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제 오류 논란으로 2022학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정답 결정이 유예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학입시도 혼란에 빠졌다. 교육부와 대학이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 마감일을 이틀 늦추면서 수습에 나섰지만 법원이 17일 어떤 결정을 하느냐에 따라 대입 일정이 또 다시 출렁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수능 출제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과 교육부에 따르면, 법원이 누구 손을 들어주든 2022학년도 대입 정시모집 일정에는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부 관계자는 “(17일 법원) 판결 결과에 따라 조치될 예정”이라며 “정시 일정은 변화가 없다”고 강조했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9일 올해 수능 생명과학Ⅱ 응시생 92명이 평가원을 상대로 낸 정답 결정 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일부 인용했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을 본안 사건 선고 때까지로 미뤘다. 평가원은 지난 10일 수능 응시생에게 성적표를 배부했지만 생명과학Ⅱ는 공란으로 비워놓았다.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 처분 취소소송에 대한 판결은 17일 오후 1시30분 선고될 예정이다.
법원이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을 ‘5번’으로 결정한 평가원의 손을 들어준다면 이후 수시모집 일정은 교육부와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지난 10일 밝힌 대로 진행된다. 교육부는 이날 서울행정법원이 선고기일을 17일로 정하자 대교협과 협의해 수시 합격자 발표 마감일을 종전 16일에서 18일로 미뤘다. 미등록 충원 등 이후 수시 일정은 하루씩 순연했다. 정시모집은 변경 없이 예정대로 30일부터 원서접수를 시작한다.
현재로선 법원이 평가원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소송이 시작되면서 학계에서도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오류에 대한 지적이 나오고 있다. 11일에는 집단유전학 분야의 세계 최고 석학 중 한 명인 조너선 프리처드 미국 스탠퍼드대 빙 석좌교수가 트위터로 출제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평가원도 지난달 29일 이의신청 심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는 점은 인정했다.
◇출제오류 판결 땐 ‘전원 정답’ 처리 가능성 높아
법원이 수험생 손을 들어줘 출제오류 주장을 받아들이더라도 교육부와 대교협이 지난 10일 밝힌 수시·정시모집 일정에는 변화가 없을 전망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정답 결정을 본안 사건 판결 선고 때까지로 미뤘다. 17일 법원 선고가 이뤄지면 평가원은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성적을 결정해 발표할 수 있게 된다.
평가원은 법원 선고결과에 따라 이날 오후 8시부터 생명과학Ⅱ 응시생 6515명에게 수능 성적 증명서 온라인 발급시스템으로 성적을 제공할 예정이다. 대학 역시 평가원의 시스템을 통해 생명과학Ⅱ 응시생의 성적을 확인해 수시전형에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대교협 관계자는 “17일 밤을 새워서라도 18일까지 수시 최초 합격자를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평가원이 법원 판결에 불복해 항소할 가능성도 있다. 그래도 법원 판결에 따라 성적을 처리한 후 이후 대입 일정은 그대로 진행될 전망이다. 평가원이 패소할 경우 정시모집 일정 변경 가능성을 묻자 교육부 관계자는 “정시 일정은 변화 없다”고 못 박았다. 평가원이 항소하더라도 집행정지 가처분을 함께 신청해 대입 일정을 멈추게 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수험생이 승소할 경우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의 성적을 어떻게 처리할지가 숙제로 남는다. 소송을 제기한 수험생들 주장처럼 ‘전원 정답 처리’할 수도 있고, 20번 문항을 아예 제외하고 나머지 19문항으로 성적을 재산출할 수도 있다.
교육계에서는 ‘전원 정답’ 처리 가능성을 높게 보고 있다. 최근에 비슷한 선례가 있다. 2017학년도 수능에서는 과학탐구영역 물리Ⅱ 9번 문항에서 출제오류가 발생했다. 당시 물리Ⅱ 9번 문항은 보기에 정답이 없는 것으로 판정 났다. 평가원은 ‘정답 없음’으로 판정하고 19번 문항은 응시생 모두 정답으로 처리했다.
◇“대국민 사과” 요구…“무조건 1심 판결 승복” 주문도
평가원이 법원 판결에 따라 수능 성적을 확정하고 남은 대입 일정을 진행하더라도 한동안 논란은 계속될 수 있다. 평가원 기존 발표대로 생명과학Ⅱ 20번 문항을 맞힌 수험생이 성적 재산출 후 피해를 보게 된다면 역시 소송을 제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현행 수능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일반적으로 평균이 올라가면 표준점수는 낮아진다.
책임론도 제기될 전망이다. 평가원은 “문항의 조건이 완전하지 않다”면서도 “교육과정의 성취기준을 준거로 학업 성취 수준을 변별하기 위한 평가 문항으로서 타당성은 유지된다”는 논리로 기존 정답을 고수했다. 한 진학 교사는 “평가원이 수험생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자존심만 생각하다 이 사태를 불렀다”고 비판했다. 한 서울지역 대학 관계자는 “혼란을 초래한 데 대해 평가원이나 교육부가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경원 정의당 정책위원은 “교육부와 평가원은 결과가 무엇이든 1심 판결에 승복하겠다고 미리 정해놓아야 한다”며 “행정적 절차나 기관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의도로 판결에 불복해 시간을 끌거나 혼란을 가중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서울=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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