 당시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고 설명한 점은 해당 문항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 아니냐는 질의에는 “내용상 옳고 그름, 형태가 어떤지를 뛰어넘어서 교육과정 기준을 갖고 학생 성취도의 우열을 가늠하는 역할을 해낼 수 있는지도 상당히 중요한 점”이라면서 “많은 전문가들과 관련 전문 학회들과 의견을 나누고 또 실제로 자문을 했다. 그 결과를 종합해 보건대, 실제로 이 문항의 정답을 유지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봤다”고 답변했다.
아울러 “여전히 그런 과정을 거쳐서 정답을 풀어낸 수험생들이 적지 않다는 점 등을 총체적으로 감안할 때 정답을 유지하는 것이 교육적으로나 전형 자료로서의 공평성에서 의의가 있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재판부가 최종적으로 논란이 된 문항의 출제오류를 인정하면 복수 정답 또는 전원 정답 처리를 하게 된다. 이 경우 상대평가 과목인 만큼 생명과학Ⅱ 응시자들의 성적이 모두 바뀌게 된다. 평가원은 만일의 사태에 대비한 시뮬레이션까지 하지는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당장 오는 16일까지 수능 최저학력기준을 반영한 수시모집 합격자가 발표되며, 오는 30일부터 내년 1월3일까지는 정시모집 원서접수 예정인 만큼 상황이 긴박하다.
강 원장은 이에 대해 “수능 성적 채점과 통지 체계는 상당 부분 디지털·컴퓨터화돼 있으며, 변수가 바뀔 때 결과를 처리하는 것은 이뤄질 수 있다”면서도 “무책임하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실제 등급이나 점수가 바뀌는 등의 영향을 사전에 알려드릴 수 있을 만큼 파악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훈희 교육부 대입정책과장은 “평가원을 비롯해 정부는 예정된 일정을 변함없이 진행할 것”이라며 “재판부에 공공복리 측면에서 고려해줄 것을 충분히 소명하고 있다. 현재로서는 진행 중인 상황에 대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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