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다로운 요건 탓에 ‘골목형 상점가’ 사업 지지부진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2월 14일 03시 00분


[현장속으로]‘전통시장 특별법’ 시행 1년 넘겨도, 부산에서 지정된 골목상권은 ‘0’
건축물 소유주 동의 여건 완화 등 불합리한 지정 조건 개선해야

13일 수영곰솔 골목상점가 회장 A 씨가 ‘골목형 상점가’ 지정을 추진 중인 주변 상권을 가리키고 있다. 2000㎡ 이내 30개 상가가 밀집한 곳이 지정 대상인데 요건이 까다로워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13일 수영곰솔 골목상점가 회장 A 씨가 ‘골목형 상점가’ 지정을 추진 중인 주변 상권을 가리키고 있다. 2000㎡ 이내 30개 상가가 밀집한 곳이 지정 대상인데 요건이 까다로워 사업이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김화영 기자 run@donga.com
“까다로운 조건 때문에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받기가 힘이 드네요.”

부산 수영팔도시장 인근의 한 마트 앞. 13일 만난 마트 주인 A 씨는 긴 한숨을 내쉬며 이같이 푸념했다. A 씨는 부산에서 처음으로 자신의 마트 일대를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하기 위해 지난해부터 발품을 팔고 있으나 까다로운 지정 요건과 행정 절차 때문에 난관에 봉착했다고 털어놓았다.

골목형 상점가 사업은 동네 골목 상인에게 전통시장 상인과 동등한 자격을 주는 정책이다. 지금까지 치킨가게나 미용실, 철물점 상인 등은 조직화되지 못했고 정부나 지자체의 정책 지원에도 동떨어져 있었다. 이들이 협동조합이나 상인회 형태로 뭉치면 환경개선이나 공동마케팅, 상품개발 같은 지원과 온누리 상품권 취급점으로 인정해 준다는 것이 이 사업의 핵심 내용이다.

지난해 8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이 개정돼 시행되고 기초지자체가 상점가 지정 및 운영을 위한 조례를 제정하면서 본격 추진됐다. 전국적으로 골목형 상점가 지정 사업이 급물살을 탈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법 시행 15개월이 넘도록 부산에서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된 곳은 한 곳도 없다. 전국적으로도 30곳을 넘지 못한 것으로 추산된다. 까다로운 지정 요건 때문이다.

A 씨가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받으려는 수영 팔도시장 근처 상권도 마찬가지다. 수영구의 ‘골목형 상점가 지정 및 활성화에 관한 조례’의 상점가 지정요건(제2조)에는 ‘2000m²(약 605평) 이내 면적에 30개 이상 점포가 밀집해 영업 중인 곳’으로 규정돼 있다. 문제는 조례에 명시된 면적과 점포 수를 맞추기 어렵다는 점이다.

A 씨가 올 초부터 사업 참여 희망자 모집에 나선 결과 점포 70곳이 동의했다. 지난달 23일 ‘수영곰솔 골목상점가’ 창립총회도 열고 A 씨가 회장으로 선임됐다.

70곳의 점포를 점으로 표시해 가장자리를 이어 합산한 전체 면적은 총 1만965m². 수영구의 조례에 따른 점포 기준이 면적 2000m²에 30개이기 때문에 수영곰솔 골목상점가 추진 면적에는 165개의 점포가 영업 중이어야 한다. 그러나 이 구역 내 점포 수는 120개 남짓. A 씨는 “골목은 구석구석 이어지기 때문에 어디까지 사업에 참여시킬지 어려움이 있다”며 “‘2000m² 내 점포 30개 밀집’ 기준을 없애야 골목형 상점가 지정이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골목형 상점가 지정에는 면적과 점포 수 기준 외에도 별도의 까다로운 기준이 있다. 지정받으려는 구역 내 상시 영업하는 상인의 50%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하고, 토지와 건축물 소유주의 50% 이상의 동의도 받아야 한다.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받기까지 장애가 너무 높아 사업 추진을 포기하는 경우가 속출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부산에서는 해운대구 등 일부 골목상권에서 상점가 사업을 시도하다 중단된 곳이 여러 곳이며, 현재 곰솔상점가처럼 어려움을 겪는 곳도 많다. 특히 부산 16개 구군 중 수영구와 해운대구 등 10곳을 제외한 6개 자치단체는 관련 조례조차 제정되지 않아 사업을 추진할 근거조차 마련되지 못했다.

김진 수영구의회 의장은 “건축물 소유주 가운데 사업에 동의하지 않는 경우가 특히 많다”며 “정부가 면적기준과 건물주 50% 동의 같은 까다로운 조건을 완화하는 법령 개정을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골목형 상점가로 지정받으면 전통시장에서만 사용되던 온누리상품권을 취급할 수 있어 인접한 전통시장의 반대도 사업 추진에 걸림돌이다.

이정식 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장은 “온누리상품권 유통이 활발해지면 지역 유통가 전체가 활성화된다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코로나19로 가장 어려움을 겪는 골목 자영업자들을 제대로 지원하려면 기초지자체와 상인 간 간극을 좁히는 중간지원조직 운영도 이뤄져야 한다”고 조언했다.

#골목형 상점가#사업#전통시장 특별법#골목상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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