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보장원 “일관성 있는 사실만을 전달했을 때”
변호사 “진술의 구체성과 신빙성 중요”
법무부 “상처를 보았음에도 신고 안 했다면, 신고의무 위반”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엄마, 그 기억이 너무 딱딱해. 통째로 먹은 기억…”
6살 솔이(가명)는 아직도 그날을 잊을 수 없다. 지난 2월 서울 송파구의 한 유치원에 다닌 솔이는 담임 교사였던 A 씨에 의해 강제로 음식을 먹었다. 솔이는 화장실로 달려가 먹은 것을 다 게워 냈다. ‘배의 돛에 분홍색을 칠했다’는 이유로 다른 아이들 앞에서 꾸지람을 들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솔이는 더 이상 색연필을 잡지 않았고, 아이들이 자신을 싫어하는 것 같다며 신생아처럼 울음을 터뜨리기 일쑤였다. 그때부터 솔이의 세계가 무너지기 시작했다.
솔이는 지난 8월 19일 부모에게 사실을 알렸다. 부모는 즉시 유치원을 찾아가 담임 교사와 원장에게 진술 녹음을 들려주며 물었지만 아무런 소득은 없었다.
송파경찰청에 신고 후 서울경찰청 아동학대수사팀 담당 수사관이 배정됐고 지난 9월 12일 해바라기센터에서 솔이의 강박 발언과 반복 진술은 이어졌다.
“잊어버리고 싶은 기억은 선생님이 억지로 다 넣은 거.” “밥이랑 고기랑 부추랑 김치를 억지로 먹였어요.” “너무, 너무, 너무, 힘들었어요. 도저히 못, 못, 어, 너무 커서 화장실로 뱉었어요.”
동료 교사 B 씨가 솔이 부모에게 보낸 문자. 제보자 제공 솔이가 SOS를 보낸 건 유치원 내 다른 교사였다. 솔이는 다른 반 교사인 B 씨에게 “놀이를 하고 있어도 친구들이 오지 않아요”, “친구들에게 먼저 같이 놀자고 말하는 게 자신이 없어요”라면서 울먹였다. B 씨는 “상황과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이야기하는 행동을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판단이 서지 않아 원장님께 여쭤봤다”라는 문자를 솔이 부모에게 보냈다. 그렇게 약 2주간(9월 8일~14일) 솔이는 유치원에서 도움의 손길을 구하고 있었다.
솔이 부모는 더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수소문을 통해 강제 식사 후 구토를 하고 있던 솔이의 모습을 목격한 같은 반 친구의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목격한 친구는 “(솔이가) 그때 화장실 가서 토한 적 있다”며 “이후에 선생님께 혼났다”고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말을 들은 원장 C 씨의 반응은 달랐다. 그는 “놀이하며 한 말들이다”라며 “학대 의심 안 된다”는 말만 반복할 뿐 아무런 조처를 하지 않았다.
솔이 부모는 9월 말 송파구청 아동돌봄과 아동보호팀에 여러 차례 C 씨의 신고의무위반 사항을 제기했고 교사 A 씨를 고소했다. 하지만 구청은 1차 판단에서 “의심은 개인(원장의) 판단”이라며 아이의 진술뿐이라 수사 결과를 기다리겠다는 유보의 입장을 밝혔고 아동보장원에 사례를 자문해 놓은 상태라고 했다.
아이의 진술만으로는 학대 판단이 어려운 걸까. 아동보장원 아동학대예방본부 류경희 본부장은 “아이들의 진술이 때에 다를 수 있어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면서도 “대개 아이의 진술이 일관성 있게 사실을 전달하고 정황과 함께 비교하며 맥락상 맞는지를 중점으로 아동 학대 여부를 판단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해당 사건은 아직 검토 중이라 구체적인 결과를 말씀드리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해당 사건을 담당하는 서울경찰청 아동학대수사팀 관계자는 동아닷컴에 “수사 중인 사건은 말씀드릴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아동 진술, 어떤 상황에서 인정될까
기사와 직접적 관련 없는 참고사진 ⓒGettyImagesBank 형사소송법 제 146조에 따르면 증인의 자격에 대해 법원은 법률에 다른 규정이 없으면 누구든지 증인으로 신문할 수 있다. 즉 유아도 증인 자격이 된다는 것이다.
법무법인 바른 김지희 변호사는 “아동 진술에 대해 가장 중요한 것은 진술의 구체성과 신빙성”이라며 “예를 들어, 어떤 음식을, 어떻게 구토를 했고, 어떤 식으로 꾸짖음을 받았는지 등 직접 겪어야만 알 수 있는 구체적인 진술이 중점이다”고 했다.
다만 “진술에 대해 오염의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아이가) 진술을 했을 때의 상황도 중요하다”며 “아이의 부모가 반복적으로 질문을 한 상태인지, 최초 진술을 어디서 했는지도 고려할 사안”이라고 덧붙였다.
김 변호사는 해당 사건에 대해 “목격 아이의 진술도 있고, 해바라기 센터에서 진행한 진술도 구체적인 만큼, 경찰도 쉽게 (무혐의) 불송치로 사건을 마무리하진 않을 것”이라며 “(상대방은) 어떻게든 아이의 진술을 탄핵하려고 할 것이기에 이에 대한 부분을 잘 준비해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법무부의 아동학대 처벌법 관련 법무관에 의하면 “사후에 설령 아동학대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신고의무는 별개로 보아야 한다”며 “당시 상처가 있음에도 신고를 하지 않고 넘어 갔다면 신고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언급했다. 보건복지부 관련 부서의 의견도 동일하다.
솔이는 9월 초 정신의학과 내원 후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진단받아 현재 심리치료 중이다. 유치원은 퇴소한 상태다.
2016년생 솔이는 평소 자신의 의견을 명확히 전달하는 똑 부러진 아이였다고 한다. 솔이 부모는 “아이가 그날 먹었던 음식을 정확히 얘기하고 혼을 내던 선생님을 따라 하는 모습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라며 “‘나는 이제 아무리 힘을 줘도 부서지지가 않아, 기억이 부서지지 않아’ ‘엄마가 대신 사과 받아줘. 내 마음을 열어서 정리해줘’라는 아이의 말에 눈물이 났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아이의 진술을 녹음한 40여개 파일을 보냈는데도 (구청은) 진술뿐이라며 제대로 사건을 살펴보지 않고 수사 결과만을 기다리는 모습에 신뢰를 잃었다”며 “제 딸의 사례로 인해 정서적 학대를 겪는 아동의 부모와 사건을 담당하는 여러 경찰에게도 경각심이 되길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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