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인생 2막]대기업 퇴직 후 베스트 셀러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 펴낸 정선용 씨
저작권 수입 없는 남진과 다른 길… ‘문화자본가’ 나훈아 보며 무릎 탁
퇴직 후 고정수입 중요성 깨달아… ‘내 월급-지위 영원할것’ 착각 벗고
직장인도 경제와 돈의 원리 배워… 월급쟁이 직원으로만 살지 말아야
대기업 임원이던 정선용 씨(54)에게 인생 2막은 느닷없이 닥쳐왔다. 지난해 9월 마지막 금요일, 25년간 일한 회사에서 퇴직을 통고받았다. 20대 후반부터 인생의 모든 것을 올인하다시피 한 회사였다. 무언가에 얻어맞은 느낌이었다.
“임원 퇴직 통보는 금요일에 합니다. 아무도 없는 주말에 짐을 빼도록, 일종의 배려죠. 주말에 짐을 챙겨 나오는데 종이박스 3개 분량이 전부더군요. 25년 세월이 이게 다구나. 하루아침에 사회에서 필요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았습니다.”
바로 다음 주가 추석이었다. 부인에게 ‘올해는 본가도 처가도 가지 말자. 회사 그만뒀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양해를 구했다.
○“나훈아는 문화자본가였다”
그를 나락에서 구해 준 건 추석 전날 TV에서 방영된 나훈아쇼였다.
“근 3시간 콘서트를 쥐락펴락하는 나훈아를 보며 생각했죠. 출연료도 받지 않는다는데, 저렇게 당당한 모습은 어디에서 올까. 아하…. 그에겐 자본소득이 있구나.”
나훈아의 저작권 수입이 연간 6억 원대로 출연료에 연연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근로소득이 끊어지게 된 자신이 왜 힘들고 불안한지 실마리가 잡혔다. 경제구조를 좀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에 하루 한 편씩 경제와 관련한 글을 쓰겠다고 자신과 약속했다.
이렇게 쓰던 글을 150만 회원의 네이버 카페 ‘부동산스터디’에 연재하자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나훈아를 자본소득, 남진을 근로소득에 비유해 그 차이를 밝힌 ‘소득편’은 댓글이 600개가 넘었다. 직접 만든 곡이 많아 저작권 수입이 큰 나훈아는 문화자본가인 셈이니 노래를 해서 돈을 벌 필요가 없다. 반면 남진은 저작권 수입이 없으니 공연과 CF 촬영 등 근로활동을 지속하고 있다는 해석이었다.
어느 날엔가는 소득의 세 가지 유형을 ‘서태지와 아이들’의 해체 이후 삶에 빗대 설명했다. 이주노는 춤이라는 육체노동에 의존해 근로소득을 얻고 양현석은 연예기획사를 차려 사업소득을 얻고 있다. 서태지는 자신이 만든 콘텐츠에서 저작권료를 받으니 자본소득을 얻고 있다는 식이다. 그로부터 6개월 뒤 그는 베스트셀러 작가로 거듭났다.
“20편쯤 썼을 때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어요. 50편쯤을 모아 ‘아들아, 돈 공부해야 한다’(RHK코리아)라는 책으로 묶었죠. 3월에 책이 나왔는데 현재까지 6만 권 이상 팔렸습니다.”
인세로 9000여만 원, 책이 알려지면서 여기저기서 강연 수입도 따라왔다. 1년 만에 자신의 콘텐츠로 1억 원이 넘는 소득을 확보한 것. 인생 1막을 닫고 2막을 연 순간, 월급 받는 근로자였던 그는 자본가, 그것도 문화자본을 밑천 삼아 돈을 버는 ‘작가’로 변신한 것이다.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살지 마라’
무엇보다 글쓰기를 통해 마음을 추스를 수 있었다.
“직장인들은 퇴직하는 순간 사회적 죽음을 경험합니다. 스스로에 대한 원망, 타인이나 환경에 대한 섭섭한 마음이 시작되죠. 모든 인연을 끊고 외톨이로 지내는 사람도 많습니다. 제가 그런 원망을 걷어낸 건 글을 쓴 덕분입니다. 제 상황을 객관화해 볼 수 있게 됐어요. ‘내 잘못이 아니다. 어차피 끝이 있는 게임이었다. 왜 내가 스스로를 괴롭히나’ 하는 생각에 이르렀습니다.”
책을 낸 뒤 큰아들(24세)과의 대화가 늘었다. 며칠 전에는 진로를 고민하는 아들이 근로소득은 어차피 한계가 있으니 사업소득으로 시작하는 건 어떨지를 물어왔다. 그는 “회사는 돈 받으면서 다니는 학교”라며 “시궁창이건 어디건 일단 발을 담가 보라”고 권했다.
