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피해자와 가해자가 서로 모르는 경우 피해자는 범죄에 노출된 사실조차 파악하기 쉽지 않다. 자신의 가장 내밀한 사진이 자신도 모르는 새 찍히는 것이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B씨의 영상 속 피해자는 한 명도 밝혀지지 않았다. C씨의 영상도 피해자 1명을 제외하고는 신원을 파악하지 못했다.
전체 판결문 261건에서 확인한 성명불상 피해자는 최소 2772명이다. 지금도 2772명은 자신의 나체 사진이나 치마 속 영상이 찍힌 줄 모르고 지내는 셈이다.
편의점 점주가 슬리퍼에 휴대전화를 끼워넣어 13차례 범행을 저지르고, 옷가게 직원이 탈의실에 카메라를 숨겨 18명을 촬영했지만 마지막에 카메라를 발견한 피해자를 제외하고 나머지 신원은 알 수 없다.
성관계 중인 모습을 찍은 불법촬영물에서 피해자 신원을 파악하지 못한 경우도 있었다.
성명불상 피해자는 ‘여, 긴머리, 등과 팔 어깨에 문신 있음’ 등의 특징으로만 판결문에 남아 있다. 다른 피해자는 ‘검은색 상의에 청색 치마를 입은 여성’, ‘물방울 무늬 치마를 입은 여성’으로 기록됐다.
현장에서는 피해자 특정이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하철 성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관계자는 “(가해자가) 피해자를 특정하고 찍는 것이 아니라서 불법촬영 피해자를 찾는 것이 사실상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검찰과 법원에서도 피해자 특정을 위해 최소한의 노력을 하라고 한다”며 “경찰도 피해자 의사를 물어보기 위해 최대한 피해자를 찾으려고 노력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피해자가 알아채기 전까지 촬영
대부분 불법촬영 범죄자들은 촬영 사실이 발각되기 전까지 반복해서 촬영 버튼을 눌렀다. 판결문 261건 중 절반이 넘는 149건(57%)의 피고인들은 1회 이상 불법촬영을 저질렀다.
마지막 피해자나 목격자가 카메라를 발견할 때까지, 지금도 성명불상 피해자들의 불법촬영물은 쌓이고 있다.
한 남성은 2년 동안 지하철에서 1375회에 걸쳐 휴대전화로 여성들의 신체 부위를 촬영했다. 또 다른 남성은 PC방 등에서 871차례 불법촬영을 했다.
법원은 이들에게도 범죄를 반성하고, 다른 범죄 전력이 없다며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범죄자들의 왜곡된 인식을 지적하며 사회적인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했다.
곽대경 동국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가해자들의 왜곡된 인식과 불법촬영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상황이 문제”라며 “한번 저질렀는데 잡히지 않으면 스릴이나 재미를 느끼면서 자신의 의지로 통제하거나 멈추기가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처벌받는 사례가 많아지면 범죄자들도 처벌받을 수 있다는 생각이 증가해 범죄를 억제할 수 있을 것”이라며 “초범이고 반성의 기미가 있다는 이유로 집행유예나 벌금을 내리는데, 이제 한국 사회에서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반감이 높아진 만큼 판사들도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