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보호 여성 가족 살해’ 나흘전… 아버지 “딸 감금돼” 신고에도 체포 안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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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경찰, 피해 여성 찾아냈지만
피의자 체포 등 적극 조치 없어
신고 뒤 집 찾아가 흉기 휘둘러
피의자 구속… 신상공개 검토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집에 찾아가 어머니와 동생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를 받는 이모 씨가 12일 오후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집에 찾아가 어머니와 동생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를 받는 이모 씨가 12일 오후 열린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스1
20대 남성이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던 여성의 집에 찾아가 가족을 살해하기 4일 전, 여성의 아버지가 경찰에 “딸이 감금된 것 같다”고 신고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출동 경찰관은 여성에게서 “납치·감금을 당했다”고 얘기를 들었지만 현장에 있던 피의자를 체포하는 등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서울 송파경찰서 등에 따르면 이모 씨(26)는 10일 오후 서울 송파구 잠실동의 한 빌라 4층에 있는 A 씨의 집에 찾아가 A 씨의 어머니(49)와 남동생(13)에게 흉기를 휘두른 혐의(살인 및 살인미수 혐의)를 받고 있다. A 씨의 어머니는 숨졌고 남동생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사건 당시 A 씨는 집에 없었다.

이 씨의 범행 4일 전인 6일, A 씨의 아버지는 딸과 연락이 닿지 않자 경찰에 “딸이 감금된 것 같다”고 신고했다. 당시 A 씨의 휴대전화는 이 씨에 의해 파손된 상태였다. 경찰이 A 씨의 소재를 파악해 대구에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구 수성경찰서 수사팀이 출동해 한 식당에 함께 있던 A 씨와 이 씨를 찾아냈다. 당시 A 씨의 얼굴에는 멍이 들어 있었다. A 씨는 경찰관에게 “이 씨에게 납치·감금돼 폭행을 당했고, 성폭행도 당했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이 씨를 현장에서 체포하지 않고 A 씨와 분리조치한 뒤 이 씨를 귀가시켰다. 경찰 관계자는 “A 씨가 특정 장소에 감금돼 본인의 의지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고 보기 어려운 측면이 있었고 A 씨와 이 씨의 진술도 상반됐다”며 “긴급체포 요건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대구 수성서는 이 씨에 대해 감금, 폭행, 성폭행, 재물손괴 등 혐의가 있다고 보고 범행 발생 지역을 관할하는 천안 서북경찰서로 사건을 7일 이송했다.

하지만 경찰 수사가 신속히 진행되지 않는 사이 이 씨는 A 씨의 주소를 파악하고 범행에 사용할 흉기를 준비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씨는 A 씨 집 주변을 배회하며 같은 건물 거주자들이 출입하는 것을 엿보면서 공동 출입문 비밀번호를 알아냈다고 한다. 이 씨는 경찰 조사에서 “불법적인 경로로 A 씨 집 주소를 알아봤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A 씨는 7일 아버지와 함께 경찰서에 방문해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경찰은 A 씨를 112 긴급 신변보호대상자로 등록하고 스마트워치 지급, 주거지 인근 순찰 강화 등 조치를 했다. 하지만 이 씨는 3일 뒤인 10일, A 씨의 집에 찾아가 흉기로 가족들을 공격했다. 경찰은 이 씨가 집 안으로 침입한 경위와 범행 동기 등에 대해 조사 중이다.

서울동부지법은 12일 오후 6시경 이 씨에 대해 “범죄 혐의가 소명됐고 도망할 염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 씨는 이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마치고 나오며 ‘범행 나흘 전에 무슨 일로 신고됐느냐’ ‘보복살인 맞느냐’는 등 취재진의 질문에 “죄송하다”고 답했다. 경찰은 이 씨의 신상 공개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신변보호 여성 가족 살해#딸 감금#아버지 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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