그의 책 띠지에는 ‘직원으로 시작하라. 그러나 직원으로 살지 마라’고 쓰여 있다. 달리 표현하면 ‘회사를 사랑하면 안 된다’는 말이 된다. “저는 월급의 달콤함에 젖어 계속 일만 했지 자본소득을 확보할 생각을 못 했어요. 직장생활을 하는 분들은 근로소득으로 시작하되, 늦지 않게 자본가, 사업가로 거듭날 준비를 하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국가와 기업은 여러분이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는 근로자로 살기만 원하지요. 스스로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돈과 경제의 원리를 알 수가 없어요.”
같은 맥락에서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주는 월급과 명함, 인맥이 자신의 것이라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당부한다. 모든 건 퇴직하는 순간에 물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것. “월급이 아닌 고정 소득을 만들고 회사 명함이 아닌 내 사회적 지위를 만들어야 합니다. 회사 인맥이 아닌 나만의 좁고 깊은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죠.”
○동료 퇴직 임원 70여 명, 40%는 갈 길 못 찾아
회사는 퇴직 임원들을 위해 서울 송파구 문정동에 공동사무실을 제공하고 있다. 하지만 임원 출신들의 퇴직 이후 새 삶이란 녹록지 않다고 그는 전한다. 대부분 50대인 퇴직자가 70여 명인데 자리 잡지 못하고 힘들어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30% 정도는 창업 등 완전히 다른 길을 가고 다른 30%는 회사와 연결된 일을 합니다. 나머지 40%는 뚜렷한 자리를 찾지 못해 불안해합니다. 돈이 없어 불안한 게 아니고 사회에서 낙오될 수 있다는 불안이죠. 100세 시대에 앞으로도 40여 년이 남았는데 할 일이 없다면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라는 생각 때문에 힘든 거죠. 매일 등산 갈 수도 없고….”
세상이 빨리 변하고 있어 과거의 노하우나 지식이 불필요해지는 상황이다.
“회사에 있을 때는 우리가 하는 일들은 어디 가서도 써먹을 수 있다고 생각했죠. 명색이 몇 조 단위 장사하던 사람들인데 막상 사회에 나오면 동네 풀빵가게보다 못하다는 말을 저희끼리 해요. 회사 일은 분야가 나뉘어 있어 분절된 지식만을 갖게 되는데 현실에서는 풀빵가게 하나 하려 해도 전체를 다 할 수 있어야 하니까요. 축구선수가 야구 하면 몸살 난다고 하잖아요. 안 쓰던 근육을 써야 하니까. 저는 그 근육 쓰는 법을 배우는 게 돈공부라고 생각했어요. 사회에서의 규칙은 경제와 돈이 기본 뼈대이고, 이걸 배워놓으면 어디서나 쓰인다고.”
그는 25년간 유통업계에 종사하며 롯데마트 가정간편식 부문장(상무) 등을 거쳤다. 유통 역사에 한 획을 그은 미국산 쇠고기 최초 판매나 숱한 화제를 모은 ‘통큰치킨’의 현장 판매, 가정간편식 ‘요리하다’ 브랜드를 기획한 주인공이다.
“일이 재미있었습니다. 내 사회적 가치는 일을 잘하는 것이라고 믿었어요. 나중에 보니 그건 모두 회사 것이었습니다. 회사원들이 자기 존재가치를 찾으려 열심히 일하는 것은 바보 같은 짓입니다. 그래서 직원으로 시작하되 직원으로 끝까지 살지는 말라고 권하는 겁니다. 생각보다 이 사회는 경제, 즉 돈에 기반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퇴직 후 자산 상황을 점검해 보며 가슴을 쓸어내렸습니다. 아내가 부동산 투자를 잘해서 순자산이 50억 원은 되더라고요. 그렇지 않았더라면 더 절망에 빠졌을 겁니다.”
“저는 굉장히 운이 좋은 경우입니다. 사람들에게 강의하고 책 쓰는 일이 무척 즐겁습니다. 하지만 직장이라는 온실 밖으로 내쳐진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했어요. 아직도 악몽을 꿉니다.”
내년에는 책을 3권 더 내기로 했다. 부인과 함께 부동산 투자에 관한 책을 낼 예정이고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한 돈공부 책도 쓸 생각이다. 12월부터는 유튜브를 시작하고 여기서 다룬 콘텐츠를 엮어 책으로 만들 계획이기도 하다.
“무명 연극배우들이 거친 마룻바닥에서 자고 포스터 붙여 가며 막막한 가운데 열심히 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퇴직 이후 반드시 새벽 5시에 일어나서 4시간은 글을 씁니다. 그 시간만큼은 반드시 지키자고 스스로 약속했어요. 이제는 작가로서 저 자신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야, 정선용. 너 잘하고 있어’라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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